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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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표지에 혹하여, 그래, 그림이라면 그냥 만나보기만 하여도 좋은 그런 대상이 아닌가, 하는 맘으로 선뜻 손에 든 책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책은 내가 기대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간간이 만나 오던 문인화신영복 선생님의 글과 그림을 생각하던 내게 루쉰의 작품들은 다가서기 힘든 무엇이었다.
 
 그 가장 큰 까닭은 그림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수묵화'는 1점뿐이고 '전각', '평면 디자인', '선묘', '책과 잡지 디자인'이 나머지 111편,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는 바가 거의 없어도 느낌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는 일반적인 그림/회화가 아니기에, 어떻게 읽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가 막막했다. 솔직히 지금도 그러하다.
 
 그 풍격은 여전히 수수하고 간략하면서도 눈에 확 띄는 <분류>의 디자인적 특성을 계승하고 있다.  ( '[맹아 월간 표지]해설'에서 ) (209)
 
 다만 '루쉰'이라는 작가이자 사상가에 대하여 조금은 아는 바가 있기에 거기서부터 썰!을 풀어 보련다. '사회비판적인' 작품들을 통하여 중국인들을 일깨우던 소설가, 사상가였던 루쉰을 거칠게나마 비유하자면 현재의 신영복 선생님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어떤 형태의 작품으로든 암울한 시대의 굴레를 뚫고, 깨우침을 건네주는 선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삶 자체가 만인의 모범이 되는 인물은 그리 흔치 않다. 게다가 마침 신영복 선생님께서도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고 계시니 말이다.
 
 루쉰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맞게 문예지와 여러 책의 표지까지, 편집 및 도안을 하였고 그 작품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물론 작품 그 자체로서는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이 '그림(표지 등)' - '루쉰 자술(自述)' - '관련 기록' - '해설'로 차근차근 잘 짜여 있어 사전지식이 없어도 개별 작품을 만나보고 이해할 수는 있다. 즐기고 좋아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고. ^^
 
 "이렇게 인쇄하여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지 않는 일반 대중들에게 공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225)
 
 대중적인 관점의 견지는 인민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것이지만 제대로 해내는 이는 드물다. 루쉰은 그런 면에서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밥벌이를 위하여 행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작품들 덕분에 당시 중국의 문화예술계는 더 많이 풍요로워졌으리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만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사람들을 일깨우는 작가들이 늘어나면 좋을텐데…. 
 
 책에 실린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느낌이나 평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다만, 독자로서 루쉰의 글을 그림과 함께 오랜만에 만나본 것은 적지 않은 기쁨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문인화처럼 글과 그림을 함께 아우르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시대의 변화인지, 관심의 축소 혹은 집중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작품을 글과 그림으로 함께 보여주는 제2의 루쉰, 신영복 선생님 같은 분들이 여럿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언젠가는 루쉰을 다시 한 번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책장을 덮는다.  
 
 혁명에는 피가 있고 더럽고 추잡한 행위들이 있지만, 어린 아기도 있다. 이 '궤멸(潰滅)'은 바로 신생 이전의 한 방울 피요, 실제 전투자가 현대인들에게 주는 커다란 교훈이다. …… 그렇기 때문에 신생의 영아가 있는 한 '궤멸'은 곧 '신생'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 [훼멸] 제 2부 제 1~3장 번역 후기'에서) (228)
 
 
2010. 4. 19. 늦은 밤, 50년 전 그날처럼, 거리에 서 있고픈….
 
 
들풀처럼
*2010-044-04-06
 
 

*책에서 옮겨 둡니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누군가 우연히 한가한 시간을 얻게 되어 우연히 외국 작품을 읽게 되었도, 우연히 기쁜 마음으로 이를 번역하여 한데 엮게 되었으며, 우연히 이 '잡지년(雜誌年)'에 뜨거운 열기를 더하게 되었고, 마침내 우연 중의 우연으로 동지 몇 명을 찾게 되었으며, 자신을 인정해주는 출판사를 만나게 된 것을, 그리하여 이 작은 [역문(譯文)]이 태어나게 된 것을 충분히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역문] 창간호 서문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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