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라에르
서정윤 지음 / 로코코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딸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것.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여주인공 연서는 쉼 없이 선을 본다. 연서는 아버지를 위해서 1년간 가짜 남편 행세를 해줄 남자를 찾고 있지만, 그에 부합하는 남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 자리에 나가는 연서. 다음 선 자리에 가던 중 그녀의 머리를 댕~ 하며 울리는 글귀는 보게 된다. 

유성에서라면 어떤 인생도 가능합니다.

엔터테인먼트 홍보 글을 보고 배우라면 그녀가 원하는 1년짜리 가짜 남편을 완벽하게 연기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때마침 길을 나서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유성 엔터테인먼트 대표, 도주환.
연서의 황당한 말에 어이없는 것도 잠시 주환은 연서를 이용하기로 한다. 지금 주환은 연서처럼 그의 연인 역할을 해줄 여자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1년짜리 계약을 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을 지키고 싶은 겁니다.

 

한 사람은 시한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또 한 사람은 꼭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계약을 하게 된다. 주환의 말대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 계약을 이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이란 감정은 배제된 채, 1년 동안 쇼윈도 부부로 살아야 하는 그들. 과연 배우처럼 완벽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정연서라는 여자가 자주 웃기를 원해.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 깨닫기를 원해. 내가, 당신을 좋아하기 시작했어."

 

'아뜰라에르'는 선결혼, 후연애 스토리다. 이런 유의 이야기가 많았고, 그다지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다. 그래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뜰라에르'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생각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설리님이 연재를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했는데, 역시 그럴만한 작품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눈물이 터졌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와 그의 딸, 연서 때문이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까지 말기 암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하니 생전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드리고 싶은 연서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 사랑하는 남자는 없으니 가짜라도 좋으니 하루빨리 아버지 앞에서 행복하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연서의 마음.

연서의 요구로 시작한 가짜 결혼이지만 연서는 조급해하지도, 주환 앞에서 비굴하지도 않아요. 정말 마음에 드는 캐릭터다. 차분하고 강단 있는 여자. 아버지 앞에서 완벽하게 사랑하는 연기를 해주는 주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지만,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한다.

 

남자 주인공 도주환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그도 골치 아픈 스캔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연서와 계약을 맺었지만 연서와 결혼을 하고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처음과 다르게 연서에게 이끌리게 된다. 그 과정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누구처럼 츤츤거리지 않고, 못되지도 않다. 한없이 다정하고 든든한 남자다.

 

가짜로 시작된 결혼생활. 공간을 공유하며, 시간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그들.
시나브로, ATRAER.. 서서히 서로에게 이끌려버린 두 사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는 일이니까.
남들 다 하고 사는 걸 보여 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남들 보며 부러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 주고 싶었어. 아버님은 좋은 기억만 가져가시라고. 그런 아버지 보면서 이 여자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고. 결혼 잘하면 이런 느낌이다. 신혼은 원래 이런 재미다. 저 여자한테 알게 해 주고 싶었어."

 

처음엔 그냥 슬펐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연서가, 혼자 남을 딸이 걱정스러운 아버지가 말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런 연서 곁에 주환이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비록 처음은 가짜였을지라도 아버지를 지켜주고, 연서 곁을 지켜주는 주환이가 얼마나 멋지던지..  그야말로 완소남편이다.

 

연서가 물론 좋다. 주환을 오래 기다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외롭고 힘들어하는 주환을 위해서 멋진 일도 하고 주환을 향해 예쁘게 웃어주니까. 아버지를 보내고 크게 상심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주환 곁에서 씩씩해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참 다행이었다.

 

서정윤 작가님의 책은 매치포인트, 차오르다, 풀베팅 이런 세 작품을 읽었었는데.. 대부분 진하고 강렬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아뜰라에르'는 감성적이고 진한 감동이 있다. 요즘 러브신이 들어간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런 진한 장면이 없어도, 모성애 못지않은 강한 부성애도 느낄 수 있고, 가족 간의 사랑도 느낄 수 있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무서워하고 멀리하던 두 남녀가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사랑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니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