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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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떠졌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10분. 창밖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다시 잠을 청하는 건 아.마.도 틀렸으리라.

잠 많은 내가 알람의 도움 없이 꼭두새벽에 눈을 뜨다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눈을 떠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로 작고 귀여운 검은 악마 <롤리타>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누구나 한번쯤 학창 시절에 야시시한 소설로 소개받아 호기심을 느껴본 적이 있었으리라. 나 역시 그중 하나였지만 그건 내가 성숙하기 이 ‘전’의 얘기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라인으로 <롤리타>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했다. 그렇고 그런 소설이든 저렇고 저런 소설이든 나보코프란 작가가 궁금했다. 그리고 <롤리타>는 또 어떤 소설인지 내가 직접 읽어봐야겠다고..

 

새벽 6시 50분. <롤리타>를 정복했다.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인 양 마음이 쪼그라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인공 험버트가 롤리타의 손짓 발짓에 절절히 반응하는 그 섬세하고 간절한 마음까지 그대로 전달돼왔다. 비록 소설이지만 롤리타에 항상 애간장을 태우는 험버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서른일곱 살의 험버트, 그의 마음을 뒤흔드는 발칙한 매력의 열두 살 소녀 롤리타. 세간의 눈으로 보면 그저 변태성욕자의 비뚤어진 애정 행각일 뿐이지만 적어도, 험버트에게는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애절하고 간절한 사랑이었다. 세상이 만들어낸 틀로, 심리분석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비정상적인 사랑일지 몰라도 사랑이란 감정으로 보면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측은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떳떳하게 사랑할 수 없을 뿐더러 사랑하는 롤리타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 못하고 떠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치만 보면 다행일지 모른다. 그가 남자이기에 사랑하는 롤리타에게 사랑과 더불어 갖게 되는, 활화산처럼 치밀어 오르는 욕망까지는 신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이래저래 그에겐 힘든 하루하루였다.

 

그는 롤리타를 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그녀의 어머니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해보면 그 역시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비록 비정상적인 결혼은 불행으로 끝났지만 자신의 딸이 된 롤리타는 지켜냈다. (스포라 이유는 생략.) 이때부터 그에겐 인생 최대의 행복이 찾아온다. 롤리타와 함께 미국 여정을 떠난 것이다. 그를 기다리는 건 비참한 결말뿐이었지만 그래도 험버트는 행복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롤리타와 함께였으니까 말이다. 누가 험버트를 욕할 것인가? 이토록 애절하고 슬픈 한 남자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를.....

 

2013년에 읽은 최고의 책 베스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롤리타>라 꼽을 것이다. 2013년이 열 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난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롤리타>는 그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롤리타> 총 497페이지를 소화하는 동안 롤리타에게 매료됐고 험버트에겐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책은 금서로 지정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당분간 내 머릿속은 개구쟁이 험버트의 장난스런 말투와 사랑을 위해 후회 없이 불나방이 되어 뛰어드는 모습으로 뒤덮일 것이다. 당분간 다른 책은 손에 잡히지 않아 힘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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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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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조차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인간인데 과연 누가 인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인간의 증명>을 읽으며 과연 어떻게 '인간'을 추리소설로 풀어낼지 정말, 내심, 은근히 기대했다. 솔직히 실망했다...+_+;

일본 호텔 엘레베이터에서 흑인이 살해당했다. 시작은 정말 궁금증을 자아내긴 충분했다. 일본, 흑인, 호텔, 살인. 무엇하나 연결된 게 전혀 없으니 역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기라는 듯 읽어나갔다. 일본 경찰은 미국에 살해 당한 흑인에 대한 정보를 보냈고 사건에 협조를 의뢰했다. 미국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 어두운 뒷골목 할렘가에 살던 그 흑인이 어떤 돈이 있어서 일본에 가게됐는지 동기, 집안에 일본에 관련된 그 어떤 자료, 가족관계까지 연결고리가 전무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인간의 증명>은 인간의 증명을 시작했다.

