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있는 ‘빨간 모자의 이야기 틀을 가져왔으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는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뉴욕의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그림 속엔 쓰레기와 벽에 지저분하게 그려진 낙서가 넘쳐나고, 길거리에 누워 자는 노숙자, 페인트가 벗겨지고 더럽고 낡은 집 등 도시 뒷골목의 풍경을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세밀함이 참 불편하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실은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거든.”이라는 말처럼, 복잡하고 정신없는 도시엔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사건엔 무관심하다. 세밀하게 담아낸 도시의 모습은 복잡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우리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쳇바퀴 돌리듯 바쁜 도시의 생활이란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성폭력과 같은 끔찍한 사건을 겪는 아이의 사건엔 속수무책일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공 소피아는 도시숲의 뒷골목에서 길을 잃고 불량배를 만나는데 그때 소피아를 도와주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할머니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오토바이에 소피아를 태우는데 도중에 전화벨이 울리고 소피아를 더 이상 데려다 줄 수 없다고 한다. 소피아는 다시 할머니집을 향해 뛰어간다. 그러나 소피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할머니가 아니었다.

성폭력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소피아를 도와주었던 남자는 다시, 늑대의 얼굴을 하고 할머니 집 앞에서 사라진다. 소피아를 도와주는 거라 생각되었던 착한 남자가 성폭력범이라는 것……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라면 경계하라는 말을 꼭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지만 아동 성추행과 성폭력이 같은 동네의 면식범에 의해 많이 일어난다는 것, 친절하고 정중한 태도로 아이를 무장해제 시킨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주어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성폭력의 현실을 섬뜩하리만치 긴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지만 갑작스럽게 결말이 제시되어서인지 뒷부분에서는 좀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책에는 직접적인 성폭력의 언급은 없다. 아이들은 그저 막연히 뭔가 나쁜 일이 벌어졌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또한 경찰은 때늦은 도착으로 늑대 일당을 잡지도 못한다. 어쩌면 이게 냉정한 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아이들의 충격을 고려해서일까, "다르게 끝난다고 상상해 봐”라며 소피아의 구출이라는 다른 결말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작가는 성폭력에 처한 아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요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을 혼자 달려가는 어린 소녀를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주의 깊게 보았더라면 나쁜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도 소피아 엄마의 잘못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를 혼자 도시의 뒷골목을 지나 멀리 떨어진 할머니 댁까지 가도록 해서는 안되었다고. 갈수록 일하는 엄마들이 늘고 엄마가 오는 늦은 밤까지 혼자 집을 지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성범죄에 대한 예방교육이 더욱 필요할 듯 싶다.

    갈수록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들이 늘어가고 있다. 경찰의 순찰을 강화한다던지 행적적인 조치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도시숲에 사는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학교 선생님들과 자녀를 기르는 부모님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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