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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상벽 지음 / 명경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진행자인 이상벽씨에 대한 이미지는 항상 상큼하고, 센스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가 진행했었던, 'TV는 사랑을 싣고'나, 지금도 진행중인 '아침마당'에서 그의 매끄러운 진행은 많은 시청자들을 부담없이 방송에 빠지게 했다. 이 책은 방에서 책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초판 인쇄일이 96년이니, 아마 집안 식구들 중 누군가에게 한번 스쳐갔을 법하다. 어쨌거나 책 서두부터 말미까지 지루함 없이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방송인 이상벽'을 넘어, '인간 이상벽'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들을 담담하게 그려놓았다. 독서 중 새삼 느낀 점은, 진행자 이상벽씨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방송을 하면서 부딪치는 여러 애로사항에 대해서, 그 당시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이상벽씨의 마냥 부드러운 이미지는, 책을 보면서 조금씩 깨져갔다. 에세이는 이런 맛에 읽는 것이다. 독자만의 저자에 대한 교감이랄까, 독서를 통해 평소 저자에 대해 궁금했었던 것을 풀게 되는 좋은 계기다. 방송인이란 무엇일까? 한 번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뭐 다양한 의미가 있을거다. 역할이 다르고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을 좋아하는 사람이 방송인이다.'라고 이 책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간과 시청률이라는 촌각을 다투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도 이 일에 대해서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즘 아무리 금전 만능주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보람과 긍지를 가져다주고,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금전의 효용은 적성보다 떨어지리라 생각한다. 방송을 통해서, 여러 가지 희노애락의 에피소드가 펼쳐졌지만 이것들은 각종 소스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방송에 대한 열정이다. 방송인으로서 오랜 기간 진행자를 담당하면서, 그가 시청자들에게 남긴 것은 단순히 편안함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푸근한 웃음에는 50대 기성세대의 삶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투석되어 있는 것 같다.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지 않는가.
96년에 첫 에세이를 내었으니, 아마 10년만인 3년 뒤에는 또 다른 삶의 경험들을 책으로 펴낼지도 모르겠다.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서울 하늘 어느 아래서 소주를 곁들이며 뽕짝 가락을 두드리고 있을 이상벽씨의 인간적인 모습을 상상해보며 글을 마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