 

전 세계 인구 70억명.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들이 수십억 명이 있다는 얘기다. 내 옆에 있는 친구하고도 매일같이 의견 충돌로 다투고 자신의 선택에도 후회만 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의 밑바닥, 즉 본능으로 갈수록 어떨까? 증명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추잡하고 더러운 근성이 나올 것이다. 배가 고프면 친구를 속여서라도 빵 한조각이라도 더 먹으려 할 것이고 돈이 없어 생계가 골란해지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불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건드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 어떤 직이라도 할지 모른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고 살인을 저질러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역시 그러하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여러 말들을 늘어놓았냐 하면 <인간의 증명>에서 나오는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도 할 수 있다. 근데 거기까지다. '그렇지, 이런 쓰레기같은 인간들도 있었지.'라고...

 

스포가 조금 포함될 수 있겠지만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어머니,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식을 팔아먹은 어머니, 부모의 사랑대신 돈으로만 키워진 아이, 돈과 출세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인간 등등. 우리 사회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인간 말종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과연 미워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법을 어기거나 불법을 저지른 적은 없지만 그런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실행만 안 했을 뿐이지, 만약 기회가 있다면 나도 그들처럼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인간을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으며 인간은 꼭 추잡하고 나쁘지만은 않다. 나 역시 나쁜 마음은 항시 갖긴 하지만 그렇게 나쁜 인간이 아닌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그래도 희망은 있지 않나? 그래도 내일은 괜찮겠지, 내년엔 좀 더 발전하겠지, 라는 믿음같은 거 말이다. 보이지도 말도 되지도 않지만 그 희망마저 없다면 그땐 정말 우리 인간들의 끝을 보게 될지 모른다. '인간의 증명'에 너무 초점을 맞췄지만 추리소설로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다만, 내 기대에 실망했다는 것뿐이다. 1970년대 작품이다 보니 뭐 다소 싱거웠을 수도 있겠고. 

당시 일본은 모든 분야에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 사회구조에 대해 비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뭐 이런 걸 다 이해를 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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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구보 미스미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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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는다. 한 번의 상처가 평생의 삶을 옭죄기도 하고 그냥 잊히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장치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면 그 기억이라는 쓸데 없는 장치가 어김없이 작동하여 상처를 다시 헤집는다. 그렇게 평생 상처를 받고 또 받고, 다시 받고 죽을 때까지 받는다.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에는 가슴 상처를 안고 사는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유토. 그는 사랑을 주는 방법도, 받는 방법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애인에게 표현다운 표현을 하지도 못한 채 차여버렸다. 만약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면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떠났고 그에겐 상처라는 깊은 구멍이 생겨버렸다.

그림 그리는 재능을 타고난 노노카.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그녀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화가를 꿈꾸기는커녕 물감 살 돈조차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학교 선생님의 배려로 미술 학원 선생님을 소개받고 무료로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인생이나 소설이나 다 비슷한 걸까? 초반은 모두 다 행복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그녀의 몸을 탐냈고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 다행히 남자 쪽 집안이 부자였고 고등학생인 노노카를 받아들여 아이를 낳게 한다. 하지만 결혼 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운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인 노노카는 아이를 키우다가 이내 아이에게 증오를 느낀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이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이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다.

마사코는 외동딸이자 둘째딸이다. 마사코의 언니는 아기였을 때 병으로 죽었다. 언니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마사코에게 엄마는 트라우마때문에 청결에 병적으로 신경을 쓴다. 마사코 방에는 먼지 하나 없고 가공식품을 먹이지 않고 외출도 거의 시키지 않는다. 이 모든 이유는 ‘마사코를 위해서’였다. 마사코 개인의 의견은 전부 묵살되고 오로지 그녀의 안전을 위한 것들만 남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숨 막혀 하던 마사코는 결국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상처를 하나씩 지닌 세 명의 인생 이야기다. 이들이 가진 상처와 내가 가진, 혹은 당신이 가진 상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상처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난 어릴 적부터 엄마의 과잉 보호 아래 자랐다.

