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 생활 속 지리 여행
이경한 지음 / 푸른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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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표지 안쪽에 지은이의 사진이 웃고 있다. 두 눈이 거의 감긴 채 웃고 있는 모습이 편안하고 보기 좋다. 글이 그 글을 쓴사람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는데 이 글과 지은이의 푸근한 인상은 무척이나 어울린다. 같은 내용이라도 나긋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함께 걸으며 자상한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느낌이다. 자, 그럼 지은이를 따라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볼까나….
 
 '1장'에서 지은이는 '영화관/납골당/내비게이션/강의실 앉은 자리/약국'을 통하여 일상 속의 지리가 갖는 중요성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좋은 자리'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다. '2장'에서는 '담양의 메타세퀘이아/지리산 수달/황사/도시의 회랑/댐/새만금 간척지/습지/생태통로/하천의 보/모래사장'등을 통하여 '자연'과 우리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함을 역설한다.
 
 인과응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개체 수를 점점 줄여 가면서 인간에게 종의 다양성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있다. 그들은 점점 멸종 위기로 치닫고 있다. 우리가 붙여준 천연기념물이라는 아름답지만 슬픈 칭호를 그들은 버리고 싶어한다. ( "지리산 수달 훔쳐보기"에서 ) (36)
 
 '천연기념물'이라는 낱말 속에 지은이가 말하는 그런 뜻이 담겨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던 나는 '아름답지만 슬픈 칭호'라는 표현에서 무너진다. 얼마나 많이 없애버렸으면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를까?라는 생각, 알고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덕분에 또 배운다.
 
 그런데 이처럼 슬쩍 짚어주는 이야기들이 은근하게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이러하다. '일상'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지리'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발걸음, 차분하지만 놓치면 아쉬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욕심과 간섭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연은 자연 상태로 놓아두었을 때 가장 자연스럽고 그 자연스러움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63)인다는 것을…. 
 
 주변의 일상에서 시작된 지은이의 발길은 '3장' '장소 속의 의미 찾기'를 거치면서 공간적인 '지리'에서 '개념'적인 혹은 '시간'적인 '지리'로 확장되는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너무도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지은이의 마음이 진심 그대로 전해져오는 경우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좋고나쁨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올곧게 문맥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회계층의 양극화가 주택 계급의 양극화를, 그리고 주택 계급이 사회 계층의 양극화를 확대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계층의 양극화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관심이 복지 국가로 향하는 지름길이자 더불어 가는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다. (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에서 ) (83)
 
 '4장 지형 경관', '5장 기후와 식생'에서도 우리는 섬세한 지은이의 이야기를 통하여 '일상'속의 세세한 속살들을 만날 수 있다. '꽃샘추위를 봄샘추위라고도 부른다.' '꽃샘추위는 자연이 꽃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봄의 싱그러움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라고 주는 통과의례다.'(147) 마침 그 '꽃샘추위'가 가까이 다가오는 2월이다. 이번 봄에는 곁에서 넘쳐나는 이야기들의 속삭임을 나는 얼마나 느끼고 알아챌 수 있을지….
 
 드디어 지은이는 우리를 '경제활동'의 '6장'으로 데리고 가서 '돈벌이의 질서'에 관하여 들려준다. 모여있는 여관들을 통하여 '유유상종의 지혜'를,'정비소에 앉아 연계를 배우'고, '지리적 표시제'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제 3세계 노동자와 공존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은이의 말처럼 '세계 속의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작은 실천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세계가 보다 빨리 이룩되길' 나도 '기원한다.'(197)
 
 처음엔 그냥 "생활 속 지리 여행"이라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선 길이었지만 결국엔 우리네 삶의 모습들과 하나하나 이어져있음을 알게된 '일상 속 지리 여행'이었다. 쉽게 다가설 수 있으면서도 따듯하고 깊은 속내를 보여주는 글들이라 모처럼 흐뭇한 글읽기 였다. 낮은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 책, 고마웠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주관적 가치 체계를 가지고 사는 주체적 존재이자 실존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지각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즉 사회의 구성원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있다. ( "너와 내가 겉는 길은 같은 길, 다른 길?"에서 ) (89)
 
 
2009. 2. 1. 낮, 벌써 '꽃샘추위'를 기다리는 성마른 날들이다. 
 
들풀처럼
*2009-02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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