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란 무엇일까..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안식처이자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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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개역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 까치 / 2003년 5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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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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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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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서구의 충돌- '한국적 근대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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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서의 역사와 사실로서의 역사 ..어느것을 더 관심을 가져야 할까..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란다.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입한적이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그러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무리들을 그냥 놓아두는 나라..엿같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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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노무현 외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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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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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민족의 형성과 민족 문화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4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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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 20세기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개정판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4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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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틀림없이 갔다.
모든 것을 걸고라도 확언컨대 장준하가 대통령이었다면 그분도 어김없이 그 위험천만한 곳에 갔을 것이다.
 
왜정 말기 조선놈들 목숨으로 방패를 삼으려던 왜놈들에게 학도병으로 끌려간 장준하는 중국에서 결사적인 탈출을 감행하여 거친 황야에서 돌베개를 베면서도 마침내 광복군을 찾아간다.
광복군으로 조국 진공을 준비하던 중 맞이한 때 이른 통탄의 해방 후 귀국한 장준하 앞에 펼쳐지는 조국은, 왜놈들 앞잡이 하던 수괴 박정희가 왜놈식 스탈린식 폭력적 압축성장으로 기층민중을 희생시켜 극소수 윗대가리부터 배불리고 쓰레기 같은 찌꺼기가 남으면, 당연히 주어야 할 것의 수백 수천분의 일조차 마치 은혜라도 베풀 듯 희생자들에게 던져주는 곳이었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왜놈이 가니 그 왜놈의 떨거지가 수괴가 되어 다시 민중을 뜯어먹는 꼴이라니.
 
그는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너무나도 정의롭고 옳은 것이었다.
옥중에서 출마한 그를 민중들은 국회로 밀어 넣었고 그는 국방위원회에 들어갔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나라에서 제일 힘센 놈이 누구겠는가.
그 나라의 의원이란 또 얼마나 약한 것인가.
 
그러나 그 기세등등하고 국회의원 알기를 개똥으로도 여기지 않던 군부의 장성들도 장준하에게만은 꼼짝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였을까.
 
그는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왜놈들에 질식당해 꼼짝못하던 그때, 그는 이미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광복군의 자랑스런 군인이었고 왜군에서 군인질이라도 하여 먹고살려던 자기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존개감이 압도해오는,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참된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군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사업을 위해 국방 예산을 깎으려 들 때 장준하 의원은 오히려 국방비 예산 증액을 주장했다.
나라가 있고서야 지역이 있고 나라가 있으려면 군대가 강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정치에 물들어 썪어빠진 정치군인의 마음에까지 울렸기에 그들은 기꺼이 장준하 의원 앞에서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그런 장준하도 월남 파병을 반대했다. 극렬히 반대했다.
그럴 수밖에.
그 더러운 미제의 전쟁에 어찌하여 우리 청년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얻어지는 몇 푼돈으로 조국의 이념이 훼손되어 당연하단 말인가.
 
그러나 파병이 의결되고 실제로 파병이 이루어지자 장준하는 자기부터 아들을 월남으로 보냈다.
그리고 아들이 부상하여 돌아오자 아들이 누워 있는 병실을 찾아와 보고는 아무 말없이 나가버렸다.
옥중에 갇힌 장준하를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사탕을 한개씩 나누어 주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그의 아내는 그것이 그렇게도 야속했단다. 아마 전사라도 했으면 기뻐했을 사람이련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장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부당한 파병에는 끝까지 반대하였으나 일단 그것이 결정된 다음에는 자기부터 가장 먼저 뛰어든 사람이다.
그런 분이 대통령이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었더라도 히틀러의 침략보다 더 역겨운 미제의 침략 전쟁에 어거지로 쑤셔넣은 우리 청년들에 어떻게라도 힘을 주고 격려해 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대하고 돌아오는 길에 느낄 그 쓰라림과 묵직함을 예견했다 하여도 그는 갔을 것이다.
 
대통령께서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것에 대하여 자칭 진보라는 것들이 싸질러대는 더러운 정론(正論)은 나를 역겹게 한다. 이라크 전쟁이 부도덕하고 그래서 노무현이 학살 도우미라는 그들 주장이 비록 옳다 하여도, 나는 그 옳음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한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지 진보만의, 개혁만의 대통령이 아닌 것이다. 수많은 생령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통령이고 그들이 자기를 개구리로 부르건 말건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인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의 대통령으로 국가의 명운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대통령으로 그분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오고 있다.
 