물론 난 온실 속의 화초이길 거부하여 반항하다가 결국 스무 살 때부터 온전히 내 판단만으로 행동했다. 그전까지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성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고 다짜고짜 “인문계 학교에 다니니?”라는 질문을 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셨다. 상업계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바로 끊어버리고 인문계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어느 학교인지, 무슨 사이인지 꼬치꼬치 조사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조건에 통과하면 그때서야 나에게로 수화기가 전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성 친구는 물론 내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학교를 물었고 전화를 필터링했다.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던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소식을 전해들은 듯했다. 물론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쨌든 나 또한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누구보다 더 깊이 공감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었다.

비단 나만 이렇게 공감하는 내용일까?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을 읽으며 소설속 주인공과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슬퍼했으며 같이 힘을 얻었다. 요즘, 행복하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지 못했다. 다들 힘들다, 죽고 싶다, 불행하다, 라는 말뿐이다. 나 역시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 어쩌다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불행하게 돼버린걸까? 우리에게 행복이란 사치일뿐이란 말인가?

행복이란 열쇠를 언제쯤 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뿐인 인생 후회없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잠시 길은 잃어도 다시 돌아올 자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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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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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게 가공선>의 강렬한 첫 문장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 시원한 책이다.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지금의 노동이라는 개념과 당시의 개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가 다르다. 일단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과 연봉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일정하게 돈을 지급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게 가공선>에서의 노동자들은 어떠한 기준도 없이 그저 주는대로 받아야만 했다. 누구하나 뭐라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떠한 '기준'이 없었고 그땐 다 그랬으니까...

게잡이를 떠난 가공선. 그 배 안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적은 돈을 받는지 알면서도 떠나야 했다. 그리곤 혹독한 노동을 바쳐야 했다. 아파도, 힘들어도 감독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폭행을 가했다. 뼈를 짜내는 노동과 강압적인 분위기, 그래도 일은 멈추지 않는다. 체력의 한계에 봉착한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감독에게 피곤함을 호소하지만 덕분에 노동시간만 늘었다. 참고 참은 노동자들은 한가지 고안을 짜낸다. 바로 다 같이 태업을 하는 것이다. 감독이 뭐라고 하든 말든 그들은 힘을 아끼며 천천~히 일을 하며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단결하여 파업을 시도한다. 결국 파업은 실패로 끝나지만 그들은 실패를 경험으로 부당함을 호소하는 방식을 배운 것이다.

<게 가공선>은 131페이지다. 커피 한잔을 느긋하게 마신다면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예나 지금이나 파업하는 형태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적은 임금, 노동 착취, 비인격적 대우 등 점차 심해지며 불만이 쌓이다 이내 모든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호소하는 것.

나도 게 가공선의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다. 같은 노동자이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다. 그런데 나도 그들처럼 부당한 대우에 항의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가끔 TV나 잡지에서 보던 회사 내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아달라 요구하는 사람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사람처럼,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장담은 못하겠지만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은 혹시 모를 보복이나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진 못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먹는 것도 세상이 아직은 <게 가공선>이 출판 금지 당한 1930년대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뭉쳐야 한다.

부당하면 부당하다 외치고 싫으면 싫다고 외칠 수 있는 권리.....하지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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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년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3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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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전 작가든 작품이든 한번 좋아하면 죽을 때까지 좋아한다! 가상의 캐릭터면 더더욱!

기다리고 기다리던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세 번째 편 <사라진 소년>이 출간됐다^^/ 이번엔 어떤 내용으로 날 웃겨줄지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읽기 전부터 키킥거리며 펼쳤다. 이 탐정은 분명 새로운 돌아이 짓으로 날 행복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에 대한 소개를 다시 한 번 해야겠다.

 

 

난 이제까지 탐정 소설들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다 비슷비슷한 취향을 가진 탐정들이 어쩌면 뻔한 결말을 향해 요리조리 돌려가며 사건을 요리하다가 마지막쯤 되서 짠! 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유치해서 도무지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쉽게 질려하는 성격 때문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어쩐지 줄줄이 비엔나처럼 늘어져 있는 활자를 눈으로 좇으며 읽어가는 동시에, 머릿속에 트릭을 생각하며 풀어내는 게 귀찮아서였을지 모른다. 일정한 틀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반드시 풀어내고 해결해야만 끝나는 그런 탐정 소설들은 좋아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라고 고백해본다.

