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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
김선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평점 :
지난 7월 19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서 지낸지 두 달 만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큰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집으로 가시지 못했다. 요로결석과 폐렴. 연하장애. 위 출혈. 아버지는 끝까지 집으로 가길 원했고 살길 원했다. 식사를 할 수 없고 가래를 뱉을 수 없고 풍선 바람 빠지듯 온 몸이 꺼져가면서도 당신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시간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다. 그리움과 죄책감과 슬픔이 뒤덮인 고통스런 마음을 잘 보내고 당신 몫까지 열심히 살고 싶었다. 도무지 다물어지지 않는 꺽인 책의 페이지처럼 당신의 빈자리가 내게 벌어져 있다. 덮고 지나왔지만 고스란히 덮이지 않은 그 페이지를 더 자주 더듬고 들여다보게 된다.
유년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품고 성인이 되어 종양내과 의사가 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병원에서 떠나거나 병원에서 누군가를 배웅하게 될 것이니까. 누군가의 마지막은 질병일 가능성이 높고 통증을 견디기 위해 병원에 있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교통사고 이후 골절 수술. 재활. 다시 골절. 욕창수술로 이어진 5년여의 병원 생활. 그렇게 지나 온 13년. 엄마의 시간도 아버지 곁에서 흘렀다. 힘들었던 그 시간이 최후의 고통에 이르러서야 그렇게라도 함께 먹고 웃고 이야기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환자이건, 장애인이건, 어린이나 노인이건,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을 돌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비정하다고 비도덕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돌봄의 책임을 어느 누군가에게 의무인 양 전적으로 떠맡기는 것은 비도덕적이지 않은가. -p.46
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에게 잘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고맙다고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아픈 남편을 돌보는 삶 그 자체를 걱정했고, 남편 없이 살아갈 날들을 걱정해주었지만, 엄마의 삶을 긍정하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엄마는 이에 죄책감과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p.90
아버지를 간병하며 나날이 어두워지던 엄마가 떠날까봐 두려웠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아픈 아버지의 고집과 엄마의 울분이 부딪혀 좀처럼 희망을 만질 수 없던 집에서 나는 도망치듯 결혼을 했다. 떨어져 살면서 가끔씩 엄마에게 걸던 전화는 절망을 뒤집어 쓰는 일이었다. 내 안에 아이가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결국 우울증에 빠진 부모님을 신혼집 근처로 모셨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알게 되었다. 엄마가 많이 외롭고 고단했으리라는 것을. 아버지와의 투닥거림과 모진 말들이 결국 서로를 살게 한 위로였음을. 그 모든 것은 아내이기에 견뎌야 할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주치의로 만난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도 내려놓는다. 아버지 앞에서 서슴없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짧은 설명 끝에 사이도 없이 팔을 잡고 주사를 찌르던 그들도 무수한 환자 속에서 질병과 시간과 자신의 삶과 사투하고 있는 이들임을 이해하기로 했다. 위독하시다,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라 했던 것도 아버지와는 다른 어느 가능성 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 13년 동안 아버지의 짐이었던 소변줄, 워커, 콧줄과 온갖 주사바늘, 썩션, 기계장치 등에서 놓여나 이제 홀가분한 몸이 되셨으리라 믿으면서도 마지막에 가까워지는 시간인 줄 모르고 마주하던 그 때, 배가 고프다며 찾던 곶감과 메밀 부침개를 얼른 건강해져 집에 가서 먹자했던 일들이 불쑥 떠올라 마음 속에 불덩이를 이루곤 했다. 고통 속의 아버지가 이제 그만 아픔을 끝내고 떠나길 바라면서도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가늠하지 못했다. 나으시라는 기도는 하지 못하고 그런 기도를 한 나 때문에 아버지가 떠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으로 우울감이 찾아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으로 넘어지려할 때면 당신이 아팠다. 그 때마다 정신없이 응급실로 쫓아오고 당신의 휠체어를 밀며 온갖 검사와 진료과를 돌아다니다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됐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오간 병원복도와 검사실, 수술실 앞의 시간을 떠올리며 더욱 선명해지는 건 그토록 버겁고 남들보다 잘 살아보고 싶은 이 삶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죽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할 작은 이유 하나를 찾아내 다시 이어지는 것이며, 언제 마침표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시간 위에서 그저 오늘을 무사히 지나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의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아버지의 투병은 내 삶을 감사와 겸손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고통을 지고 끝까지 살고자 한 당신을 보며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을,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숙명을 보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에서 참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온 몸으로 나를 키우고 지탱해주었다.
가까운 이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마지막을 향해 위태롭게 떠가는 당신을 배웅 하는 일을 나는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은 마음 먹은 것보다 훨씬 힘들고 괴롭고 버거운 일이었다. 나의 배웅은 당신이 떠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곧 돌아올 것 같아서. 무겁고 아팠던 몸을 내려놓고 먼 여행을 떠난 아버지가 훌쩍 돌아와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아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 하나 깨달은 건, 주변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혼자 버겁고 힘든 시간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지나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 내가 오히려 상대의 고통을 가볍게 만들까 두려워 삼킨 위로의 말을 그 때 건넸어야 했는데, 그 때 만났어야 했는데, 뒤늦은 생각들이 빚처럼 남았다.
죽음이 앗아갈 것을 떠올리며 두려워하자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끝까지 꽉 찬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써본다.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삶을 지켜내고 더 많은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부터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p.225
오늘이 힘들었던 당신에게
이 책은 당신이 보낸 하루가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내일을 다시 오늘로 맞는 기적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엔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는 것도.
삶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은 남겨진 삶을 움직인다.
좀더 아름다운 쪽으로, 그렇게 믿고 싶다.
아버지는 나의 시간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내게 주신 새로운 삶을 더욱 열심히 살기로 다짐한다. 주변 사람을 챙기고 나의 삶을 나의 몫으로 누리며 그렇게 오늘을 의미있게 살아보기로 한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준 것들을 ‘잊지 않’으며 아버지와 계속 함께 할 것이다.
아버지를 반갑게, 다시 만날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