젊은 병사를 껴안은 국군 최고통수권자의 환한 얼굴 뒤편에서 나는 조국을 위하여 흘리는 맑은 눈물을 본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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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많은 것을 발명했고 개발했다. 그런데 인류가 발명하고 개발한 것 중에 인간에게 진짜 행복을 더해준 게 뭘까. 많은 발명들이 인간에게 행복 더해준 게 있으면 또 그만한 위험과 부담을 안겨줬다. 지금은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세계 문명을 누가 주도했느냐고 했을 때 에게해에서 지중해로,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그리고 미국을 넘어서 태평양으로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의 주도권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른 거다. 물질 풍요와 힘에 의해 남을 지배할 수 있던 힘이 어디에 있었냐는 것이죠. 태평양 건너 이제 한반도에서 때가 온다고 얘기하고 있다. 저는 그 기준을 좀 다르게 생각했다. 역사에서 인류가 발명한 가장 훌륭했던 게 저는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혁명. 왜냐하면 그 많은 것 중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복종하고 수탈하는 관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인간이 부닥쳐 있는 문제 가운데 오늘날은 생태계 문제가 새롭게 대두하고 있지만 적어도 환경과 생태계 문제가 대두하기 전까지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 문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 모든 불행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다. 지배와 복종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나머지는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근본적으로 신분제 질서의 사회에서 적어도 명분으로라도 실질적으로 그 당시 제3계급이라는 것이, 진정한 인간평등을 실현할 의지가 있었느냐는 별개로 하더라도, 적어도 인류역사상 명분에 있어서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우고 성공했던 혁명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충분히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충분히 다 성취하지 않지만 어떻든 우리 인류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발명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질서 속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있고 힘의 질서가 지배하고 아직도 곳곳에서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해결할만한 국제적인 역량은 부족하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국가 간 질서에서 정복과 지배의 질서, 요즘에는 간섭을 통한 간접적 지배의 질서, 이 질서가 해소되고 여기에도 상호 존중과 협력에 의한 공존의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인간이 또 뭘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결국 국가 간의 힘겨루기, 그것이 지난 세기에 엄청난 세계적인 전쟁들을 가져왔고 인간을 불행으로 몰고 갔으나 아직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면 성공의 사례는 역시 EU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EU가 완벽하게 성공하면 그게 새로운 세계질서로, 전 세계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됐을 때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또 긴 세월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다. 만일 EU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우리에게 닥쳐올, 우리 후손들이 부딪혀야 할 역사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스스로 과학기술 문명을 인간의 평화 공존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소위 도덕적 통제력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EU를 굉장히 의미 있게 보고 있고, 제 개인적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우리도 저리로 가자고 국민들에게도, 이웃나라에게도 말하고 있다. 전 이번 유럽방문을 계기로 꼭 확인하고 싶은 게 EU의 미래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도 한번 실현해보는 거다. 아마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민들 마음속에 이를 희망으로 담으면 그것은 실현될 거다. 오늘날 아무리 큰 소리 치는 정치인도 국민들이 싫어하는 일 못한다. 결국 국민들 원하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세상을 바꾸려면 위대한 지도자 한사람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국민들 마음속에 새로운 시대를 향한 올바른 생각이 자리잡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파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런 다짐을 하고 싶고, 이곳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파리를 방문해서 여러분에게 방문목적과 하고 갈 일 등 몇 가지 보고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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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자유주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 개념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말 그대로 상당히 자유롭게 쓰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1등공신이자 지금도 최전방에서 앞장서고 있는 유시민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 칭하고 있다. 그리고 민노당이나 시민단체 등 이른바 짝퉁 좌파가 아닌 진짜 명품 좌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하여 자유주의자라고 공격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가 하는 사람 중에는 유시민과 정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재벌을 옹호하고 박정희 개발독재를 찬양하는 자유기업원 공병호 원장도 자칭 자유주의자의 대표적 인물이다. 여기에 옛날에는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은 노무현 정권의 좌파 정책에 치를 떨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시는 보수 세력들의 모습을 보면, 자유주의에 대한 개념 정리는 더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개념적 혼란에 또 한 다리를 걸친 것이 바로 조선과 동아의 환호를 받으며 New Right운동을 표방한 ‘자유주의 연대’이다. 이념적 좌표는 불확실하지만 정치적 스탠스에 있어서 ‘자유주의 연대’의 위치는 확실하다. 현실 정치의 좌표에서 분명히 反盧 진영에 속한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이러한 단순한 스펙트럼에 자신을 묶어두는 것을 원하지는 않겠지만, 참여정부를 수구 좌파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反盧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자유주의, 그리고 反盧의 길을 걷고 있는 ‘자유주의 연대’도 자유주의?




