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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라이프 -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ㅣ Life 라이프 1
이이지마 나미 지음, 오오에 히로유키 사진 / 시드페이퍼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LIFE라는 제목과 부제에 언급된 '카모메 식당'이라는 듣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느낌을 품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카모메 식당'이며, 또 다른 영화 '심야 식당'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음식을 통한 사람사는 이야기는 보여주는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바로 우리 집 식탁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할까. 음식에 얽힌 사람이야기를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조금 달리, LIFE에서는 음식이 주인공이었다. 물론, 음식감독인 이이지마 나미의 각 음식에 어울리는 상황 설명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카레라이스와 카르마'라는 신작 에세이를 비롯해 이토이 시게사토, 다니카와 슌타로, 시게마츠 기요시의 잔잔한 이야기를 통해 음식에 얽힌 세상 사는 이야기도 충분히 보여지고 있었다.
책의 디자인은 한없이 깔끔하다. 일본 음식처럼 담백한 느낌이다. '정갈하다'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릴만한 책이 어디있을까. 바탕체로 다소곳하게 쓰인 본문에 수록된 에세이, 요리에 대한 상황 설명과 조리법에 쓰인 설명마저도, 요즘 여러 출판물에 많이 사용되는 개성적인 폰트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폰트를 사용하면서, 음식이 그만큼 기본이자 일상의 필수임을 드러내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별함을 되도록 배제하여 일상을 부각시킨 것 같다. 언제나 마주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음식들을 통해 더욱 일상의 따스함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에 제시된 음식 하나 하나를 다루는 이이지마 나미의 정성은 결코 일상적이거나 가볍지 않다. 재료를 써는 방법이나 소시지나 야채를 볶는 방법 등 생략해도 무관할 법한 아주 작은 내용마저도 놓치지 않고 정성스럽게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설명에서도 존댓말을 쓰면서 음식을 만드는 재료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식 자체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요리의 아주 작은 과정까지도 사진과 세세한 설명을 붙이면서 책의 내용을 바로 행동에 옮길 독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은 정성스러운 책이 되었다.
이 책이 더욱 따스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정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 주어진 모든 요리는 1인분이 아니다. 아빠가 만드는 나폴리탄은 아들과 함께 먹기 위한 2인분, 막 함께살기 시작한 연인이 맞이하는 2인분의 토스트, 아이들을 칭찬해주기 위해 정성스럽게 엄마가 준비하는 4인분의 가라아게, 가족의 기쁜 일을 축하하기 위한 8인분의 치라시즈시, 혼자 자취하는 여학생이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만드는 오므라이스도 2인분이다. 이렇게 이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단 한 사람을 위한 요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음식이라도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서 함께할 때 더욱 그 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LIFE를 다 훑어보기가 무섭게 공복감이 밀려왔다. 담백한 일본 음식의 풍미가 입 안으로 밀려 들어온 듯,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된다. 많은 사람이 따스함을 느끼며 흐뭇하게 보았을 '카모메 식당'이나 '심야 식당'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바로 만나게 되는 우리 집 부엌이, 때로는 제대로 된 조리기구조차 갖추지 못한 친구의 자취방이 바로 '카모메 식당'이 된다.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식당 주인이 아니어도, 영화 속 음식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낸 이이지마 나미가 아니어도 된다. 정통 일본 음식을 맛보지 못한 엄마도 괜찮고, 음식 솜씨가 서툰 여동생도, 라면만이 주특기인 친구도, 먹기만 좋아하는 나도 괜찮다. 한 달에 한 번 부엌을 드나들까말까 하시는 아빠도 괜찮다. 모두를 위해 만든다는 마음을 가장 좋은 재료로, 함께 먹으면서 샘솟는 웃음을 최고의 조미료로 하여 함께하는 음식이라면, 그것으로 최고의 식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