그런데....

<탐정은 바에 있다>의 깡다구 있는 탐정 놈은 완전 내 스타일이다. 이 책을 처음 알았던 건 9월 일본 여행에서였다. 지나가다 한 서점에 들렀는데 마침 <탐정은 바에 있다>가 영화화되어 막 인기를 끌던 때였다. 이곳저곳이 <탐정은 바에 있다>로 도배되어 있었다.

작가 아즈마 나오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삿포로 토박이로 살고 있다. 삿포로 지역의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로 12편이 나왔고 그중 <탐정은 바에 있다>는 첫 번째 편이다. 스스키노는 삿포로 시의 번화가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신촌쯤 될 거다.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들과 삐끼들이 때로 몰려다니며 손님들을 유혹하는 도시다.

 

 

 

 

착각인 줄은 모르지만 이 탐정은 묘하게 나랑 닮았다.^^ 내가 닮고 싶어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고. 어딘가 행동이 멍청이 같아 보이지만 정의롭고 의리가 있다. 또 사람 좋아하고 술, 여자, 노는 걸 기똥차게 좋아한다.^^ 키키...(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ㅋ)

 

평소처럼 탐정은 단골 바 ‘캘러’에서 한잔하고 있을 때다. 미모를 자랑하는 여선생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게 웬 떡이냐?"라고 침을 흘릴 때 뭔가 부탁을 해온다. 자기 학생을 찾아야 하는데 도와달라고...+_+;; (그 선생님은 <바에 걸려온 전화>에 잠깐 등장한다)

 

절대로 그 선생님이 예뻐서 도와준 건 아니다. 그냥 부탁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줬을 뿐이다. 매춘업소 같은 곳에 중학생 아이가 있다니… 그런 소굴엔 당연히 양아치들이 있기 마련! 뭐 두 말할 것 없이 미모의 선생을 위해 양아치 몇 명을 때려눕힌다. 그렇게 미모의 선생님과 엉뚱한 중학생 쇼이치의 인연은 시작된다. 어딘가 모르게 정신없이 스타트를 끊은 이들의 관계는 앞으로 더 정신없게 흘러간다.

원래 탐정은 사건을 의뢰받고 시작하는 게 맞는 건데 이번엔 무보수로 일을 한다. 어쩐지 조금 이상하지만 그 선생님은 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다. 그리고 이 탐정 역시 보수를 요구할 텐데 아무 말도 없다. 이것은 미모의 선생님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본분(?)을 잊은 건 아닐까?+_+ (역시 남자란...ㅋ)

 

어쨌든 요란하게 오프닝을 열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맛보기일 뿐이다. 본격적인 사건은 이제 시작한다. 또다시 미모의 선생님은 탐정을 찾아온다. 그것도 가냘프게 울면서 말이다.(이거 어디서 해본 수법을...+_+) 사고 쳤던 쇼이치가 실종됐다는 소식, 그리고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것이다. 발가벗겨진 채 성기가 아주 처참하게 훼손된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이때부터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아이는 왜 그렇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인가? 쇼이치는 이 사건과 어떤 관계이고 어디에 있는가? 과연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 사건으로 중학교 선생님, 경찰, 기자, 탐정, 야쿠자까지 대대적으로 쇼이치를 찾아 나섰다. 어떤 사건으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쇼이치를 찾는지 한번 찾아보시길...^^

탐정은 여전했다. 말보단 주먹, 진지함보단 장난이었다. 까불까불한 말투 역시 매력적이다. ㅎㅎㅎ 어찌나 그렇게 천방지축인지.^^

 

스토리보다 탐정의 말과 행동의 주목했다. 난 역시 그 재미에 <사라진 소년>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엉뚱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혹시 본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일본에서 <탐정은 바에 있다> 영화도 개봉했다. 아쉽게도 국내에선 정식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어둠의 경로에는 당근 있다.^^) 역시 이 탐정은 살아 있는 영상으로 봐야 더 매력 있는데 말이지.... 이번엔 개봉하려나 모르겠다! 어쨌든, 이 똘추 탐정은 언제 봐도 날 즐겁게 만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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