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7
쉘 요한손 지음, 원성철 옮김 / 들녘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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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라면 남 못지 않게 잘하는 녀석이 있었더랜다. 이야기를 하다가 '꺼리'가 떨어지면 못난 가족사에 자신의 누추한 연애사까지 끌어오고 하다하다 안되면 벗들의 생활까지 빌려와 남하는 만큼은 이야기를 하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녀석이 있었더랜다.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때론 웃다가 때론 울다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녀석의 '구라'는 사람들을 들썩이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나 역시 그의 그런 말빨에 혹해 늘 함께 다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과 함께 가 본 그의 집은, 집구석은,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런 집이었더랜다. 과거가 궁금해지는 그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 증세로 술이 깨어 있을 때는 훌륭하고 좋은 아버지였다가 술만 들어가면 엄마를, 자식들을 때리고 윽박지르는, 우리가 자라며 늘 보아오던 바로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거기다 엄마는 열심히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발버둥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어대는, 그 시간동안만큼은 행복해지던 그런 엄마였다. 치매증세가 있던 외할아버지도 그나마 정정하신 외할머니도 계셨지만 동네에서는 달동네하고도 저 끝자락, 산 꼭대기, 하꼬방에 살고 있는 지지리도 가난한 집이었다. 참, 또 한 명 더 있네. 녀석이랑 함께 자라 결국에는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마는 녀석의 누이까지....
 
 도대체가 어느 곳 하나 맘붙일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도 녀석은 밝게 자란 아이처럼 보였다. 늘 우리들 앞에서 엄청난 이야기들을 해대며 녀석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그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한들 우리 삶의 피폐한 현실과 누추하고 초라한 지금의 모습은 다 감출 수 없는 것이기에 때론 우리는 그와 함께 이야기 속에서 웃고 울다가  막막한 어둠속 벌판에 내동댕이쳐진 아이처럼 해매던 날도 있었으리라.
 
 그래도 쏟아내는 이야기속에서 녀석도, 나도, 아니 우리 모두는 행복해했으리라, 그랬으리라. 그러나 그 시절 속을 통과하는 순간에는 지금 바라보며 느끼듯 아련하고 따뜻하고 그렇지만은 않았으리라. 녀석도 나도 혼자서 울며 쓸쓸히 돌아가던 시간들도 많았으리니….
 
 자, 이제 녀석의 이야기, 아니 나의 이야기를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가족들이 모여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순간들은 분명 행복하던 시간이고 홀로 숨어 고개 떨구던 아픔은 각자 혼자만의 것이리니, 어디에 있던 녀석, 구라쟁이, 이야기꾼, 나처럼 행복하라. 
 
 얘들아, 어떤 경우에라도 절망해선 안 돼. 서로를 미워해서는 안 돼. 언젠가 우리도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2권,108)
 
 
2008. 9.26. '엄마의 믿음'에 끄덕이는 저녁,  고개드니 가을이다.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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