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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저는 과학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글은 과학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쓴 글이라는 점을 유념해서 봐 주시길...
※또한 이 글은 도킨스의 책은 반박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글입니다. 책을 소개하려는 의도가 아니니 참고해서 읽어 주십시오.
최근에 나온 '리처드 도킨스'라는 제목의 책(도킨스에 영향을 받은 여러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글을 모은 책) 에서, 존 크랩스라는 사람이 쓴 글의 첫 단락을 인용하겠다. 그가 어떤 가족의 저녁 모임에 초대를 받아서 여러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이렇게 소리를 쳤단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과학을 안 믿어요."
존 크랩스가 그 후에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이런 표현을 쓰면서 그 여성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기껏해야 두 번만 (도킨스를) 호출하면 과학을 믿지 않는 여성은 제정신을 차릴 것이다."
또 최근에 나온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엔 과학에 대한 믿음과 종교에 대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종교에 경도된 자들은 "그 책(성경)은 옳으며, 만일 증거가 그것과 모순되는 듯하면 그 책을 버리지 않고 증거를 버리"지만, 과학자들은 언제든지 "새 증거가 나오면 단번에 자신의 믿음을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위의 그 여자가 말하는 '과학을 믿지 않는다'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과학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은 도킨스와 갇은 '과학을 믿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과학은 증거를 통해 믿으며,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고, 또 증거가 반증되면 그 믿음을 버릴 수 있다(있어야 한다.). 하지만 종교는 원래의 믿음에 반하는 증거가 있다면 그 증거를 버린다. 그런데 이 종교자들의 (정신이 제대로 박힌 과학자가 볼 때 무식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한 ) 행동은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배우지도 않고' 행하는 행위이다. 즉 다시 말하면 잘 훈련된 과학자들과는 달리 보통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과학적 사고는 본성이 아니다. 어렵게 어렵게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에서는 양자역학도, 상대성이론도 아닌 '뉴턴역학'이 어떻게 본능적으로 잘못 이해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한다. 마이클 맥클로스키와 그의 동료들의 실험을 소개하는데, 물리학을 수강한 적이 있는 학생을 포함한 절반의 학생이 '공이 구부러진 관에서 발사되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심지어 데니스 프로핏의 연구에서는, 물리학과 교수도 필기구로 계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면 회전하는 팽이에 대해 잘못된 대답을 한다고 한다(계산을 시키면 15분 동한 계산하곤 '별 것 아니군'이라고 중얼거렸단다.).
그리고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책에서 다시 언급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본성이다. 종교가 진화의 직접적인 적응은 아닐지라도, 다른 종류의 진화적 적응에 대한 부산물로, 지구상의 어느 인종이든지간에 출현하게 되는 인간의 어떠한 특징이다. 과학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종교는 이해하기 쉽다.
종교가 왜 이해하기 쉬운지에 대한 대니얼 데닛의 예를 한 가지만 더 언급한다. 대니얼 데닛의 책 '마음의 진화'에서는 물리적 자세, 구조적 자세, 지향적 자세에 대한 설명을 한다. 물리적 자세란 물리법칙을 연구하는 방법이고(예를 들면, 돌멩이를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 구조적 자세란 '지름길'을 통해 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자명종 시계의 내부 물리 법칙을 파악할 필요 없이 '어느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고, 어느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꺼지고 하는' 식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 지향적 자세란 구조적 자세에 '인간의 행위에 대한 관점을 대입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자명종 시계를 설명할 때 '언제 일어날지를 이 녀석한테 말해서 요란한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인간의 마음은 생물체에 '지향적 자세'를 취하도록 진화하였고, 또 거기에 덧붙여서 무생물에까지 지향적 자세를 취하는 방법을 쓰도록 진화하였다. 나는 지금 지적설계니 창조론이니 하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물론 이 논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긴 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과학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자세는 사람들이 쉽게 취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명하는 관점을 배제하도록 진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강조하자면 과학은 보통의 사람들이 배우긴 너무 멀리 있고, 종교는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법으로 창조론을 언급하기라도 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진화론을 전면적으로 강조하여 아이들을 교육시킨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진화론을 모두모두 이해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까? 아닐걸. 진화론을 이해하기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인터넷 서점의 이기적 유전자 서평을 읽어 봐도 '너무 어렵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반응이 태반인데, 분명 진화론에 대한 별별 '지향적 믿음'들이 대중들에게 판치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알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원숭이가 인간이 되도록 이끌었고, 우린 그것을 신이라 부른다 뭐 이런 믿음)
