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4 - 무너진 왕실의 화려한 귀환 한국사傳 4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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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기순의 익숙한 역사도 아니고 특정인의 일생을 가르치는 교훈적인 전기도 아니면서 무슨 역사책이 이리도 재미나게 읽힌단 말인가? 당장 달려가서 나머지 네 권을 만나보리라 생각하게 만드는 책. 깔끔한 편집, 적절한 컬러 사진들, 그리고 맛깔나는 이야기투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데 없는 역사이야기라니…고맙다, 재미까지 더해져 더욱 고맙다.
 
 4권은 왕실과 관련한 사람들이 8명, 10개의 장으로 나뉘어 등장하는데 - '백제왕 창' 과 '혜경궁 홍씨'는 두 편씩 이야기가 전개된다 -, 이름은 자주 들어보았어도 그들의 삶과 역정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는 인물들이라 더 신선하고 놀랍게 다가온다. 모르는 사실(史實)을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늘어나는 기쁨이 이 책 속에는 있다.
 
 하여 이 책의 내용들을 뒤늦게 알게된 것만으로도 내겐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역사속의 진실이 이처럼 잘 정리되어 전해지는 것도 '다행이다'. TV시리즈로 방영되었음에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여 더욱 '다행이다'. 행여 이 책의 내용들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다면 책 읽는 맛은 줄었으리니….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안겨준 책이 된다. 그럼 그들의 이야기가 왜 나를, 우리를 놀라게 하는지 한 명씩 만나보자.
 
 맨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광해군'이다. 광해군에 대하여는 많이 안다고 생각하였는데 여기서는 강대국의 등살속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하여 실리를 챙기려던 개혁 군주의 모습을 만난다. 우리 근세사에 이런 군주가 있었다는 사실에 우선 놀라고 그 첫인물이 광해군이라는 점에 더욱 놀란다. 그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더라면 훗날 인조가 겪었던 치욕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버리고 역사는 승자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어 버린다. 하여 '승자의 역사가 남기지 않은 광해군에 관한 진실이 바로 우리가 읽어야 할 내용일 것이다.'(41) 아래는 그런 광해군의 외로움이 드러난 유배지에서의 시다.
 
 가고픈 마음에 봄 풀을 실컷 보았고
 나그네 꿈은 제주에서 자주 깨었네.
 서울의 친지는 생사 소식조차 끊어지고
 안개 낀 강 위의 외로운 배에 누웠네. 
 - 제주에서 쓴 광해군의 시  (41)
 
 2,3장은 '스님이 되려한 왕', '위덕명왕 창'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불국토를 세우려던 창왕이 남긴 백제시대의 찬란한 유물-사리함과 명문-은 1400년을 건너와 우리에게 그가 꿈꾸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비록 더 많은 유적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빛을 발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찬란했던 문화는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오사카의 '사천왕사 옆에 자리한 곤고구미(金剛組)는 당시 창왕이 파견한 백제 기술자의 후손이 운영하는 불교건축 전문기업이며 578년에 창업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85)라니. 어찌 놀라지 않으랴.
 
 게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법륭사의 각종 건출물뿐만 아니라 백제관음상!(88)까지 당시 창왕 시절에 제작된 유물이라니, 더하여 그 백제관음상의 사람의 모습을 한 얼굴이 위덕명왕 창의 아버지, 성왕의 모습이라니… 잃어버린 아버지, 이루지 못한 불국토의 꿈을 위하여 그는 그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질 유물들을 제작토록 하였으리라. '왕흥사 사리함에 담긴 백제 창왕의 눈물은 잃어버린 한반도의 고대사, 미완의 역사를 완성해나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99)이리라.
 
 4장의 '두번 고구려의 왕후가 된 우씨왕후의 이야기는 당시 풍습이던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 (118)를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무덤 1만 2000여기가 남아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고분군'(103)이 중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이야기이다. 우리 역사 속 옛나라들의 어마어마한 국력과 규모들을 이렇게라도 확인함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5장은 신라왕자로서 중국불교의 명산에서 최초의 등신불이 되어 '지장왕보살'이라고까지 추앙받는 김교각의 생애를, 6장은 춤을 사랑한 군주 효명세자이야기, 7장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보살의 자비로운 힘, 끝없는 고통에서 구하나니
 하해와 같은 그 공덕, 세세손손 빛나리로다 
 - 이태백의 시 중 (155)
 
 위 시는 이태백이 구화산에서 수행중이던 김교각을 만나보고 감탄하여 지은 시라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2009년 9월 9일에는 구화산(중국)에 99미터에 이르는 세계 최대 높이의 불상이 그를 기려 건립된다고 한다. "지옥이 비기까지 성불하지 않겠다"(159)는 그의 서원은 우리시대에도 아직 빛을 발하고 있다.
 
 한편 춤과 예(禮)로 새로운 정치세상을 열려하던 순조의 세자, 효명은 22살의 나이로 급서하여 개혁 조선의 불길이 꺼져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고려말 개혁군주이던 공민왕과 원나라 공주이던 노국공주의 '신화가 된 사랑'은 아직도 남아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고…. 
 
 그리고 8,9장은 조선시대 최대의 비극으로 일컫어지는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와 [한중록]에 얽힌 이야기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일개 아녀자, 왕비도 왕후도 세자빈도 아니게 되어버린 한 여자의 일생이 담담히, 그러나 철저히 기록된 [한중록]을 통하여 아들 정조와 손자 순조에게 전해진 암담한 가족사이자 왕조의 참화는 아들과 손자가 왕이 됨과 동시에 다시 피어나기도 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삶을 글로 남긴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한 시대의 기록물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아프지만 명징한 사례로 [한중록]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치달린다. 가장 최근의 인물인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이야기에서 나는 앞서 혜경궁 홍씨편에 등장한 '영조와 사도세자'와는 또다른 서글픈 부자 관계를 만난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못미더워하시더라도 사랑으로 가르쳐주셨더라면 어땠을까.-[한중록] (227) 라고 안타까워하던 혜경궁 홍씨의 마음처럼 흥선대권군과 고종이 합심하여 격동의 근세사를 헤쳐나갔더라면 우리네 역사는 크게 달라졌으리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더하는 이야기였다.
 
 짧게나마 요약해본 이야기들이라 읽으며 받아들였던 재미와 감동의 10분의 1이라도 제대로 전해지기는 어려우리라. 하지만 이런 책이, 이런 이야기들이 살아남아 우리곁에 이렇게 전해짐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묻혀있고 잊혀져버린 이야기들을 그 결을 살려가며 들려주고 보여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역사스페셜 1~7권], [HD역사스페셜 1~5권]을 잇는 [한국사傳 1~5권]에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 우리네 역사속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보시려면 다들 이리로 모이시라. 한,국,사,傳으로...
 
 
2009.1.21. 저녁, '진실의 실마리들'을 따라가는 즐거운 길 ~
 
들풀처럼
*2009-020-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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