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손보미의 소설, ‘디어 랄프 로렌을 읽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이 소설 속의 등장한 인물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찾아보기도 했다.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닌데, 작가가 그려낸 그 인물이 실존했었다고 한들 또는 완전히 허구의 인물이라고 한들 소설을 읽는데 아무 상관없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만 궁금해졌다.

  진짜로 어딘가에 존재했을 것만 같은 인물들. 그런데 그들의 삶은 명확하지도 않고 직선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종수가 좇는 인물들 모두가 그렇다. ‘미츠오 기쿠에서부터 시작해 수영’, ‘랄프 로렌’, ‘조셉 프랭ᄏᆖᆯ’, ‘레이첼 잭슨’, 그리고 섀넌 헤이스를 거쳐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까지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극히 일부분만을 종수에게 내어보인다. 그것조차 때로는 서로 모순되고, 흐릿하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졌다가 이야기를 따라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녹음되지만 녹음된 내용을 차마 듣지 못하기도 한다.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이라고 믿고 있는 종수의 녹음기 앞에서 다들 진실하고자 애쓰는 것 같지만 그 기억을 우리는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오히려 더, 아니 그래서 그 인물들은 정말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것만 같은, 혹은 그의 자식들이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어코 검색창에 이름을 쳐보다가는 스스로 실소하게 하는 이 인물들의 삶에서 특별한 것은 없다.

  하얀 블라우스와 무용 바지를 입고 스케이트를 타는 기쿠 박사의 모습은 낯설고 기묘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수영을 몇 년 째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밤중에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기 위해, 아침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부득부득 출근하기 위해, 물속에서 숨을 헐떡이는 내 모습도 누군가가 본다면 기묘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셉 플랭크는 왜 그토록 사랑했던 스위스의 시계 학교를 떠나 미국으로 왔을까? 자신이 아름다운 시계와 스승과 그의 딸을 사랑하는 동안 아내와 아들이 폴란드 행 기차에 올라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일까? 평생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고장 난 시계가 많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평생 시계를 고치면서 살아간 걸까? 늙어서도 링 위에서 상대 선수로부터 제대로 얻어맞고 싶어했던 조셉의 마음이 잡힐 듯도 하다.

  그런데 조셉에게서 도망친 랄프 로렌은 왜 시계를 만들지 않았을까? 양아버지만큼 훌륭한 시계를 만들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양아버지를 기억나게 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을까? 자신에게 큰 도움을 베풀어 준 사람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까? 소설의 제목은 디어 랄프 로렌임에도, 종수가 추적하는 인물은 랄프 로렌이었음에도 소설 속에서 가장 모호한 사람이 랄프 로렌이다. 결국 이 소설은 그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그를 추적하는 종수와 종수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긋나고, 모호하며,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서로를 정당하지 않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기쿠박사는 말한다.

  “종수, 인생은 길어. 정말이지 길어.”

  절망의 끝에서 시간을 낭비하려던 종수는 자신이 수영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또 잭슨 여사를 통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는동안 인생은 계속되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믿으며 살고, 그러니까 인생은 정말이지 길다는 것. 그러니 절망에서 다시 일어설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오랜 만에 소설의 힘을 느꼈다. 멀고 먼 나라 이국의 낯선 이름을 가졌지만 정말 존재했을 것 같은 인물들과 어디로 가서 어디에 도착할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었다.


  “이거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이런 질문을 하는 애들이 꼭 있다. 올해에도 있었다. 이런 질문 뒤엔 으레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 !!이잖아. 당연히 지어낸 거지. 그것도 모르냐?”

  “너 또 자다 일어났지?”

  실제로는 이보다 더한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되묻는 아이가 있으면 즐겁다.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해서 푹 빠져들었다가 나왔을 때 아이들이 하는 최고의 찬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