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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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뮈소의 소설들을 접하게 된 것이 아마 작년 이맘 때였을 것이다. <구해줘>부터 시작해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까지. 몽상적인 판타지 느낌으로 가득 찬 그의 소설들은 한 번 손에 쥐면 다시 놓아버리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 있었다. 지난 겨울, 또 다른 그의 새 작품이 나왔다. 붉은 계열의 표지들과는 사뭇 다른 진녹색의 바탕에 세상의 근심을 다 안은 듯한 한 여자의 모습 뒤로 저울에 매달려 서로에 기대고 있는 두 남자가 보인다. 그리고 책을 뒤집어 뒤 표지의 간략한 줄거리를 읽는다면... 이 소설의 80%정도는 이미 파악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겠다.

 

 판타지같은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작가. 기욤 뮈소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무언가 많이 심심한 기분도 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라던가, 그의 대표작인 <구해줘>에 비하면 스토리의 반전도 부족하고, 등장인물의 임팩트는 지나치게 과한 느낌이 든다. 기욤 뮈소-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살짝 가져본다.

 

 서로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하는 가브리엘과 마르탱. 진한 사랑으로 가득 찬 그 둘 사이에는 지금까지의 기욤 뮈소의 이야기에 늘 있어왔던 것처럼 장애물이 존재한다. 마르탱과 아키몰드. 경찰과 유명한 도둑의 관계로 그들은 쫓고 쫓기는 관계에 놓여있다. 그리고, 소설 중반부 쯤에 아키몰드와 가브리엘의 숨겨진 관계가 밝혀지고 소위 말하는 삼각관계에 세 사람은 놓이게 된다.

 

 지금껏 느껴왔던 기욤뮈소의 소설이 가진 공통점 중의 하나이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 사랑은 절대적인 힘을 가졌다. 어떤 방해꾼이 있든, 어떤 장애물이 있든,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며 사람의 삶과 죽음마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당신 없는 나는?>의 경우, 절대적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마르탱과 가브리엘의 운명적 만남이 너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단 한 번의 키스로 목숨까지 내버릴 만큼의 사랑에 빠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판타지성 소설을 판타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걸로 좋다. 하지만 기욤뮈소 소설의 매력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야릇하게 뒤섞어 놓은 그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더 현실성 있는 판타지를 나는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뒤죽박죽 제시된 시공은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그 것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시공 전환으로 약간의 거부감마저 느낀 것은 나 뿐이었을까.

 

 기욤뮈소라는 이름과 판타지스런 마지막 탑승대기구역 장면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그런 판타지 소설 한 편이라고 생각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작가의 이름에 거는 기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던 소설이었다. 진부한 러브스토리보다는 마지막 탑승대기구역 장면같은 그만의 독창적인 판타지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보며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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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훔치다 - 우리시대 프로메테우스 18인의 행복한 책 이야기
반칠환 지음, 홍승진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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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이런 말을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책, 세상을 훔치다>. 책이 인생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열 여덟 명이 말한다. 장영희, 고도원, 김창완, 이어령, 한비야 등...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당당한 인생 앞에 '역시...', '과연...'이라는 감탄이 나올 것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인생을 만든 원동력 중의 하나가 '책'이라는 사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괜스레 동질감마저 생기게 된다.

 

 책을 읽는 데 있어 나는 굉장히 흐름을 타는 편이다. 하루에도 두 세 권의 책을  금방 읽어치울 때가 있는가 하면, 일주일 내내 한 권의 책을 다 읽지 못해 끙끙거리기도 한다. 읽기를 시작한 책은 많은데, 어느 하나 이렇다할 진전이 보이지 않는 요즘. 읽던 책을 다 접어두고 과감히 책벌레들의 이야기를 엿보기로 했다.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책은 첫 장부터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든다.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라고 말하며 책이 가득 쌓여있는 서재의 그림이 나를 미소짓게 하나 싶더니, '바위도 독서를 한다'는 타이틀의 책머리를 통해 나를 겁주기도 한다. 광대한 독서로 세계를 여행한다는 장영희 교수, 책에서 길어 올린 행복을 배달하는 아침편지의 고도원 이사장, 나긋한 말투로 책을 벗삼아 세상을 노래한다는 가수 김창완, 세계를 아우르는 한국의 대표 지성인 이어령,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책읽을 시간이 없을 듯 하지만 자타공인 책벌레인 한비야, 수많은 일본 소설을 번역하는 원동력이 책이라는 번역가 김난주씨 등 내로라는 지성인들이 자신의 삶과 책을 굵은 줄로 연결시킨다.

