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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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자꾸만 욕하고 싶어질 때는 글을 써야 한다. 견딜 수 없이 싫어서 같이 이야기하기조차 싫어질 때에는 글을 써야 한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확인하고, 내가 얼마나 비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지 단숨에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적당한 혐오로 타인을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글을 써야 한다. 특히나 물리학 책을 읽고 글을 써보려고 애를 쓴다면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조건으로는 완벽하다.

시집의 제목이라 해도 어울릴 법한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을 읽었다. ‘다정한물리학. 참 적합한 말이다. 그러나 물리학이 다정하다고 해서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과학책을 읽어왔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것은 과학은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과학을 모르고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럼 결국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세상과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한 채 죽을 거라는 것.(깊은 한숨..) 이런 주제에 내가 누구를 무시하고, 누구를 미워하며 욕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모두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원자, 그 원자를 이루는 핵과 중성자와 전자조차 다 이해 못하고 죽을 운명인데..

 

1. 시공간

과학자들은 빅뱅이나 블랙홀과 같은 특이점이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는 빅뱅을 내 머리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폭발의 모습으로 상상해 본다. 애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하나의 점이 있었다. 그 점이 특이점에 도달해 폭발한다. 그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난다. 정말로 모든 것이. 여기까지는 이해하는 척 한다. 우주는 팽창한다잖아. 영상을 거꾸로 돌리 듯 시간을 되감으면 애초에 시공간이 시작된 한 개의 점이 있었겠지. 거기에서부터 여차저차 해서 물질이 빛과 분리되고, 별이 생기고, 원소들이 생기고, 생명체가 생겼단다. 그랬겠지.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은 하나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필요하고,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무엇이 아니고, 심지어 시공간은 질량이 있는 물체 주위에서 휘어진다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질량을 지닌 물질의 주변에 중력장이 펼쳐져 있으며, 물질이 움직이면 이 중력장이 움직이고, 이 움직임은 단숨에, 빛의 속도로 주변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은 세상 모든 물질들의 배경으로 가만히 있어 주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도 절대적인 공간도 없다. 관찰자와 대상이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시간조차 다르게 흘러간다. 빛의 속도에 근접하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다녀온 후 만나게 될 늙어 버린 지구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서 나는 결국 세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SF 영화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2.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때 안다는 것은 이 문장을 하도 여러 번 읽어서 외운다는 말일 뿐이다. 입자와 파동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데, 빛은 어떻게 이것이면서 저것이기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의 광자를 두 개의 틈이 있는 벽으로 던졌을 경우 광자가 입자라면 두 개의 틈 중 하나를 통과해 그 뒤편 장막에 하나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이게 상식적이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의 광자를 던져도 마치 두 개의 틈을 다 통과한 듯 광자는 마치 파동과 같이 간섭을 일으킨다고 한다. 광자뿐만 아니라 전자도 이런 파동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소리가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듯 전자도 여기저기에서 존재한다. 전자를 관찰하는 순간 한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미 본다는 것은 빛과 전자의 부딪힘이고, 이 때문에 전자는 관찰 이후에는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어디에 있을지 확률로만 표현할 수 있을 따름이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 이것은 관측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입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란다.

파동과 입자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데, 둘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 파동은 물질이 운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의 본질인 것 같다고 한다. 입자는 아주아주 작은 동그란 알갱이라는 상상도 선입견일 뿐이다. 물질의 본질이 파동이라는 생각에서 끈이론이 등장한다. 동그란 입자라고 생각할 때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관찰되고, 이런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끈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한 문장들일 뿐이다.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는 외국말을 그 말의 알파벳조차 모르는 채 통째로 암기해서 적어 놓은 것과 같다. 어떻게 어떤 것이 이것이면서 또한 저것일 수 있다는 말인가? 전자나 광자는 실체가 있는 것일까? 그저 어떤 종류의 운동 혹은 현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낸 추상적인 개념일까?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개념뿐일까?라고 적다가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나마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지나쳐 버린 수없이 많은 문장들 속에 이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들이 흩어져 있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빅뱅이 일어난 데는 아무런 의도가 없으며, 지구의 유기화합물에서 생명이 탄생한 것은 우연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정말로 극적인 우연과 우연과 또 우연의 결과 나라는 존재가 여기에서 이 책을 읽었고, 이 글을 쓴다는 것을 안다. 우연의 결과라서 내가 무의미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계속 이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고 싶고, 이미 내 장바구니에는 닉 레인과 테드 창과 리사 랜들의 책들이 담겨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은 다른 독서의 계기가 되는 책이며, 글을 쓰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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