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 속엔 향기가 없는 꽃이 피었다 아무도 꽃을 꺽지 않는 정원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괜찮았다 바라봐 줄 사람만 있다면 살아야 하는 것이 씨앗인 오늘 - "예컨대, 우리 사랑"에서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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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가 아닌 시집을 만나는 건 다른 일이다. 詩는 순간 스쳐가며 만나는 그 느낌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만하지만 시집은, 한 시인의 노력과 감성이 버무려진 종합 선물세트이므로 우리고 우려낸 그 핵심을 잘 건져낼 수 있어야 긴? 시간을 들여 읽는 보람 같은 게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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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소매의 끝엔 해변이 있어 / 서툰 세수와 훔친 눈물로 적셔 놓은 / 사탕이 녹을 때까지만 출렁이는 해변에서 나는 / 말라 가지 않는 헤엄을 배워 // 안간힘을 다해서 - "사탕과 해변의 맛"에서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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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에 실린 詩가 모두 마음에 들리는 당연히 없고 겨우 두어 편 입에 와 촥 감기는 작품을 만난다면 그것으로 행운이다. 그리고 언뜻 스쳐 지나가며 가슴을 때리는 구절들을 여럿 만나면 더욱 고마운 일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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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 이제 겨우 스물여섯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그래서 잘 읽히지도 않고 훅 들어오는 작품도 보이지 않아 읽어가며 조금 갑갑해졌다. 하지만 한번 든 시집은 끝까지 본다! 는 고집으로 계속 '동생'을 찾아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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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드려 있으나 잠이 비껴가고 슬픔으로 젖지 않는 주소로 나는 배달되었다. 나는 멸종 위기가 아니다. - "소년성(小年性)"에서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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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시편들의 제목을 보자. "시리얼 키드", "구체적 소년", "발육의 깊이", "해변으로 독립하다", "독거 청년", "90년대의 수지" 확연히 드러나는 느낌, 그렇다, 그는 아직 젊다, 20대를 건너가고 있는 젊은 시인인 거다. 말은 모호하고 불명확하지만 그건 詩의 특성이기도 하고 젊음의 속성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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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결론 내지 않고 조심조심 자신의 '소년성'을 드러내며 詩는 자라난다. 그러다가 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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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 |
| - "스무 살" (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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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은 끝났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도 이제 스무 살의 경계를 넘어 세상 속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는 책을 놓고 더욱 익어 돌아올 그를 기다릴 때다. 어떤 모습으로 잘 보이지 않던 '동생'의 손을 잡고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으로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안간힘을 다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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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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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그렇다면 공동체라는 글씨는 희미해질 것입니다. 모든 이름을 불러 줄 수 없습니다. 헷갈린 이름 우;에 반창고를 붙여 줍니다. 다정한 건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 친밀해졌다면 개인 체조를 해 봅니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부리나케 뛰어다니거나 팔을 접어 베개로 삼은 모양으로부터, 공동체는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듯 어지럽습니다. 하나가 되는 일이 가장 많이 갖는 일입니다. ( ~ 중략 ~ ) |
| 무단횡단을 해 봅시다. 사이렌이 울릴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마침내 사라집니다. 세계는 무너집니다. 블록들을 다시 하나씩 쌓아 봅니다. 선별된 입구들이 마침내 하나의 복도로 통합니다. 인사를 합시다. 처음 본 사람처럼. 공동체는 끝났습니다. 하나들의 집합이 됩시다. (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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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5. 6. "시는 뭔지 모르는 거예요." (이성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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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