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00℃>라는 만화를 처음 본 것은 작년이었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어떤 분이 6월 민주항쟁을 다룬 만화가 있다며 주소를 올렸다.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단행본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샀는데 작가 이름이 눈에 익다. 아기공룡 둘리를 충격적으로(!) 패러디한 작품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 이어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으로 한창 주목받는 만화가 최규석 님이 이 만화의 작가였구나.

다시 봐도 여전히 가슴 속에 묵직한 느낌을 남기는 작품이다. 손으로 슥슥 그린 듯이 연필선이 살아 있는 그림에 흑백 명암을 넣은, 사실적이고도 약간은 투박한 그림체가 가볍지 않은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

<100℃>는 시골 출신 대학생 영호를 주인공을 하여 이야기를 펼치지만 영호의 이야기라기보다 그 시대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방관을 해도 편치 않은 학생, 대학생이 된 자식이 데모에 끼어들까봐 노심초사하는 부모, 자식의 구속이 계기가 되어 민가협 어머니로 변신하는 평범한 시골 아주머니, 노조를 만들었다가 회사에 발각되어 두드려 맞는 여공, 날마다 피어오르는 최루탄 연기에 지겹다 푸념하는 노점상. 게다가 친구가 숨은 곳을 대라며 물고문 당하다가 숨진 영호의 선배, 시위대에 직접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숨진 학생, 성고문 사건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공방전…….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질 풍경이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사건들이다. 내가 이런 시대를 지나왔구나 생각하니 새삼 머리가 어지럽다.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피땀 흘린 결과로 ‘백지 한 장’을 얻는 대목에서 <100℃>는 끝난다. 내내 울컥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20년 전에 그렇게 애써서 민주주의를 이뤘는데 지금은 왜 또다시 이 모양 이 꼴인데?”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그렇다면 이번에 단행본이 나오면서 추가된 <그래서 어쩌자고?>를 펴자.

<그래서 어쩌자고?>는 ‘본격 민주주의 학습만화’라는 다소 거창한 부제를 달았는데, 학습만화라는 말에 시큰둥했던 것이 미안하리만큼 재미있다. 나도 모르게 푸핫핫 웃음을 터뜨리다가 다음 대목에서는 맞아 맞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정의감에 가득 찬 촛불소녀 촛농이와 “그래서 어쩌자고? 세상 걱정 할 시간에 자기 앞가림이나 잘 해.”라며 빈정대는 녹용 씨(왜 녹용 씨인지는 보면 안다)가 강사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전해 준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92쪽)


이 책을 읽으며 그저 지나간 옛일로 치부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요즘 우리가 처한 상황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일을 보면 지금이 과연 2009년이 맞나 싶다. 정녕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해야만 할까.

과연 우리는 지금 몇 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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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etant 2011-09-2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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