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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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게 먹은 약 때문인지 속이 쓰려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10시쯤 자려고 누웠는데 어느새 새벽 2시 반이 되어 있던, 그런 날들이 벌써 2주를 넘기고 있었다. 기운도 없고 속은 울렁거리고 술 취한 듯 멍한 머리. 누워있어야만 마음이 몸이 견딜 만해졌다. 너무나 힘들고 고단한데 나의 증상들은 그것을 의사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입원을 했어야 하나. 몸이란 뭘까. 잘 먹는다는 것은 뭘까. 내일은 그래도 조금 낫지 않을까, 내일은. 너무나 고단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잠깐씩, 그러다 좀 오래, 아버지를 놓았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빈 방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아버지가 여행을 떠난 듯했다. 언제 돌아오실지 알 수 없지만 무거웠던 질병과 고통을 내려놓고 훨훨 가벼운 걸음으로 좋은 곳에 가신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와 웃으며 여행 이야기를 해줄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그 마음은 죄책감이 되었다. 떠나는 아버지를 내가 붙잡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칼날처럼 가슴을 훑었다. 아버지를 꼬옥 안아드릴걸. 사랑한다고 말해 드릴 걸. 아버지에 대해 많이 물어볼걸. 그 말들을 받아 적을 걸. 이 생의 마지막을 고단하게 걸어가는 아버지의 곁에서 나는 당신의 고통만을 바라보며 괴로워할 뿐 당신이 남기고 싶은 것을 묻지 못했다.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그가 지나온 시간을 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알지 못했다.

 

 신경숙 작가의 『아버지에게 갔었어』 출간 소식을 들은 날은 아버지의 납골담에 다녀와 며칠이 지나서였다. 아버지에게 다녀온 나에게 그 제목은 알 수 없는 동질감과 궁금증을 일으켰다. 위로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과거를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나는 사전 서평단을 신청했다. 나는 영영 쓰지 못하지만 작가는 써 내려간 글 속의 아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얼마 뒤 흰 물성의, 내가 어찌하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 자국을 남길 것 같은, 연약하면서도 묵직한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아픈 어머니가 치료를 위해 서울 큰 병원으로 떠나고 남겨진 아버지는 운다. 혼자 남겨진 서러움보단 떠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과 세월에 대한 원망, 체념에 가까운 울음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눈에 밟혀 헌은 자신의 상처로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부모님댁에, 홀로 남아있는 아버지에게 가기로 한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적당한 덩치에 키가 큰 축에 속했고, 시골 사람 같지 않은 밝은 피부에 반듯한 콧대가 얼굴 전체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버지는 '얼굴이 야위어서 볼 쪽이 움푹 팬' 모습으로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밤이면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숨어버리는 불완전한 모습이 되었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다시 맞닥뜨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이제는 홀로 섰을 때 위태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아버지의 시절을 읽는다. 사라질까 하나 하나 적는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p.90

 

처음에 자꾸 어딘가로 숨거나 우는 아버지를 발견할 때마다 등에 땀이 솟곤 했으나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혼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불안과 공포에 방치된 아이 같았다. -P.395

 

 

나는 아버지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쓰고 있는 이 글을 지우고 싶지 않다. 벌써 지우고 있어 불안하지만 지우고도 남아 있는 말이 있기를. -P.348

 

 

 책 속에서 나의 아버지를 만난 건 신기한 일이다. 그때 읽지 못한 아버지를 읽어내는 건 슬프고도 가슴 따뜻한 일이었다.

 내가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 초등학생이었을까. 내 나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와 동생과 약수터를 가는 길이었다. 뜬금없이 셋이서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동생은 내 앞에 아버지는 내 뒤의 저만치에서 뛰기로 하고 시합을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그 저만치를 단숨에 뛰어 우리를 앞질러 가셨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아빠의 환한 웃음을 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든든하고 멋있었는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을 그때 아버지의 모습을 이따금 꿈에서 보곤 한다. 연하장애가 생기고 폐렴이 생기며 야위어 갔던 마지막 모습이 아닌 젊은 날의 아버지를 바라보면 그 모습으로 좋은 곳을 여행하고 계시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놓였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장사로 바빠진 아버지와 멀어졌다. 아버지는 내 삶에 흔적도 남기지 않을 행인같이 여겨졌다. 보는 날보다 보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고 엄마도 동생도 함께 모이면 데면데면했다. 원망했고 미워했고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저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고단한 삶을 견디고 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 와 그 시간을 언저리로만 짐작할 뿐 읽어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하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키우며 내게 심어준 생각들로 자랐을 것이다. 그들이 물려준 문장들로 내가 이뤄져 있다. 나를 들여다보면 부모님이 보이기도 한다. 어린 날 마냥 크고 높게만 보였던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의 그들도 얼마나 어렸는지, 얼마나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로 부모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지 가늠해보게 된다.

 

 작가가 담아낸 한 가정. 그 안의 어머니, 아버지, 그 사이에 성장한 아들, 딸의 이야기는 먼 이웃의 이야기처럼 읽힐지도 모른다. 지루해서 잠시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불쑥 깊숙이 꽂혀 들어오는 낯익은 이야기가 당신을 사로잡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당신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이름 없이 애쓴 사람을 만날 것이다. 너무나 커서 함부로 바라보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는 작아져서, 나보다 가벼워져서 내가 가만가만 다독여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당신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한 사람, 

 그 이름을 더 늦기 전에 부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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