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는 것 같다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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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8일, 나는 카네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연휴를 휘몰아치듯 보내고 직장으로 학교로 식구들이 사라져 혼자 남아 그랬다. 그리는 내내 지난 연휴 속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시부모님께 맛있는 걸 사드린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간 뷔페였다. 식사 후 소화가 안돼 힘들어하셨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친정 아빠는 속이 좋지 않으셔서 맛있는 걸 사드리지 못했다. 나는 연신 바깥 음식들을 말하며 사 오겠다 했지만 엄마는 있는 거 먹자고 말을 접었다. 뭐라도 사드리고 와야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사드리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내 맘 편하려고 내 기준의 '맛있는 음식'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꽃과 식사와 용돈. 어버이날이 가까워오면 내가 해야 할 몫처럼 여겨지는 일들. 그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연휴가 고단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내 배가 불렀고 몸무게는 늘어있었다. 
 카네이션을 그리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을 때, 책이 왔다. 두 손에 가붓하게 안기는 책이, 내 아버지의 여린 손바닥이 같았다. 괜찮다 나를 다독이려 찾아온, 손바닥 같았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를 심어준 사람.

이 가능과 불가능을 집약할 수 있는 대명사는 아버지밖에 없다. -p.14

 아버지를 부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어서 성인이 되어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제 떠나려는데 교통사고가 났다. 11년 전 퇴근길에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119 구급대원으로부터 다급하게 확인받았다. 아버지가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계시던 일주일 나에겐 아버지의 빚과 카드값 고지서들이 찾아들었다. 세상은 얼마나 냉정하고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신랄하게 배워갔다.  
 정신이 돌아오고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붕대로 감고 누워있는 아빠에게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밖에 못 살았어요?"
 당신은 말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무책임한 말이라고 속으로 당신을 원망했다. 당신의 삶을 비난하는 친척들의 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감사도 존경도 없는 것처럼, 당신을 나의 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까
따뜻한 걸 먹을까
대학병원 회전문을 나선다

당신은 재가 떨어질 때까지
담배를 피우는 버릇이 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담뱃진이 물든 중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곤 했다

내년에 꽃 보러 오자
길바닥에 떨어진 버찌 열매를 밟으며
국수를 먹으러 간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앞서 가는 뒷목이 붉다

-신미나, 「서울, 273 간선버스」 전문

  아버지에 관한 시와 두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반성문'이 교차되며 나를 울고 웃게 했다.

안희연 시인은 너무나 어린 '아홉 살의 어느 날' '그저 내 앞에 놓인 김밥이 따뜻하고 맛있어서, 이모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접시를 전부 비'우며 아버지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여행 가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의 나이가 되어서야 철모르던 그때의 행동까지 주섬주섬 슬퍼지고 마는 그 마음이 내게도 머문 적이 있었다. 흐린 기억은 문득문득 화살처럼 날아와 날카롭게 꽂혔다.   
 영원한 기싸움을 하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일까. 아버지의 뜻대로 꺾이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가까워지지 못했으면서도,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의 사진을 붙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신용목 시인이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고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인의 글 「어데서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에는 좀처럼 휘어지지 않는 시인의 고집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버지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 때문이었다!^^  내가 모자라 만든 아픈 자리를 이런 추억들이 덮고 있어 우리는 견디어 또다른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날계란을 쥐듯
아버지는 내 손을 쥔다
드문 일이다

두어 마디가 없는
흰 장갑 속의 손가락
쓰다 만 초 같은 손가락

생의 손마디가 이렇게
뭉툭하게 만져진다

-신미나, 「신부 입장」 전문

  11년이 지나고, 당신은 점점 약해져 내가 두세 걸음이면 도달하는 주방 식탁에 워커를 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위태롭게 도착한다. 고단한 일을 하던 손의 시간은 지워지고, 운동으로 다져졌던 몸의 근육도 모두 빠져 앙상해진 당신에게 일상은 작은방 침대에서부터 그 식탁,까지 뿐이다. 그런 아빠가 아이처럼 형님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고로 병원에서 만난 후 뵌 적이 없었다. 아빠 생신에 청양에서 올라오신 이모부는 십 년 만에 본 아빠에게 '이렇게 보니 자네는 잘못 살아온 것 같지 않다고, 자네에게 잘못 살았다고 하는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오래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서. 아빠는 안타까운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한 집안의 장남으로, 우리의 아버지로 열심히 살아오셨음을.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이제서야 그 고단했던 삶을 이해한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증명사진 한장을 가지고 다닌다. 누가 봐도 인물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이지만, 증명사진이 으레 그렇듯 사진 속 아버지는 웃지 않는다. 모두 잠든 새벽이나 늦은 밤, 일기를 써내려가는 아버지의 얼굴이 사진 속 표정처럼 꼭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많은 이야기들을 그 사진은 꼭 다문 입술로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진 속의 얼굴은 순간의 진실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아버지의 증명사진 속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한장 한장 넘긴다. 평생을 따라 읽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말이다.
-p.52,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중에서

 

  늦은 새벽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가고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며 당신은 훌쩍 늙어갔다. 그 안타까움으로 후회로 두려움으로 온몸 아프게 당신을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신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빠를 마음껏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시인들의 시로 이야기로 숨어들어 아빠를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 나 어릴 때 약수터 가는 길에 당신과 달리기를 했던 것도 생각나고, 냇가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어느 여름 날 갑자기 비가 퍼부어 냇가에서 높은 지대로 나를 업어 올리던 당신의 단단한 등도 생각이 났다. 당신을 믿고 나는 자랐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었다. 나의 첫 문장일 당신. 시집 속에서 나는 웃으며 마음껏 당신을 생각했다. 떠나와서야 더욱 간절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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