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만한 눈사람 ㅣ 생각하는 분홍고래 3
세예드 알리 쇼자에 글, 엘라헤 타헤리얀 그림, 김시형 옮김 / 분홍고래 / 2013년 12월
평점 :
'눈사람'하면 떠오르는 것이라면 어린 시절 눈사람을 만들었던 추억, 겨울을 대표하는 이미지, 추운 겨울을 오히려 따뜻하게 기억하게 하는 것, 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눈사람은 그런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 책 속의 눈사람은 권력의 횡포를 상징한다.
표지그림에 낮은 집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곳이 눈이 쌓인 들판인 줄 알았더니 커다란 눈사람의 등이다. 등을 돌리고 큰 모자를 쓴 눈사람의 옆모습은 우리가 떠올리는 귀엽고 포근한 이미지와는 다르다. 도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느 외딴 마을에 눈이 이틀 동안 펑펑 내렸다. 눈이 그치고 아이들은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세상에서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눈사람이 다 완성되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바로 눈사람이 커다란 고함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눈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 눈사람이 먹을 것과 얼음을 가져오고, 눈사람이 녹지 않게 햇빛 가리개를 드리우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눈사람의 명령은 갈수록 더 많아지고 희한해지고 터무니없어졌다.
책 속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눈사람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햇빛이 눈사람의 말을 확인할 때에도 눈사람의 말이 맞다고, 봄이 오는 것도 싫고 여름이 기다려지지도 않는다고 마음과 다르게 이야기한다. 요즘 영화 '변호인'의 열풍이 불어서일까. 사회의 부조리, 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것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 보았었다.
학교나 교실 밖에서 아이들도 나름의 부조리한 상황을 겪을 수 있고 왕따나 힘센 아이에 의해 권력의 횡포를 경험할 수도 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거나 부조리에 대항에 말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서 입을 다물 수 있다. 때로는 누군가가 용감하게 나서서 바른 말을 하더라도 소수의 힘으로는 권력의 횡포를 이겨낼 수 없으리라 지레 겁먹고 같이 나서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눈감았을 때 우리는 따뜻한 봄이 아닌 지리한 겨울을 보낼 뿐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꼭 책의 의미를 다 알아차리지 않아도 좋다. 어떤 터무니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냥 따르기보다는 한번쯤은 생각해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의 내용상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여러 가지 수업이 가능할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읽었을 때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