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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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글이 좋다. 어떤 주제의 글이든지 그녀의 이름이 박혀있는 글을 읽을 때면, 10년째 덮고 있는 이불의 보드라운 편안함이 느껴진다. 또 다른 그녀의 신작이 등장한 작년 12월. 아까움에 선뜻 읽지 못했던 설렘으로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에서야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달콤한 나의 도시> 등에서 보여졌던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표지였다. 섬뜩한 빨간색의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소녀의 하체가 건조하게 놓여있다. 어떤 것도 유추할 수 없었다. '유지는 뭐랄까, 눈동자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누구에게나 골고루 무심했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인생을 유지는 아예 몰랐다. 알 필요가 없게 태어났다.' 라는 표지의 짧은 글로 빨간 구두의 주인공은 '무심한 유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족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묶어내기에 그들은 너무 억센 인생을 가졌다. 만인의 고민이 될 만한 경제적인 고민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풍족함을 얻은 대신 그들은 그만한 가치를 소실한 상태였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놓여있는 거미줄처럼 엉켜있어야 할 관계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아빠 김상호, 타인의 시선으로는 꽤 평범하고 예쁜 새 엄마 진옥영, 김상호의 전처의 딸인 김은성, 그리고 은성의 동생인 의대생 혜성, 옥영의 딸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지. 그들은 각자가 한 가정을 이루는 기둥이다. 하지만 다섯 개의 기둥은 맞지 않는다. 무언가 각자 놓여진 위치에서 힘없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을 뿐. 유지라는 기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면서 그들 다섯이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던 지붕은 무너져 버린다. 유지의 실종에 그들 개인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첫째는 유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서 (그들이 말하는 가족도 타인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비밀을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막장 일일 연속극의 소재가 될 만한 위태로운 가족관계. 그들은 각각의 개인일 뿐, 가족이라는 이름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서로에 대한 형식적인 관심은 더욱 가족이라는 이름을 얇은 껍데기로 만들 뿐이었다. 어쩌면 유지의 실종은 그런 그들의 삶에 필연적인 결과였던 건지도 모른다. 에필로그에서야 겨우 보여지는 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그들의 모습도 뭔가 부족해보였다. 그들은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이게 가족이구나.'하는 같은 피의 끈적임을 이제서야 겨우 조금 맛 본 것일 뿐이다. '나의 인물들이, 마지막 문장 너머의 그곳에서도 그들의 생을 충실히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라던 작가의 메시지처럼, 그들은 아직도 분주하게 지붕을 다시 짜고 있다. 많이 망가져버렸고, 어쩌면 견고한 재생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가족이라는 껍데기에 조금씩 속살을 붙여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글에 나는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속살은 견고한가를 확인한다. 이런 형식적인 확인은 어쩌면 김상호 일가의 형식적임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웃을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그들과 다른, 가장 큰 가족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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