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자라는 등산육아 - 엄마도 아이도 함께 크는 특별한 등산 체험 육아 가이드
이진언 지음 / 이은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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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 번 온 가족이 함께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왕복 2시간의 산행길. 코로나로 집에서만 지내던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아이 둘을 데리고 무작정 나선 길이었다. 산책로를 지나고 산행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아이가 다리도 아프고 그만하고 싶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체력이 달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난감한 눈빛을 주고받다 꼭 정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고 아이는 못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보다 몸집도 작고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어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거봐, 작은 아이는 경험이 없어 힘듦을 버티지 못하고 엄살을 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좀 더 해보자! 할 수 있어! 격려하고 달래며 정상에 올랐다. 올라가랴 아이 마음 달래랴 힘든 산행이었다. 아이에게도 힘든 산행이었을 것이다. 멋모르고 엄마 아빠 오빠를 따라나선 산행길. 다리도 아프고 힘들고 정상은 보이지 않고. 왕복 2시간은 평균이거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시간은 아니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너무 쉽게 생각하고 내 고집으로만 아이를 이끌었다. 다른 아이들은 잘만 올라가는데 조금만 참고 더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정상의 풍경을 만끽하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리고 막연한 시도와 밀어붙임은 아이를 다시는 시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날, 여름으로 기울어가던 계절의 뜨거운 볕 아래 시뻘게진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고 정상의 표지석 앞에서 찍은 사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해낸 아이들이 기특했다. 2시간 정도 걸린다던 산행은 세 시간이 되고 네 시간이 되었지만 끝까지 함께 해내 기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종아리의 뻐근함과 뒷꿈치를 들면 벌벌 떨리던 서로의 다리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그 뒤로 아이들은 산에 가자면 진저리를 쳤다. 아이들에겐 너무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이따금 등산 얘기를 꺼내면 그때를 이야기하며 거절하곤 한다. 나의 욕심이 아이들에게서 산을 빼앗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한걸음씩 자라는 등산 육아를 읽으며 그 날의 등산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시작은 동네로만 한정되어 있던 나의 등산 코스를 좀더 넓히고자 함이었지만,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등산을 떠올렸고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산에서는 냉정하게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지나치게 안전함을 추구하다 보면 등산 실력이 늘기 어렵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때 중요한 것은 완등이나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내 아이와 더 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등산하겠다는 믿음이다. -p.164

 

 

 책에는 등산 초보자에게 실용적인 정보들이 간결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힘든 등산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는 어른의 시선과 태도, 함께 하는 등산에서 잊지 않아야 할 부분,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아이의 체력과 관심을 고려한 계획을 위해 쉬운 코스부터 어려운 코스까지 작가의 경험을 녹인 다양한 팁이 소개되어 있어 쉬운 산행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설렘도 느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체력이 올라오면서 등산 생각이 자주 났다. 집 가까운 산을 오르더라도 하루의 시간을 내야하기 때문에 좀처럼 쉽지 않는 산행이지만, 항상 체력이 되지 않아 포기했던 산의 정상을 한 번 보고 난 뒤엔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자주 찾아왔다. 한 번 더 가야지 하는 마음을 끌어안고 어느 새 여름이 되고 그 여름도 조금씩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창밖으로 초록의 옷을 입고 우뚝 선 산을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나의 아이에게 어떻게 나눠주면 좋을까. 어쩌면 지금의 산은 쑥 자란 네게 그 때만큼 힘들지 않을 거란 사실도 알려주고 싶다.

 

 마음의 평안은 정신적인 힘 뿐만 아니라 힘든 마음을 지탱할 수 있는 신체적인 힘에서도 온다. 등산에서 가쁜 숨을 달래고 힘든 계단을 오르며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했고 나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뒤따르는 이에게 선뜻 길을 내어주고 나만의 속도로 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힘든 시간을 견디는 지금을 온전히 밟고 바라보며 스스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마음도 중요했다. 절에서 들리는 종소리, 발 밑에서 사그락 거리는 마른 잎소리, 하늘 위에 나뭇가지들이 마음대로 그린 장면 속에 나를 둘러싸던 높은 건물들이 작아지고 작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 또한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겸손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무거웠던 물기를 짜낸 듯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면 무엇을 얻으려 애쓰던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로 다시 일상에 설 수 있었다.

 

 

등산을 할 때는 각자의 성향에 맞춰 속도와 상관없이 안전하게 완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에 맞는 성공 경험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등산을 하면서 맛본 가장 큰 성취는 아이들 모두 소외감 없이 자신만의 성공 경험을 만들어 간 것이었다. -p.37

 

 

 다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생각을 한 나를 자책할 때가 많았다. 다음에 이르고 또 그 다음에 이르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달해가고 있는 중이며 나는 다만 과정 속에 있는 것이라는 걸, 더 건강하고 즐겁게 이 삶을 살아가겠다는 믿음으로 되세겨본다. 등산은 때때로 내게 잃어버린 다짐을 되찾게 한다.

 저자의 산행을 동행하며 숨이 차고 가슴이 뛰기도 했다. 좋아하지만 어쩐지 늘 막막하기만 했던 등산을 조금은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남편과만 등산을 하게 될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들과도 다시 등산을 시작해보려 한다. 어느 새 나만큼 자란 아이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을 오르며 우리의 시간에 새겨질 우리만의 등산이 기다려진다. 어느 날은 그러한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희망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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