일반 보수 세력에게 자유주의는 상당히 유용하고도 매력적인 개념이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들은 늘 6.25때 북한 괴뢰로부터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열심히 싸웠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현재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해서도 극력 반대하는 이유는 북한의 남침위협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보수 세력에게 자유주의는 반공주의의 동일한 용어이다.




2001년 당시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정치권이 시끄러웠을 때, 이회창은 “당신의 견해에는 동조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 견해를 발표할 자유만은 옹호한다” 18세기 사상가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였다. 알다시피 볼테르는 18세기 계몽사상가로 굳이 이념으로 분류하자면 고전적 자유주의자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볼테르의 이 말이 이회창과 같은 보수 세력뿐만 아니라 진보 세력도 역시 즐겨 사용하는 명언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바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때 우리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유주의적 질서 회복을 외치고 있다.




이쯤 되면 자유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이현령비현령, 즉 진보나 보수 어디에 걸어도 알맞을 멋진 치장용 보석이 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고려대학교정치외교학과에 박사학위를 받은 이나미는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현재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진보, 보수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환영받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처럼 지고지순한 이념이기 때문에 진보나 보수 양측으로부터 환영받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진짜 명품 진보 혹은 좌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자유주의자라고 비난을 하는 것을 보면, 좌파와 우파로부터 환영받는 민주주의와 같은 반열의 위치를 자유주의란 이념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이러한 혼란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이나미는 공병호를 영어 공용화론을 주장한 복거일과 함께 ‘확실한’ 자유주의자로 분류하였고, ‘진정한’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유시민과 진중권에게 ‘불확실한’ 자유주의자라고 정의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나미는 명품 진보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유시민과 진중권에게 ‘불확실’의 타이틀을 붙이고, 반대편에 있는 공병호와 복거일에게 ‘확실’이란 타이틀을 붙인 것이다.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비판받아야 하고, 자유주의자들이 정치적 자유를 부르짖는 경우는 자신의 재산권이 위협받을 때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사람의 자유가 억압당하던 시절에는 모두 침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물론 유시민은 공병호와 복거일 등을 비판하며 ‘진정한’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는 분할될 수 없으며 “공병호씨의 주장을 들으면서, 이러한 주장이 자유주의라고 통용되는 사회라면 내가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시 긍정적 자유주의이다.