 

 단지 책을 늘 붙잡고 산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그들은 책과 연결된 삶의 이정표를 따라가고 있었다. 배우 유인촌의 강렬한 눈빛에는 <돈키호테>의 자신감이 묻어나고, 한비야의 유년에는 <톰 소여의 모험>이 있었다고 한다.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꼽는다면?'이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신있게 책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했다. 그 책이 어떤 책이든지 그들의 삶을 닦아준 책이 있다는 것에서 나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작가, 시인, 번역가 등 책과 관련된 직업은 물론이고 사진가, 가수, 영화감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뿜고 있었다. 각각 다른, '책'을 제외한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이다. 하지만, 치열하게 바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에서 드러나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면, 바쁜 삶을 살되 여유로움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좁게 상황을 판단하여 조급한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많은 지식과 넓은 시각을 가진 그들이기에 더할 나위없이 바쁜 삶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잃어버린 독서의 흐름을 되찾고자 읽게 된 책이라고 하기에 이 책은 굉장히 많은 것을 안겨주고 있다. 소위 말하는 성공을 이룬 그들의 삶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이끄는 존재가,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책 한 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다짐해 본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스스럼없이 답할 수 있는 내가 되겠노라고... 그것 만으로도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더욱 많이 훔치는 행복한 도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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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 소설가 백영옥의 유행산책 talk, style, love
백영옥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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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에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지... 마볼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를 한 장 한 장 읽고 뒷 페이지를 마주한 나의 머리 속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그녀의 고정 멘트가 동동 떠다닌다. 대놓고 처음부터 조금 삐딱선을 타자면,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쓴 글이라기에는 문장이 조금 매끄럽지 않아보인다. 특정 어구를 반복해서 쓰는 그녀의 문체는 괜한 까탈스러움과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의 느낌은 그랬다. 눈에 보이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지식을 술술 늘어놓은 내용이라 그런 것일까. 그녀의 개성이 너무 통통 튀어서 그런 것일까.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도도한 친구를 앞에 둔 느낌이다.

 

 어쨌든 내용 상으로 본다면 참 만족스럽다. 상큼한 자몽주스같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잘 정립되어 있는 것도 좋았고, 출판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그녀의 굵은 잔뼈들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도 좋았다. 역시 사람이 글을 잘 쓰려면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하는구나- 하고 책을 읽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 소설의 붐에 대한 생각이나 도서의 이벤트에 대한 비판 등은 정말이지 날카로운 칼로 상한 부위를 휙휙 잘라내 버리는 통쾌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인생이 나는 마음에 든다. 내가 할 수 없는 도전들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녀의 개성이 조금 더 담백한 문장으로 표현된 글이 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섯 개의 별을 꽉 채우지 않은 이유는 아직 그녀의 글이 가진 잠재성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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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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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글이 좋다. 어떤 주제의 글이든지 그녀의 이름이 박혀있는 글을 읽을 때면, 10년째 덮고 있는 이불의 보드라운 편안함이 느껴진다. 또 다른 그녀의 신작이 등장한 작년 12월. 아까움에 선뜻 읽지 못했던 설렘으로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에서야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달콤한 나의 도시> 등에서 보여졌던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표지였다. 섬뜩한 빨간색의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소녀의 하체가 건조하게 놓여있다. 어떤 것도 유추할 수 없었다. '유지는 뭐랄까, 눈동자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누구에게나 골고루 무심했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인생을 유지는 아예 몰랐다. 알 필요가 없게 태어났다.' 라는 표지의 짧은 글로 빨간 구두의 주인공은 '무심한 유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족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묶어내기에 그들은 너무 억센 인생을 가졌다. 만인의 고민이 될 만한 경제적인 고민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풍족함을 얻은 대신 그들은 그만한 가치를 소실한 상태였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놓여있는 거미줄처럼 엉켜있어야 할 관계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아빠 김상호, 타인의 시선으로는 꽤 평범하고 예쁜 새 엄마 진옥영, 김상호의 전처의 딸인 김은성, 그리고 은성의 동생인 의대생 혜성, 옥영의 딸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지. 그들은 각자가 한 가정을 이루는 기둥이다. 하지만 다섯 개의 기둥은 맞지 않는다. 무언가 각자 놓여진 위치에서 힘없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을 뿐. 유지라는 기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면서 그들 다섯이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던 지붕은 무너져 버린다. 유지의 실종에 그들 개인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첫째는 유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서 (그들이 말하는 가족도 타인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비밀을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막장 일일 연속극의 소재가 될 만한 위태로운 가족관계. 그들은 각각의 개인일 뿐, 가족이라는 이름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서로에 대한 형식적인 관심은 더욱 가족이라는 이름을 얇은 껍데기로 만들 뿐이었다. 어쩌면 유지의 실종은 그런 그들의 삶에 필연적인 결과였던 건지도 모른다. 에필로그에서야 겨우 보여지는 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그들의 모습도 뭔가 부족해보였다. 그들은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이게 가족이구나.'하는 같은 피의 끈적임을 이제서야 겨우 조금 맛 본 것일 뿐이다. '나의 인물들이, 마지막 문장 너머의 그곳에서도 그들의 생을 충실히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라던 작가의 메시지처럼, 그들은 아직도 분주하게 지붕을 다시 짜고 있다. 많이 망가져버렸고, 어쩌면 견고한 재생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가족이라는 껍데기에 조금씩 속살을 붙여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글에 나는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속살은 견고한가를 확인한다. 이런 형식적인 확인은 어쩌면 김상호 일가의 형식적임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웃을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그들과 다른, 가장 큰 가족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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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라이프 -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Life 라이프 1
이이지마 나미 지음, 오오에 히로유키 사진 / 시드페이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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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LIFE라는 제목과 부제에 언급된 '카모메 식당'이라는 듣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느낌을 품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카모메 식당'이며, 또 다른 영화 '심야 식당'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음식을 통한 사람사는 이야기는 보여주는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바로 우리 집 식탁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할까. 음식에 얽힌 사람이야기를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조금 달리, LIFE에서는 음식이 주인공이었다. 물론, 음식감독인 이이지마 나미의 각 음식에 어울리는 상황 설명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카레라이스와 카르마'라는 신작 에세이를 비롯해 이토이 시게사토, 다니카와 슌타로, 시게마츠 기요시의 잔잔한 이야기를 통해 음식에 얽힌 세상 사는 이야기도 충분히 보여지고 있었다.

