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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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축구도 에세이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포털에서 축구 선수에 관한 기사를 읽는 것. 딱 그 정도가 축구와 논픽션 장르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재밌었고, 그래서 한없이 게으른 몸뚱아리를 일으켜 이렇게 글을 쓴다.

 

이 책은 웃긴다. 평균 이상으로 낯을 가린다고 주장하는 작가 김혼비는 축구가 정말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축구팀에 입단한다. 새 축구화와 축구 양말을 쥐고 갈등하던 시간은 짧았고, 이야기는 유쾌하게 흘러간다. 예사롭지 않은 축구 감독님이었다. 선수들의 위치 선정에 관한 젓가락질 비유를 읽으면서부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시합을 앞두고 수비와 공격을 잘하라는 감독님의 작전 지시에 소리 내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연습 경기를 하는 아버지들의 치사한 시비와 수많은 유교 소녀들을 질겁하게 할 언니들의 걸쭉한 입담과 첫 골의 추억과 뻥 축구의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정말 재미있게 웃으며 읽었다.

 

순전히 추천해준 사람의 안목에 대한 믿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왜 하필 축구?’ 혹은 축구가 이렇게까지나 하고 싶을 일인가?’싶었다. 난 체육 시간이 끔찍하게 싫었다. 100m 달리기가 특히 싫었는데, 체육 선생님은 80m쯤에 서서 , 그게 뛰는 거냐? 걷는 거냐?” 호통을 치며 내 허벅지를 겨냥해 몽둥이를 휘둘러 댔었다. 체육 시간에 내가 배운 건 대체로, 두려움과 수치심이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체육 시간이 되면 강하고 아름답게 빛나던 체육 소녀들이 분명히 있었다. 비어있는 운동장을 보면서 한 번도 설레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작가의 열망을 나는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몇 해 전 유난히 운동장이 큰 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무척 더운 여름이 시작되어 방학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공을 차는 애들이 끊이질 않던 운동장도 타오르는 햇빛 아래 며칠째 비어있었다. 오후 들어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하필 수업이 끝나갈 때 쯤 굉장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앞을 가리는 굵은 빗줄기에 퇴근을 주저하며 창밖을 내다보다가 한 무리의 아이들을 발견했다. 운동장이 하도 넓어서 게다가 굵은 빗줄기에 가려 누군지 얼굴은 분간할 수 없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웃통을 벗고, 팬티바람에, 맨발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이없어 웃으면서도 애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 하지는 않았다. 그저 축구가 저렇게도 좋구나, 미친 녀석들...’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이 작가에게는 왜 축구가 하고 싶었는지 궁금해 했다.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은 질문이 어디 있을까? 그냥 재밌으니까. 그것 이상 뭐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내 딸 아이의 사립 여고 학교 운동장 자리에는 잔디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잔디밭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래서 빙 둘러 걸어 나와야 한다던 딸의 투덜거림이 생각난다. 그 잔디밭은 도대체 왜 거기에 그렇게 아름답게 있기만 했을까? 체육 소녀들이 씩씩하게 자라서 축구하는 모습을 자주, 심상하게, 아무 것도 궁금해 하지 않으며 직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있을 작가의 첫 골을, 모든 축구 소녀들의 첫 골을, 모든 그녀들의 첫 골을 미리 그리고 계속계속 축하한다!!

2019.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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