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진짜 비밀이야 다림창작동화 4
김리리 지음, 한지예 그림 / 다림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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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슬비’가 속으로 좋아하는 남자 짝꿍이 전학 간다는 소식을 듣는 데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이런저런 곡절 끝에 결국 짝은 전학 가지 않고 둘은 화해한다. 흔히 보는 이야기고 줄거리만 보면 평범하다. 상투적이란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 나이 또래 아이가 할 법한 생각, 할 만한 행동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친근하고 재미나다. 우선 어른들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이야기가 많은 상황에서 아이들끼리 툭탁거리다 해결하는 이야기라 호감이 간다. 때문에 총 다섯 권인 이슬비 이야기 중에서 엄마나 이모 등 어른들의 비중이 큰 권은 재미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작가는 심리묘사나 잔잔한 감동에 매달리지 않고 아이들의 생활을 충실히 그려내는 쪽으로 이슬비 이야기의 방향을 잡았고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인물과 사건

이슬비는 어느 반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아이다. 활기차고 솔직하며,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서 행동하고, 무슨 일 때문에 조금 기죽었다가도 아이답게 금세 기운을 찾는다. 그래서 각종 말썽과 사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잘 지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다.

말썽으로 보이는 이슬비의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다. 그래서 글에 설득력이 실렸다.

곧 헤어질 친구한테 어쩌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해서 사이가 어색해졌다. 선물을 하고 싶지만 저금통에는 돈이 없고, 엄마한테 말하자니 괜한 소리를 할까 봐 망설여진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슬비는 아빠 갈색 구두를 검정 구두약으로 닦아서 얼룩을 만든다. 놀란 이슬비는 이렇게 항변한다. “파란색 치약으로 이를 닦는다고 이가 파래지는 건 아니잖아요?”(19쪽) 맞는 말이다. 안 쓰는 자기 물건도 별 망설임 없이 친구들에게 팔기로 한다. 예전에 벼룩시장에서도 동화책을 팔았고, 털 달린 인형은 아기 아토피에 안 좋다고 엄마가 남 주려고 했으니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가게에서 싸게 파는 과자를 보자마자 학교에 가지고 가서 아이들에게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락하게 돈 꿔 달라는 친구에게는 대신 이자를 받을 생각이다. 책에서 봤는데 은행에서는 돈 꿔 주고 이자라는 걸 받는댔으니까. 돈 벌 생각에 몰두하니 모든 것이 그리로 통한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는 어쩌면 저렇게 잔머리를 굴릴까 싶기도 한데, 이슬비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와 간절함이 있다. 그 와중에 깨달음도 얻는다. “앞으로는 누가 돈을 엄청 많이 준다고 해도, 절대로 남의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을 거예요.”(39쪽)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내가 본 만화책에는 이자에 대한 것만 쓰여 있을 뿐 친구들한테 돈 빌려 주고 이자 받는 게 나쁜 거라고 쓰여 있진 않았거든요.”(58쪽)

이슬비 짝꿍인 재현이, 수다쟁이 단짝 아람이, 개구쟁이 양종호와 오영철. 글 속에서 구구절절 성격이 어떻고 속마음이 어떻다고 길게 설명하지 않는데도, 아이들의 행동과 대화문을 보면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보인다. 묘사가 길지 않아 글도 지루하지 않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슬비 이야기를 읽으며 아쉬움을 느꼈다.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이슬비 이야기를 읽고 나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라는 거다. 인물들이 생생하긴 하지만 개성적이지는 않다. 명랑만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듯한 도식적인 인물과 관계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이슬비만 해도 개성 있는 독특한 캐릭터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선스럽고 기운 넘치는 말괄량이 아이’라는 한 유형이 떠오른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건도 지극히 평범하다. 무심코 시작했다가 버릇이 된 거짓말, 새로 태어날 동생, 짝 바꾸기, 친구와 화해하기, 장래 희망 등. 

물론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은 독특한 사건도 등장한다. 예를 들면 시리즈 3권 《제발 나랑 짝이 되어 줘》에서 이슬비는 자기와 짝이 되려고 할 아이가 하나도 없을까봐 미리 남자아이들과 딱지치기를 하며 일부러 딱지를 잃어주고 마음을 사려고 애쓴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할까 싶은 독특한 에피소드가 작품 속에서 더 발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대목에서만 확 살았다가 계속 이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이슬비 이야기의 ‘평범함’, ‘흔함’은 친숙함이 될 수도 있고 진부함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은 분명 자기 곁에서도 곧잘 일어나는 사건, 자기 반에도 있을 듯한 인물에 친근감을 느끼고 자기 경험을 떠올려 가며 자기 이야기처럼 읽을 테다. 그러나 그거면 된 걸까? 만날 그게 그거라고 욕하면서도 보는 통속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문체

이 작품은 이슬비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 저학년 동화 중에는 지나친 심리묘사로 흘러서 작품에 나타난 아이의 행동과 심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슬비 이야기는 1인칭이지만 묘사를 통해 아이의 심리를 전하기보다 이슬비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전해주기 때문에 읽기에 불편하지 않다. 

문장도 별 군더더기가 없다. 특히 대화문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아이들이 평소에 쓰는 말 그대로라 입에 착착 붙는다. 짧고 쉬운 문장을 써서 읽기 편한 글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친숙한 말 덕분에 막힘없이 죽죽 잘 읽힌다,


평범한 이야기, 소소한 재미

일상 속의 평범한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서 무조건 나쁠 리는 없다. 다만 ‘어떻게’ 그려내느냐 하는 문제가 따른다.

아이들이 이슬비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실감이 주는 힘이 아닐까. 자신들이 평소에 듣고 쓰는 말, 나와 내 친구들처럼 행동하는 등장인물, 자신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또는 경험할 법한 사건이 버무려져서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평범하기는 하지만 작품 속에서 인물과 사건이 무리 없이 배치되고 진행된다. 작품의 깊이는 얕더라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반면에 이슬비 이야기는 작품에 나타나 있는 행동과 말로 이미 모든 설명이 끝난다. 이 인물이 여기서는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이런 대목은 뭘 뜻하는 거지, 이런 궁금증을 품을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니 독자가 더 파고 들어가서 해석할 일도 없다. 여러 방면으로 해석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하면, 이슬비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는 분명 모자란 작품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깔끔하게 쓴 글,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 일상을 잘 드러낸 친숙한 이야기가 주는 재미 덕분에 이슬비 이야기는 아이들이 즐겨 읽는 작품이 되었다. 진부함과 대중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 책을 어느 쪽에 더 점수를 주어야 할까?


+

책의 구성

쪽마다 윗부분에는 동화, 아랫부분에는 만화가 실려 있다. 삽화 수준이 아니라, 칸나누기도 되어 있고 대화에는 말풍선을 사용한 진짜 만화다. 각 쪽 아랫부분의 만화만 쭉 읽어도 결말 부분의 편지글 정도만 빼고는 줄거리 이해에 별 문제가 없다. 아이들은 여기에 많이 끌리지 않을까?

그러나 본문을 읽으려고 할 때는 이 만화가 방해가 된다. 글을 읽고 자연스럽게 눈이 아래로 가면 같은 내용이 반복되곤 해서 글 읽는 흐름이 뚝뚝 끊긴다. 설마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려는 효과는 아니겠지. 이런 책을 어찌 평가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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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ant 2012-04-28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도연 연구실 토론회 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