 

 책의 디자인은 한없이 깔끔하다. 일본 음식처럼 담백한 느낌이다. '정갈하다'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릴만한 책이 어디있을까. 바탕체로 다소곳하게 쓰인 본문에 수록된 에세이, 요리에 대한 상황 설명과 조리법에 쓰인 설명마저도, 요즘 여러 출판물에 많이 사용되는 개성적인 폰트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폰트를 사용하면서, 음식이 그만큼 기본이자 일상의 필수임을 드러내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별함을 되도록 배제하여 일상을 부각시킨 것 같다. 언제나 마주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음식들을 통해 더욱 일상의 따스함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에 제시된 음식 하나 하나를 다루는 이이지마 나미의 정성은 결코 일상적이거나 가볍지 않다. 재료를 써는 방법이나 소시지나 야채를 볶는 방법 등 생략해도 무관할 법한 아주 작은 내용마저도 놓치지 않고 정성스럽게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설명에서도 존댓말을 쓰면서 음식을 만드는 재료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식 자체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요리의 아주 작은 과정까지도 사진과 세세한 설명을 붙이면서 책의 내용을 바로 행동에 옮길 독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은 정성스러운 책이 되었다.

 

 이 책이 더욱 따스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정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 주어진 모든 요리는 1인분이 아니다. 아빠가 만드는 나폴리탄은 아들과 함께 먹기 위한 2인분, 막 함께살기 시작한 연인이 맞이하는 2인분의 토스트, 아이들을 칭찬해주기 위해 정성스럽게 엄마가 준비하는 4인분의 가라아게, 가족의 기쁜 일을 축하하기 위한 8인분의 치라시즈시, 혼자 자취하는 여학생이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만드는 오므라이스도 2인분이다. 이렇게 이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단 한 사람을 위한 요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음식이라도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서 함께할 때 더욱 그 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LIFE를 다 훑어보기가 무섭게 공복감이 밀려왔다. 담백한 일본 음식의 풍미가 입 안으로 밀려 들어온 듯,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된다. 많은 사람이 따스함을 느끼며 흐뭇하게 보았을 '카모메 식당'이나 '심야 식당'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바로 만나게 되는 우리 집 부엌이, 때로는 제대로 된 조리기구조차 갖추지 못한 친구의 자취방이 바로 '카모메 식당'이 된다.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식당 주인이 아니어도, 영화 속 음식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낸 이이지마 나미가 아니어도 된다. 정통 일본 음식을 맛보지 못한 엄마도 괜찮고, 음식 솜씨가 서툰 여동생도, 라면만이 주특기인 친구도, 먹기만 좋아하는 나도 괜찮다. 한 달에 한 번 부엌을 드나들까말까 하시는 아빠도 괜찮다. 모두를 위해 만든다는 마음을 가장 좋은 재료로, 함께 먹으면서 샘솟는 웃음을 최고의 조미료로 하여 함께하는 음식이라면, 그것으로 최고의 식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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