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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구보 미스미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는다. 한 번의 상처가 평생의 삶을 옭죄기도 하고 그냥 잊히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장치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면 그 기억이라는 쓸데 없는 장치가 어김없이 작동하여 상처를 다시 헤집는다. 그렇게 평생 상처를 받고 또 받고, 다시 받고 죽을 때까지 받는다.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에는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사는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유토. 그는 사랑을 주는 방법도, 받는 방법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애인에게 표현다운 표현을 하지도 못한 채 차여버렸다. 만약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면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떠났고 그에겐 상처라는 깊은 구멍이 생겨버렸다.
그림 그리는 재능을 타고난 노노카.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그녀에겐 치명적인 걸림돌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화가를 꿈꾸기는커녕 물감 살 돈조차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학교 선생님의 배려로 미술 학원 선생님을 소개받고 무료로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인생이나 소설이나 다 비슷한 걸까? 초반은 모두 다 행복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그녀의 몸을 탐냈고 덜컥 임신을 해버렸다. 다행히 남자 쪽 집안이 부자였고 고등학생인 노노카를 받아들여 아이를 낳게 한다. 하지만 결혼 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운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인 노노카는 아이를 키우다가 이내 아이에게 증오를 느낀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이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이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다.
마사코는 외동딸이자 둘째딸이다. 마사코의 언니는 아기였을 때 병으로 죽었다. 언니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마사코에게 엄마는 트라우마때문에 청결에 병적으로 신경을 쓴다. 마사코 방에는 먼지 하나 없고 가공식품을 먹이지 않고 외출도 거의 시키지 않는다. 이 모든 이유는 ‘마사코를 위해서’였다. 마사코 개인의 의견은 전부 묵살되고 오로지 그녀의 안전을 위한 것들만 남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숨 막혀 하던 마사코는 결국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상처를 하나씩 지닌 세 명의 인생 이야기다. 이들이 가진 상처와 내가 가진, 혹은 당신이 가진 상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상처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난 어릴 적부터 엄마의 과잉 보호 아래 자랐다.
물론 난 온실 속의 화초이길 거부하여 반항하다가 결국 스무 살 때부터 온전히 내 판단만으로 행동했다. 그전까지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성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고 다짜고짜 “인문계 학교에 다니니?”라는 질문을 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셨다. 상업계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바로 끊어버리고 인문계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어느 학교인지, 무슨 사이인지 꼬치꼬치 조사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조건에 통과하면 그때서야 나에게로 수화기가 전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성 친구는 물론 내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학교를 물었고 전화를 필터링했다.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던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소식을 전해들은 듯했다. 물론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쨌든 나 또한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누구보다 더 깊이 공감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었다.
비단 나만 이렇게 공감하는 내용일까?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을 읽으며 소설속 주인공과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슬퍼했으며 같이 힘을 얻었다. 요즘, 행복하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지 못했다. 다들 힘들다, 죽고 싶다, 불행하다, 라는 말뿐이다. 나 역시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 어쩌다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불행하게 돼버린걸까? 우리에게 행복이란 사치일뿐이란 말인가?
행복이란 열쇠를 언제쯤 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번뿐인 인생 후회없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잠시 길은 잃어도 다시 돌아올 자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