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규리 아포리즘 2
이규리 지음 / 난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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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단한 하루가 지나간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지만 누구의 위로도 힘이 되지 않았다. 무엇도 규정할 수 없는 마음에 하루 하루가 생채기를 내며 지나갔다. 떠나려는 사람을 배웅하는 일은, 그것도 아픈 몸으로 영원히 떠나려는 당신을 놓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인 것만 같아서. 이렇게 당신을 붙잡고 있는 일도 당신에게 죄를 짓는 일인 것 같아서. 나는 다만 당신을 붙잡고 죄인인 내가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모양새인가.
 
 괴로움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무 재촉하지 말 것. -p.14

 누구의 위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게
한 마디의 문장이
내가 물고 어쩌지 못하던 깊은 숨을
토해내게 했다.

 나의 괴로움은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부모의 투병도, 죽음도 혼자만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 결혼을 하고 또 다른 가족을 꾸렸지만 내 몫의 통증은 온전히 홀로 싸워 견뎌야하는 것이었다. 가족은 슬픔을 고백하는 곳이며 고민에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곳이다. 슬픔을 나눠가질 수는 없다. 각자의 몫으로 새롭게 태어날 뿐이다. 가족이 있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 울지 못하는 것 뿐이다. 나는 지난 날 내가 누군가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거라 믿었던 일들을 반성했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당신의 눈빛, 할말이 많은 눈빛. 마지막이라는 확률을 배제하지 않으므로 거기엔 간절함, 안타까움, 감사함, 서러움, 두려움 그리고 절박함이 혼재한다. 내가 본 모습 중 처음 유순하였다. -p.205

 눈 부시게 부서지는 봄 햇살에 눈물을 걸어 말리며 간다.
서럽고 두려운 삶의 한쪽에 지친 얼굴로 놓인 나의 아버지,
아버지에게 갈 때마다 이 책을 가져갔다. 누군가의 손을 잡듯,
 몇 장 읽지 못하고 덮어두던 페이지가 
시간을 따라 한 장 한 장 한 곳으로 쌓이는 사이 
내 안에서 부풀어오르는 삶의 페이지를 느꼈다.
흩날리는 어지러운 말들을 붙잡아 볼 용기가 생겼다.

 처음엔 무언가 거창한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쓰는 일이 나를 면죄하는 것 아닌가 싶은 좌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록하고 싶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삶의 페이지들을. 안쓰럽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분한 당신의 모습을, 시간을, 울면서 끌어 안겠다고. 기억하겠다고. 
그렇게 나의 한 쪽에 지금을 위한 폴터를 연다. 

괴로움 안에 있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대 쓸쓸해 말아요 -p.69

 시간을 지나가다 만나면 그 때 그때 또 다른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책.
 그리고 무언가를 적어보고 싶게 만들어 준 책.
 슬픔의 사이에도 삶의 설렘은 있구나 알게 해준 책.
 삶의 호흡이 가빠질 때 나를 멈춰 서게 할 책.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답장을 하고 싶었다. 
 내 어지러운 시간 속에 잠시 앉을 곳을 내준 위로와 희망에 대한 보답으로.

 살아서 건너오는 말보다 한 줄의 고요한 문장이 내겐 더 진실했다.
그 문장의 끝, 여백에 놓인 나의 글을 만나는 일은 설렜다.

 어느 날 이 책과 닮은 한 권의 책이 내 이름으로 남아 
오늘을 갚을 수 있다면,
 그런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여운 상대를 가만히 안아주는 행위, 잠시 토닥이던 손이 상대의 등에 나비를 그린다. 나비, 팔랑 나비. 손이 없어지고 등도 없어지고 그사이 고통은 나비 날개의 무늬를 가지고 날아갔다. -p.26

거기서부터 다시
일어나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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