일주일에 세 번, 동네문화센터에 놀러 갑니다
정경아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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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통일법 시행으로 두 번째 마흔을 산다. 두 번째니까 조금은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마흔은 아직도 내게 먼 이야기인 듯하다. 요즘 고민은 점점 희미해져가는 나를 붙드는 일. 내게 부여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며 나를 챙기는 일은 뒤로 미뤄왔다.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좋은 사람이기 위해 참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버겁고 두렵기까지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다른 이들만 챙기며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은 억울함이 되고 서운함이 되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애써 살아온 시간을 내 몫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남만을 위해 살았다 생각하며 자책했다. 전과 달리 살고 싶은 마음에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지금도 그 과정 속에서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지만 그런 나라서 다른 이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의 기술을 내게도 적용해 보려 한다. 두 번째 스무 살을 사는 내가 세 번째 서른에 접어든 이이의 글을 반갑게 읽게 된 이유다. 무엇보다 책 표지에 인생의 절전모드를 켜고 느슨하고 자유롭게 단순하고 호쾌하게,라는 말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힘을 빼는 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따뜻한 말을 잊어버린 것처럼 내가 나에게 가장 혹독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스트레스인 줄 모르고 마음이 약해서라고 나를 탓했다. 그런 내게 저자의 문장은 따뜻한 다독임이었다. 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들, 그 앞에 몸에 들어갔던 힘을 스르르 내려놓는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날을 세는 지혜는 없다. 그렇더라도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할 수는 있다. 잘 살아낸 하루하루가 행복한 잠으로 이어지듯이, 하루하루 잘 걷다 보면 마침내 해피엔딩에 이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 욕심껏 연연하면서, 게으르게, 제멋대로 살아봐야겠다.

너무 훌륭하지 않기. 후회나 자아 성찰도 너무 많이 하지 않기. 왜냐고?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어느 누구도 지나간 일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비난할 필요는 없다. 내가 저지른 잘못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p.216


"60년을 살고 났더니 이젠 모든 게 좀 담담해. 가족들이 너무 사랑스럽지도 너무 밉지도 않고, 그저 적당히 사랑하게 되더라. 어떤 사람들은 다시 한번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던데 난 절대 아니야. 다시 그 난리 블루스를 벌여야 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 젊은 건 한 번이면 족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p.98


 전과 달리 살기 위한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은 책은 나 같은 사람에게 착한 사람 증후군이다, 못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기적이어야 한다, 거절의 필요성 등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보려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본래 모습은 나타났고 다짐한 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이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우울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나였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나의 관성. 남보다 내가 불편한 게 낫고 나만 좋은 결정보단 나도 남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고 고민했다. 그렇게 하고도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했다. 항상 내 몫을 챙기지 못했다 책망만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나를 발휘하는 것. 새로움을 만나며 가슴 뛰고 설레는 것. 무엇보다 그 모든 것 앞에 비장해지지 않기. 훌륭해지려 하지 않기. 즐거운 마음으로 지속하기. 저자의 글 속에서 따뜻한 단어들을 품는다. 삶은 유한하고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모호한 것들을 쫓느라 늘 허덕이며 힘을 뺐다. 힘이 모자라니 여유가 없고 나를 몰아붙이며 하루하루를 종종거렸다. 무엇을 하면서도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편할 날이 없었다. 버티기가 가능했던 것들이 (나이 때문인지) 버거워지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나아가려 해도 나아가지 않는 몸과 마음. 잠시 멈춰 서서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여유를 찾고 주변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배려의 마음은 아무나 줄 수 있는 게 아님을. 나에겐 그런 에너지가 있었고, 그렇게 한 뒤에야 내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점점 내가 달라지고 있는데 버틸 수 있는 경계, 한계를 움직이지 못하니 무너지며 지쳐가게 된 거고. 하지만 이제는 나의 경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적당하게 타인을 배려할 수 있어야겠다. 나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건 나니까. 나여야 하니까. 혼자서도 행복한 내가 되기로 한다.


마음속에 새로움이 결핍될 때 인간은 늙고 낡아가는지도 모른다. 배움은 부족해진 새로움을 채워 넣으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p.89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가고 혼자가 되었을 때 막막한 시간을 달래준 건 도서관에서의 문화 프로그램이었다. 육아를 시작한 뒤 멀어졌던 내 이름을 10년 만에 덜덜 떨며 말해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긴장하고 설레고 위로받았던 순간들. 그 시간을 시작으로 멈춘 듯했던 내 삶의 시간이 조금씩 움직였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안간힘으로 살았다. 무심코 돌아보면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간 듯 허무한 날들이었는데 이렇게 누군가의 삶 속에서 불쑥 내 삶을, 안간힘을 쓰던 나를 마주하곤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모두는 같은 시간 위에서 저마다의 걸음으로 시간을 살아내며 비슷한 고민들로 힘들고 넘어지고 아파하는 것 같다. 오늘의 하루를 적당히 느슨하고 괜찮은, 나다운 나날로 보내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만나면서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이렇게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으셨을까 싶고. 그 시간이 멋진 한 권이 되어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다정한 말로 건너오니 너무나 멋진 일이다 싶다. 언제 나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 존재를 잃어버린 허무한 마음과 함께, 노년에 올 수도 있고. 소중한 가족이 떠난 후나 아이가 다 커버린 듯 느껴지는 어느 날, 혹은 직장을 그만둔 뒤에 찾아올 수도 있고... 언제, 어느 순간에 맞닥뜨릴지 모를 당혹감이며 불안이고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기회로 만들려면 준비가 되어야겠다. 내가 비장해지지 않고 이 삶과 적당하고 느슨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어야겠다.

 출산율이 줄어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는 미래가 오고 있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청년기를 열심히 살았고 노년기에 이르러 새로움을 채우며 지혜를 도모하는 모습에 이 또한 또 다른 사회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부양되어야 할 분들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대이며 지혜를 더할 어른인 것이다. 이러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게 되었다. 세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일. 그렇게 함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의미가 결코 생산, 재화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명 한 명의 생애가 서로의 삶에 뼈대가 된다. 어떤 시간을 살든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 저마다의 새로움으로 뻗어가길, '굳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고 적당히 게을러도 괜찮은 날들'을 누리길, 마지막까지 이 삶을 온전히 살았다 쓰여지는 이야기가 많이 많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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