‘확실한’ 자유주의건 ‘불확실한’ 자유주의건 아니면 ‘진정한’ 자유주의건 이것을 구분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읽어야 할 책이 많고 그 정도의 지식이 나에겐 아직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현 시점에서 왜 자유주의인가의 문제이다. 그것도 보수 진영에서 별로 기존의 수구 세력과 차이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New Right라는 명명을 통해서 마치 하늘 아래 새 것이 나온 마냥 헛갈리게 하는 최대 무기로 자유주의를 들고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 한 보수적 정치학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자기 변신의 차원에서 자유주의와의 연계는 보수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고 사료된다. 양자 사이의 유기적인 연계가 실현될 경우 한국 보수주의는 민주화의 과정에서 생명력 있고 의미 있는 이데올로기로서 순환의 현상에 스스로를 적응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주의로 살아나 갈 수 있으리라고 전망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설프지만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보수주의 세력이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당시에 발표된 글이다. 보수주의는 자신들이 존재가치를 안티의 논리로만 세워왔다. 즉 북한공산집단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약발을 써먹기 어려운 시점에 그들은 자유주의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 시민사상으로, 억압적이고 차별적이었던 절대군주제와 전통적 계급 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근대시민사회를 건설한 근대 시민들의 건강한 이념”이다. 이 정도라면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비견해도 절대 손색이 없는 지고지순한 이념이다. 이러한 이념을 자기들 세력의 모토로 삼고자하는 욕심은 마치 예쁜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어 하는 중산층 여성의 마음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도망간 베드로에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 예수님의 말처럼, New Right운동을 하는 ‘자유주의 연대’에게 묻고 싶다. 많은 이들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을 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자유주의 연대’는 자유주의의 근간은 법치주의이고 입헌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열린우리당 의원이 앞장서서 사법 쿠데타라고 주장하는 것을 예로 들며 현 정부를 좌파 정부로 몰아붙이고 있다. 미안하지만, 헌법 질서에 의해 수립된 대통령을 보수 세력이 전복하기 위해 위헌적 탄핵을 실시하고 이것이 기각 판결이 났을 때 헌재의 판결에 수구 세력들이 불복하려고 할 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물론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자유주의 연대’는 답을 준비해 놓고 있다. 그들은 Old Right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이러한 ‘수구 우파에도 반대하면서 수구 좌파인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자 이쯤에서 이 정도의 세력들을 대변할 만한 정치적 스탠스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가끔 한나라당 내에서도 개혁세력에게 약간의 박수(?)를 받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된다. 원희룡, 고진화 같은 사람 정도가 그들이다. 가끔 김문수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수구 우파로 확실히 자리잡은지 옛날인 사람이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지만, 완벽한 기회주의자들이다. 난 원희룡이나 고진화보다 차라리 김용갑이 좋다. 김용갑은 솔직하며 확신범이다. 그에 비하여 원희룡이나 고진화는 ‘불확실한’ 개혁론자인 동시에 ‘확실한’ 수구 세력인 한나라당에 소속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수구세력의 품에 안기면서 가끔 개혁 이미지를 차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며 수구세력의 장신구 역할을 하고 있다.




고진화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몇 년 후에 하자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다음에 하겠다는 말은 안 하겠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 국가보안법이 처음 도입될 때 이를 두고 한시법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도입한 수구세력 그들 자신이다. 그것이 50년을 넘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유주의를 통해 바라본 ‘자유주의 연대’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들은 완벽한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 속에는 시민운동가 경력을 내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참 내가 맘에 안 들게 자신들의 허명을 위하여 운동하는 것이 티가 너무 난 사람들도 있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권력을 탐하던 사람들도 보인다. 하여간 모두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다.




주사파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전향서를 쓴 사람이 주사파를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이다. 그리고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은 북한에서 넘어와 조갑제와 꿍짝이 잘 맞고 있다. 가만 보면 학창 시절에 어설프게 주체사상 책 읽고 설쳐대던 사람들이 자신들은 전향했는데, 우리 보고는 아직 전향 안했다고 개혁세력을 향하여 색깔론의 화살을 들이대고 있다. 말은 자유주의자처럼 하면서 행동은 완전히 군사독재에 수구 꼴통 세력이다.




지금 개혁세력은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지도 않지만, 설사 마음 속으로 주체사상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양심의 자유에 반하게 솔직하게 고백을 강요할 권리는 국가를 비롯하여 지상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자유주의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민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자신감이 없는 독재 정권은 민중들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유를 허락하는 순간에 자신들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를 주는 정권은 민주 정권이고 이를 억압하는 정권은 독재 정권이 되는 것이다.




좌파 시각으로 자유주의를 보아도 민중들에게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그것이 유산자 계급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해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는 않는다는 면에서 이나미가 이야기한 ‘불확실한’ 자유주의자이자,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정도로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다는 면에서 유시민이 이야기한 ‘진정한’ 자유주의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진 자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자유주의 연대’는 자신들이 재산권이 위협받을 때에만 자유를 부르짖는, 이나미가 이야기한 ‘확실한’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의 극대화가 최대 목표인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나미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짧은 생각을 끝내고자 한다. 글 속에 ‘재산권’이란 단어를 ‘권력’으로만 살짝 바꿔보면, 의사와 메이저 신문, 그리고 ‘자유주의 연대’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집회를 하고, 보수 언론이 ‘탄압’에 저항하여 ‘언론의 자유’를 외쳤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으로 자유가 억압당한 시절에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부 이익 단체들이 보인 정치적 행동과 언론 재벌이 부르짖은 언론의 자유 역시 재산권에 대한 권리 주장과 탈세 조사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 모두 ‘자유’를 위해 정치적으로 떨치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자유가 억압당하던 시절에는 모두 침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 그들이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의 재산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해서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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