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김현수 지음 / 해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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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올 해 5학년이 된 큰 아이와 문제가 있었다. 5년 가까이 해오던 학습지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에도 힘들다 한 적이 한 두 번 아니고 그 때마다 선생님과 상담하며 아이를 다독여 이끌어왔다. 학습 수준도 학년에 비해 높은 편이라 아이 스스로 뿌듯함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학습에 집중을 못하고 연신 하품을 하며 불편한 행동을 보였다. 선생님은 아이가 산만해진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사과를 드렸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과제가 선행이 되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보기를 보고 그냥 풀면 된다 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왜 이렇게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냥 해야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수업 때마다 아이의 질문은 계속 되고 시간은 지체되다보니 선생님의 언성도 매번 높아졌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긴장감 속에 수업을 끝낸 어느 날,  답답해하는 아이가 안타까워 이해할 수 없다는 부분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EBS에서 관련 동영상을 찾고  아이에게 보여줬다. 서로 이해한 부분을 설명하고 함께 문제를 풀었다. 아이는 막혔던 것이 내려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리곤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못했을 거라며. 

  고.맙.다. 

  그 말이 내게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다. 
  왜 궁금해하면 안될까. 왜 글씨는 빨리 써야하는 걸까. 왜 수학 문제는 빨리 풀어야만 하는 걸까. 학교도 공부도 재미없고 안하고 싶고. 나는 뭘 잘할까요? 묻는 아들에게 그건 아들이 알지. 아들이 찾아야지. 노력하면 다 된다니까. 안하니까 안되는 거지. 말하는 못난 엄마. 그 일 후에 학습지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서도 아들이 많이 외로웠겠다, 쓸쓸했겠다, 싶은 마음에 며칠 밤을 뒤척였다.

  오늘 받아온 시험지엔 동그라미보다 비가 많다. 시간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그건 몰라서 못풀었다는 얘기고.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킨 채 수학이 어려웠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도 되요?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제 머리가 나빠서, 지식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다며 나는 왜 이럴까요? 하는 아이. 엄마와 풀 때는 이해가 갔으니 좀더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알 수 없이 솟는 화를 누르며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문제집을 풀어보자 한 부분에서 벌써부터 입이 나온다. 
  사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공부를 안 했으니까 오답이 이렇게 많은 거지 하며 아이를 비난했을 것 같다. 게임이며 유투브며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찾아 할 때는 의욕 넘치게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공부는 왜 그렇게하지 못하나, 답답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마음이 아주 없다 할 순 없지만 아이가 스스로 실망하지 않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혼자서 못하겠으면 엄마랑 함께 해보자 싶은 맘.
  세상 좋아진 시대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다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마음고생’이 왠 말인가, 더 살아봐라 그보다 어려운 일 정말 많다, 말이 절로 나오는- 나도 5학년 아들에게 그런 말들을 너무나 쉽게 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이 바로 사회와 어른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며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사춘기가 온 것인지 아들은 요즘들어 비난과 체념이 섞인 말들을 자주 한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법을 누가 알려줬을까.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너 그렇게 해서는 소용없어. 죽을 각오로 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미 충분히 버거운 아이에게 이 말은 얼마나 모욕적으로 절망으로 느껴졌을까.
  가만히 다독여 주는 어른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설명해주는 어른도 없고, 너희가 힘들게 뭐가 있냐며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 꾸짖고 충고하는 어른만 많은 세상.
  세상은 분명 좋아졌고 달라졌지만 어른들은, 부모는 달라진 세상에 과거의 잣대로 아이들의 시간을 재단한다. 우리가 고생해 이만큼 지원하고 있으니 너희는 더 많은 노력과 더 나은 결과를 내야한다고 강요한다.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학원을 돌려 성적을 만든다. 고등학교에 가서 1,2등급에 들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그렇게 될 수 없을 바에야 ‘이번 생은 포기’를 외치고 마는 ‘이생망’의 아이들. 그 처절한 세계 속에 다른 대안은 없다. 오직 등수가 나일 뿐.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이 다가갈 수 있을까.
 대화도 이해도 없이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어른들의 포위 속에서 도망칠 수 없이 견뎌야만 했던 아이들. 그들이 살기 위해 선택한- 순응, 무기력, 자해, 중독, 은둔, 비행-의 방어기제를 우리는 복에 겨운 일탈이라 치부하고 비난하며 체벌하기에 급급했던 어른들. 
 부모는 아이를 포기하고 아이는 부모를 포기하면서. 소통과 이해, 응원이 사라진 자리엔 비난과 원망, 이별이 남았다. 서로의 필요가 끝나면 마침표가 되는 개인주의의 세상. 가족이라는 한 집에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각 속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견디며 산다. 이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달려온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가 정말 바라보고 온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힘든 아이들에게 이번 생애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미 망했으며 부담은 잔뜩 갖고 살아가는데 이해받지도 못하는 억울한 삶입니다. -p.134

  90년대 국민학교를 졸업한 어릴 적 나는 부모가 어렵고 무서워서 늘 속앳 얘기를 숨겼다.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부담이 될까봐 말을 못꺼냈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원에 무료 입시 강좌만 들으러 가봤을 뿐 혼자 문제집을 풀고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내내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성적은 맘처럼 나오지 않았다. 학원을 다녔다면, 우리집이 부유해서 엄마아빠가 좀더 신경을 써줬다면 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다. 모두가 그런 비슷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 아이만큼은 부족함 없이 잘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마음이 지나쳐 욕심이 되고 아이의 삶에 희망을 지우고 있다면, 내가 옳다는 마음을 멈추고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내내 붙들어온 마음 하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아이와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이 시작된 곳을 알았다. 겉으론 쎈 척 하면서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책은 끝났지만 마음에 남겨진 페이지들이 무겁다. 어른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한 시간을 과거로 보내고 이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인 것 같다. 그들이 견디는 무게 그대로 그들의 마음고생을 인정해주는 어른의 눈을 우리도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아이의 생각을 평가가 아닌 따뜻한 응원으로 지지해주는 것. 나는 내 삶을 아이는 아이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 다시 하고 싶을 때 서로의 돌아갈 곳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간절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병적 자기애와 전능주의, 그리고 자녀에 대한 집착, 이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큰 숙제입니다. 건강한 자기애와 현실주의, 그리고 성숙한 독립과 상호 의존을 통해 ‘희생하는’삶이 아니라 ‘헌신하고 실현하는 삶’으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현실에서의 따뜻한 돌봄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자신의 삶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감정적 꼬임과 묶임의 무거운 실타래가 풀려 나가는 것, 그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도 희망의 한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독립시킬 수 있으니까요.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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