그리고 한 가지 더. 과학은 만능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고 현재로 봐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과학이 과학의 이름으로 저지른 수많은 잘못된 역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라플라스의 결정론, 스키너의 행동주의, 골턴의 우생학, 이 모든 것들이 일반인의 눈에는 모두 '정밀한 과학'이었고,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 그 권위를 등에 업고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사실을 주입시켰다는 것을 기억하라. 일반인들이 과학을 불신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현대의 과학은 뭐 다를까? 도킨스의 생물학적 환원론도 언젠가는 한계에 노출될 것이다(그러니까, 언젠가는, 먼 언젠가는.). 이미 굴드가 호되게 비판했지만. 그리고, 현대의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도 과학의 진면목과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다. 혈액형 성격 분류법 밈이 그토록 광범위하게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걸 생각해 보라. 우리야 그게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들은 사실상 '정당한 과학'으로서 그것들을 믿었다. 바이오리듬을 보라. 완벽한 과학의 이름으로 대중들을 호도하여 사람들에게 정확한 과학적 연구물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과학이란 이런 것이다. 심지어 창조론도 일반인들에겐 '진화론과 맞먹을 수 있는' 과학 이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별 상관 없다고 느긴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친척 사촌이나 친구들 하나 붙잡고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논쟁들, 그리고 진화론이 옳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해 본 적 있는가? 아마 대부분 별 시덥잖은 반응을 보였을껄. 그들에겐 그런 시시한 것보다 고시 합격이나, 주식투자나, 그런 게 훨씬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창조론에 빠지게 된 사람들도 처음엔 이런 반응이었다가 교회를 다니면서 창조론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면 '너무나 멀리 있는' 과학에 대한 이해도의 부족 때문에.
이런 사람들 눈엔 진화론을 믿는 사람도 자신과 같은 '맹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들은 과학이고 우리가 맹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근데 그게 무서운 게, 과학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그냥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라. 그래서 도킨스가 종교가 무서운 것이라 한 것이고.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일반인들은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은 순수한 일반인도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격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유럽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멍청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들은 그냥 일반인인 것이다.
그래서 난 도킨스의 종교론에 대해 약간은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난 도킨스 빠돌인데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느꼈다.). '만들어진 신'에서 도킨스가 말하길, 종교는 무조건 없어져야 한단다(여기까진 나도 인정할 수 있다. 심지어 '무조건'이란 부사마저도). 그토록 강경한 어조로 말하는 걸 보니까 그는 인류에게 종교가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한 종교가 없어지면 한결 더 좋은 사회가 올 것 같단다. 내 생각엔 종교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또 종교가 없어진다 한들 그렇게 썩 좋은 사회는 올 것 같지 않다. 없어진 종교의 빈 자리를 무언가가 대체할 것 같다. 이를 테면 과학에 대한 잘못된 믿음 같은 거. 그리고 그게 종교의 '편 가르기'와 같은 못된 행태를 또 다시 불러일으킬 것 같다.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확장하는 원'이란 책에서 인간이 윤리의 경계를 확장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말하고, 이런 점에선 나도 인간이 분명 변할 수 있는 주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어려울 것 같다. 내 생각이 틀리길 빌겠지만. 뭐 하여튼 내 생각은 그렇다.
사실상 그 여자가 제정신이 아닌 건 아니다. 그 여자는 지극히 일반적인 '호모 사피엔스'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론 우리 과학자가 미친 거지. 왜 그런 제목의 책도 있잖아. "우리 수학자는 모두 약간 미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