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질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눈에 띄게 달라진 점 하나를 먼저 짚어보자. 타이틀에 따라 디자인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변화된 부분이 바로 메뉴의 스타일이다. 기존 DVD와 달리 초기 메뉴 화면을 거치지 않고 본편으로 바로 넘어간다. 본편이 진행되는 중간에 메뉴 버튼을 눌러도 영상은 바뀌거나 정지되지 않으며 하단이나 좌측 부분을 통해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메뉴 화면이 등장한다. 메뉴 선택과 영화 시청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메뉴의 등장과 사라짐이 역동적으로 연출되는 것은 물론, 썸네일을 통해 장면 선택이나 스페셜 피처 메뉴에서 스크린 샷을 미리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본편 영상에 대한 재생과 일시정지, 빨리 돌리기 등의 독립적 조정은 가능하다. 출시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보된 인터페이스인 만큼 차세대 포맷의 전형적인 메뉴 형태로 자리잡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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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감상 도중 메뉴 화면을 바로 띄울 수 있다는 것이 차세대 DVD의 특징. |
테스트에 사용된 것은 <라스트 사무라이>와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세레니티>. 앞서의 두 개는 이 분야에서 비교적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워너의 출시작으로 초기 제품으로서는 비교적 높은 완성도의 화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타이틀이다. 참고로 XA1은 하위 호환성이 있어 일반 DVD의 재생도 가능하다. 아직은 코드프리가 불가능해 다양한 타이틀을 테스트해 볼 수는 없었지만(HD-DVD의 경우 아직까지는 지역코드의 제한 없이 출시되고 있는 상태), 전반적인 화질은 특별히 빼어나거나 빠지지 않는 중급기의 수준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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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사무라이> |
업스케일링이 가능하지만 컴포넌트 연결 시에는 복제 방지용 락이 걸려 있는 타이틀은 480p로만 재생된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와 돌비 트루HD, DTS-HD 등 새로운 사운드 포맷의 테스트 역시 현재로서는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용 리시버의 출시 이전인 데다 아날로그 다이렉트 연결을 통해 플레이어의 내장 디코더를 이용할 경우에도 광/동축을 통해 다운 믹싱된 음질과의 두드러진 차이를 느끼기가 힘들다. 따라서 본격적인 HDMI 규격의 버전업 적용과 차세대 오디오 포맷에 걸맞는 전용 리시버의 출현 이전까지 무손실 음원의 진수를 만끽하는 것은 미뤄질 수밖에 없겠다. 여기에 차세대 포맷의 화두가 현재로서는 화질에 있는 만큼 출시사나 제조사 모두 아직은 사운드 쪽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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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유령> |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HD-DVD의 화질에 대해 얘기해 보자.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해상도의 향상으로 인한 세부 묘사의 극명함이다. <라스트 사무라이>와 <오페라의 유령>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채로운 의상과 소품이 등장한다는 것. 이 경우 디테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의 타이틀을 통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자잘한 문양들의 굴곡과 음영을 발견해내며 색다른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이어폰으로는 불가능했던 미세한 소리들을 헤드폰을 통해 듣게되었을 때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소재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의 특성을 보다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것 또한 해상도 향상의 빼놓을 수 없는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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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사무라이> |
선예도와 윤곽선의 변화 또한 쉽게 감지된다. 특히 텍스트나 타이틀 로고에서는 그 차이를 절감할 수 있다. 선예도와 양립하기 힘들었던 소프트함이 확보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칼처럼 정세한 영상도 가능해졌다. 스케일링 변환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전반적인 아티팩트 역시 눈에 띄게 감소해 매우 말끔한 영상을 보여준다. 해상도의 증가 효과를 구사하기 위해 샤프니스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져 선명한 윤곽선에도 불구, 링잉 현상도 크게 감소했다. 색감의 깊이와 충실도가 더욱 높아져 전체적으로 꽉 들어찬 느낌이다. 업체 측에 의하면 이는 단순히 해상도의 증가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블랙을 비롯한 색상 구현 체계가 기존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낙 미세한 부분이지만 디스플레이 장비의 성능과는 별개로 블랙에 대한 자체 표현력 또한 향상된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새츄레이션이 높게 설정돼있는 데다 농담의 차이가 커지면서 콘트라스트가 보다 강조된 느낌으로, 영상의 임팩트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소스에 따라 암부의 계조가 묻히는 현상도 볼 수 있는데, 물론 이것은 디스플레이 장비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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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유령> |
참고로 매칭기는 소니의 VPL-VW100(이하 VW100)으로 여기엔 기존의 투과형 LCD를 반사형으로 개선한 SXRD 패널이 사용되었다. 최신의 DLP에 필적할 만큼 높은 콘트라스트와 1,080p까지 지원되는 고화질이 돋보이는 제품. 영사기를 비롯, 대형 투사 장비에도 두루 쓰이는 제논 램프를 장착한 탓에 영상의 색조가 극장의 그것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이밖에 XA1과 VW100의 조합이 필름라이크한 화질에 좀 더 가까울 수 있는 것은 이른바 풀 HD 라고 하는 1,920×1,080의 해상도가 대개의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35mm 필름의 환산치(고해상도의 원본이 아닌 극장용 프린트 기준)와 유사하다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원천이 되는 필름의 규격 또한 더욱 발전해 가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필름 소스에 준하는 느낌과 해상도 그대로를 HD-DVD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도의 디지털라이즈 시스템 속에서 오히려 아날로그적 영상의 감흥이 짙게 풍겨오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각각을 따로 시청한다면 효과가 덜하겠지만 DVD와 동시 비교가 가능하면 디테일과 색감이 향상된 HD-DVD를 통해 마치 희뿌연 장막이 한 꺼풀 벗겨진 듯한 느낌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차이의 크기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이미 완숙기에 오른 DVD와 걸음마를 시작한 새내기와의 화질 비교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준이라 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