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이 영화의 내용 자체를 압도하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니, 화면을 채우는 세련된 색채와 빛, 명암의 대조를 통한 과도한 이미지의 표출이나 유연한 카메라워크와 편집 기술, 컴퓨터 그래픽의 적절한 활용을 토대로 한 스타일리시한 영상 표현은 이제 영화의 히트를 위한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몇몇 철학적 사유들을 혼합하고 연출자의 취향이라는 소스를 가미하여 탄생시킨 ‘키치적’ 이념이나 ‘주의’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그것이 깊거나 혹은 얕거나 간에) 영화의 레벨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기승전결에 충실한 고전적인 스토리텔링보다는 관객들의 한껏 높아진 시각 체험 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감각적인 영상과 속도감 있는 진행이 더욱 중요한 흥행 요소가 된 것이다.

 Quality Check

 Picture ★★★★  Sound ★★★★

Title Spec

 감독

 제임스 맥티그

 출연

 휴고 위빙, 나탈리 포트만, 존 허트

 등급

 15세 이용가

 러닝 타임

 133분

 출시사

 워너

 비디오 포맷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 2.35:1

 오디오 타입

 돌비 디지털 5.1, 2.0

 언어

 영어, 태국어

 자막

 한국어, 영어, 중국어, 태국어 외

 지역 코드

 3번

촬영 기법의 혁신을 이룬 <매트릭스> 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매트릭스> 시리즈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아온 신인 감독 제임스 맥티그의 데뷔작 <브이 포 벤데타> 역시 감각적인 영상과 수려한 액션 신, 개성 강한 캐릭터, 독창적인 스토리 전개 등으로 골수 팬 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앨런 무어와 데이빗 로이드 원작의 1981년작 그래픽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은 그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Sci-Fi/판타지 또는 액션 스릴러물을 표방하며 영화 보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의 측면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스토리는 빈약하고 작위적이거나 뻔한 설정들이 종종 등장하며 게다가 자유와 혁명, 복수, 내면의 공포 등에 대한 그럴 듯하게 포장된 도덕적, 철학적 훈계들이 난무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한 레퍼런스로 사용되는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인용구나 블레이크의 시구들 또한 전형적인 클리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커다란 매력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주요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인상적인 영상 편집, 그리고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의 액션 신들(두 자루의 단검으로 펼쳐 보이는 살상 장면, 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클라이맥스의 국회의사당 폭파 장면 등)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각본 및 제작을 맡은 워쇼스키 형제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3차 대전 이후의 근미래,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독특한 판타지의 세계에서 시종일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브이(V)’라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존의 히어로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인물이다. 1605년에 있었던 영국 ‘화약 음모 사건’의 장본인, 국회의사당 건물을 폭파하려다 실패하고 사형을 당한 가이 포크스라는 실존 인물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주인공 브이. 그는 가이 포크스의 얼굴 모양을 한 마스크를 쓴 채 권력의 희생양이라는 아픈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새롭게 태어난 자신을 가면 아래에 감출 수밖에 없는 한 인간으로서, 체제 전복을 위한 정의의 사도로서, 그리고 과격 테러리스트로서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에서 활약을 한다.

브이를 연기한 휴고 위빙은 맨 얼굴을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으며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브이의 의지와 내면의 고통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표출해냈다. 더불어 브이의 마음을 빼앗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 이비를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의 놀라울 정도의 열연은 이 작품의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여러 부분들에서 MTV 스타일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영화가 지니는 강점 중 하나다. 감독은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을 듯한 주인공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한 채 현재 그가 꿈꾸는 이상과 감정을 무표정한 가면을 통해, 그리고 현란하고 화려한 액션을 통해 드러낸다. 어두운 장면들을 유독 많이 등장시키며 누아르 풍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도 캐릭터와 연관된 스타일의 강조로 볼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정체성이나 내면의 슬픔은 이비와 형사 핀치를 통해 더욱 명확해지는 듯하다.

DVD는 영화의 최대 강점인 강렬한 이미지들을 적절하게 표현해준다. 2.35:1의 애너모픽 와이드 화면은 뛰어난 트랜스퍼를 자랑한다. 영화 자체가 어두운 장면을 많이 담고 있는 탓에 암부 표현력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어두운 부분에서의 선명도나 해상도, 전반적인 색감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칼날 같은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의 고해상도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분위기나 내러티브 전개에 따른 최적의 표현력을 전해주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검푸른 색채와 이비를 상징하는 붉은 색채, 그리고 폭파 장면을 포함한 여러 액션 신들에서 볼 수 있는 뭉개지지 않는 날카로운 윤곽과 탁월한 색감, 강렬한 명암 등은 레퍼런스급에 가깝다.

돌비 디지털 5.1 서라운드를 지원하는 음질 역시 액션 영화로서의 매력을 제대로 전해준다. 브이의 연기력은 상당 부분 휴고 위빙의 목소리 연기에 의존되어 있는 탓에 그의 감정이 잘 담겨진 대사 톤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다행히 등장인물들의 명확한 대사의 울림이나 여러 효과음들, 폭파 신에서의 육중한 저음 등은 제대로 배치되어 영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2디스크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이 DVD에는 여러 부가영상들이 담겨 있다. 사실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띄는데, 가장 아쉬운 점은 감독인 제임스 맥티그나 워쇼스키 형제의 코멘터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들의 러닝타임 자체가 20분 안쪽의 짧은 영상들로 이루어져 있어 제작 및 관련 사실들에 대한 보다 깊이 있고 다양한 내용의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 부가영상들이 단순히 양 채우기에 그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밀도 있는 구성과 인터뷰를 통해 제작 뒷이야기나 가이 포크스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그리고 영화의 원작이 되는 그래픽 소설, 만화 등에 관한 설명이 차분하게 펼쳐진다.

부가영상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의 세트(영국이 아닌 독일에서 촬영된) 및 의사당 건물 등의 미니어처 제작 등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제작과정 ‘Designing The Near Future’로 시작된다. ‘Remember Remember: Guy Fawkes And The Gunpowder Plot’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가이 포크스 사건’에 관한 흥미 있는 다큐멘터리다. 국회의사당 폭파를 시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구교도 가이 포크스가 ‘화약 음모 사건’을 일으키기까지의 과정 및 역사적, 사회적인 배경을 상세하게 풀어나간다.

‘England Prevails: V For Vendetta And The New Wave In Comics’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이 되는 그래픽 소설이 출간되기 이전까지 만화계의 기본적인 트렌드를 이루었던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 만화의 사회적인 위상과 일반인들이 가지던 편견,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형식 및 내용의 변화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료 화면과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펼쳐진다. 영화의 메이킹 필름 ‘Freedom! Forever! Making V For Vendetta’에서는 감독 및 주요 스태프, 배우들이 등장해 영화와 그 배경이 되는 시대, 정치적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 / 김경진(DVD 칼럼니스트) 

출처 : 케이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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