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날들
윤제이 지음 / 도서출판 오후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윤제이 작가님의 글은 그날들이 처음이네요.
전작은 이북으로 소장 중인데.. 읽을 생각을 못했네요.
그날들.. 제목이 참 예뻐요. 물론, 표지도 예쁘고요. 제목과, 표지만큼 예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읽어나갔어요.
서윤 (31)
정원주 (32)
원주는 스물다섯에 일곱 살 차이의 중소기업 자제와 결혼을 했다. 결혼 7년차, 시집에서는 가난한 집 딸이라며 은근히 무시를 하고, 남편
또한 그녀를 집 가구 취급한다.
그러던 중 남편의 외도로 7년 결혼 생활의 종지를 찍게 된다. 남편의 내연녀와 만나던 날, 13년 전 헤어진 윤과 마주하게 되는
원주.
13년 전 원주와 윤은 무슨 사이였을까요?
13년 전, 원주 19세, 윤 18세.
어렸을 적, 집을 나간 엄마, 공사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일 노동자인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19살의 원주.
그런 그녀의 옆집으로 아버지 공사장 동료인 서 씨 아저씨와 윤이 이사 오게 됩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표상인 달동네에서의 생활.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학교에서도 그저 그런 날라리처럼 행동하는 원주와 달리 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
원주의 목표는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에요.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달동네를 떠날 수 있으니..
연상연하인 그들의 사이에서 나이차는 전혀 느낄 수 없어요. 항상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윤과 철부지처럼 행동하는 원주때문에 말이죠.
이사 와 1년이란 시간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미묘한 감정을 깨닫게 되요.
그렇지만 원주가 바라는 것을 윤은 해줄 수가 없기에, 원주는 윤을 받아줄 수가 없었고, 윤은 윤대로 자신의 현실을 알기에 원주에 자신을
받아달라 말하지 못해요.
원주가 졸업을 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13년 후, 이혼한 여자로, 잘 나가는 회사 팀장으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1년 남짓 알았던 사이, 채 피워보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의 사랑이란 감정.
13년 동안 두 사람은 무엇을 그렇게도 그리워했을까?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렬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설명하고 단정 지을 수 없다지만 두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윤을 다시 만난 원주는 이혼했다는 것 때문에 쉽사리 윤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옛날 생날라리, 철부지 같았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7년이란 결혼생활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 앞에서 머뭇머뭇 거리는 원주.. 조금은 아쉬웠다.
모범생이었던 윤은 역시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미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현재 M사 데이터 관련 팀장으로 잘 나가는 남자가
되어있었다.
13년 만에 다시 만난 원주가, 예전의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생기발랄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도 없이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났어요.
재회한 날 그녀에게 "헛똑똑이"라 내뱉고 뒤돌아버렸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은 아직까지도 원주를 향해있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금 원주를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죠.
그런 윤의 말에 원주도 받아들이고, 13년 전 이어가지 못했던 연을 다시금 시작하게 되요.
초반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어 진행되었는데 흥미로웠어요.
과거 생기발랄했던 원주와 현재 무미건조한 원주. 7년이란 시간 동안 원주가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을 했는지를 알려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두 사람이 재회한 후 진행되는 이야기는 좀 아쉬웠어요. 굴곡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찍 해피엔딩을 맞이한 느낌이랄까요?
제가 너무 막장을 많이 봤나요? 갓 피운 봄꽃처럼 귀여운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실망스럽더라고요.
13년 시간의 간극이 너무나 쉽게 메워지는 것 같았어요.
이혼한 전 남편과의 무언가 트러블을 기대했는데, 심심하지 지나가고 오로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서 더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윤을 만나고 나서 조금은 머뭇머뭇 대던 원주가 다시금 생기를 되찾고, 원주를 만나서 가슴 한편 비워진 곳을 가득 채우는 윤은 보기
좋아요.
"우리는 둘 다 서로를
온전히 가질 필요가 있어. 네 이혼 경력으로 나와 격차를 벌리려는 자격지심 같은 것 없이 그저 너를 사랑하는 그 자체로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번에도 열심히 생각해
달라고. 단, 누구를 대신해하는 것 말고 네 인생, 네
사랑, 네 꿈. 그런 걸 생각해."
"그리고
그 안에 내가 꼭 있어야 하는지도. 내가 있어서 네가 불행할 것 같으면 네 인생에서 나는 빼도 돼. 그게 아니라면, 와서
잡아."
"나는 같은 자리에 있을
거니까 천천히, 열심히 생각해서 네가 정해. 나한테 올지 말지. 어떤 결정이든, 네 선택을 존중할
거야."
자신과 만나며 머뭇대는 원주를 알아차리고, 그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들어주는 윤. 정말 멋진 남자였어요.
무엇보다 에필로그가 좋았어요.
어릴 적 잠깐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윤이 결혼 후 원주가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그곳을 찾았는 장면이 나와요.
그곳에서는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을 거라 말하던 원주가 윤이와 그곳을 찾으며 비로소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데 어찌나
두근대던지 모르겠어요.
헤어진 13년이란 시간 동안 윤을 잊지 못했었다는 그 말.. 항상 꿈속에서 윤을 만났던 원주가 시원하게 고백하는 장면.. 좋았네요.
처음 읽은 윤제이 작가님의 글. 기대보다는 아니었지만 괜찮았어요. 그래서 전작을 읽어보려고요. 전작은 인기가 많더라고요.
어느 순간 나는 꽤 오래전부터 당신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하던 날,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방에 내가 처음 발을 들여놓던 날. 혹은 가벼운 내 담뱃갑이
당신의 책가방, 무거운 참고서들 사이로 던져졌을 때부터.
잘 살아, 정원주. 행복하게.
이제 내게 그것은 웃음 끝에 나를 보는 당신의 조용한 시선, 당신과의
소소한 말다툼, 사과 대신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당겨 안는 당신의 단단한 팔. 내 팔에서 잠든 아이를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당신이 받아 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꿈에서 당신을 보지 않습니다. - 원주
said.
그가 일찌감치 터득한 인생의 속성이란 빈익빈 부익부, 균일하지 않은
흐름. 평균 수명의 법칙을 벗어나 일찍 세상을 뜬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불행은
무작위인 듯 무작위 하지 않게 찾아왔다. 원의 무한한 합이 일말의 이지러짐 없이 정확히 구가 되는 논리, 그가 수의 세계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정원주, 정말이지 그녀는 그의 인생을 통틀어 그렇게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러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무無
논리. - 윤 sa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