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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노트 2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 2000년 9월
평점 :
『타나토노트라』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 생각하며 첫 장을 열었을 때 친절하게도 사전 뜻풀이가 되어 있었다.
::타나토노트 <명사>그리스 어 타나토스thanatos(죽음)와 나우테스nautes(항행자)를 합쳐 만든 조어(造語)로서, 우리말로 하면 저승을 항행하는 자 혹은, <영계탐사자(靈界探査者)>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거였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음에 대해 명백한 제시를 하는 성경을 믿는 내게 있어 죽음과 관련한 ‘영계탐사’의 내용이 소설의 주제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다소 실망감을 갖게 했지만, 베르베르를 믿고 소설로서의 재미와 가치를 찾아보고자 하는 조금 못미더운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용인 즉, 주인공 미카엘 팽송과 그의 친구 라울 라조르박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사람들이 죽음 너머의 영계를 탐사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뤼생데르의 우연한 신비체험으로부터 시작된 영계탐사는 점차 과학적 토대를 근거 잡아가며 발전한다. 물론 수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하나 영계탐사팀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잠깐동안 바보처럼 보이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로 남게 된다>는 중국 격언을 기점으로 하여 <콜럼부스의 달걀 문제>처럼 처음에는 모든 일이 불가능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에디슨의 끝없는 실패와 노력을 본받자는 기치아래 진보를 이루어 갈 것을 택한다.
생물학자인 라울과 마취 전문의 팽송의 퓨전 기술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영계로 나아갈 수 있는 화학적 발판을 마련해간다. 바꾸어 말하면, 화학약품의 결합물을 인체에 투입함으로써 영육의 분리 즉, 코마상태로 접어들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켜간다.
영계탐사만을 목적으로 세워진 이른바 ‘타나토드롬’이라는 실험실에서 그들의 암중모색은 계속된다. 여러 사람들의 생명을 진보를 위한 값비싼 대가로 치르며 점차 영계로, 영계로 나아간다. 육체로부터의 영혼탈피, 한 발짝씩 영계로 나아간다. 점입가경, 깔때기 모양을 전체구조로 하는 영계는 각각 1천계(청록계), 2천계(암흑계), 3천계(적색계), 4천계(주황계), 5천계(노랑계), 6천계(녹색계), 7천계(백색계)로 나뉜다. 물론, 영계탐사의 방식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화학약품의 도움 없이 명상만으로도 영육의 분리를 이룰 수 있는 것이 그러하다.
영계탐사의 발전과 안정으로 영계탐사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스포츠가 되었고, 영계에 광고가 생기며, 싸움도 이는 등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결국, 7천계의 천사들에 대한 정보까지 습득함으로써 인간의 삶이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닌, 전생의 업보로 말미암은 점수에 입각한 수많은 환생이라는 것, 600점에 도달해서는 환생을 끝내고 순수한 정령으로 완성되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상은 선업을 이루기 위해 범죄가 줄고 계산적인 선행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달착지근한 세상. 환생의 연속이라는 깨달음에 비롯한 생명 도외시 현상은 수많은 자살자를 내고, 영계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전생의 점수를 매겨 다음 생을 결정해주는 대천사는 세 명밖에 없고, 죽은 영혼은 영계를 가득 메워감에 따라 천사들의 요청으로 인간은 영계공무원 즉, 천사의 심판을 돕기 위해 카르마(전생 자료)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띤 사람들을 영계로 보내게 된다. 영계로의 출퇴근. 어찌 상상이나 할 법한가? 재미있다.
인간은 인간이다. 자신과 가족 친지의 카르마를 수정하기 위해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은 영계공무원에게 떡값을 찔러주게 되고, 결국 가진 자는 어떤 악행을 해도 다음 생을 넉넉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게 된다. 떡값 한 번 치르면 그만이니까. 빈익빈 부익부의 연속.
세상의 흐름은 바뀌었다. 선행을 아무리 쌓아도 돈이 없으면 다음 생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이 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다. 마침내 천사들의 강권적 개입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영계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을 기억에서 모두 지워버린다. 비밀은 비밀로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 인간들은 그 것을 발견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천사들의 개입이 불가했던 것이다.
여차여차해서 죽게 된 주인공 미카엘 팽송 박사는 7천계의 빛의 산을 넘게 된다. 물론 다음 생에서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것은 바로...
[내용 공개는 여기까지]
독특한 챕터구성-이야기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소설 속 공익광고, 신문, 뉴스 등-과 여러 나라와 민족, 지방의 신화나 전설의 삽입이 특이할 만 하다 할 수 있었다. 결국, 베르베르는 이러한 다양한 신화와 종교철학, 전설에 대한 지식종합을 데이터로 하여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고, 여기에 작가의 과학적 지식을 가미해 이른 바, 픽션과 사실의 정교한 결합을 이루어낸다. 더불어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벗어나 유쾌한 익살과 풍자를 일구는 그의 글 솜씨.
미상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비범인(非凡人)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소설은 소설로써 끝내야 한다는 점. 물론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상상력은 섭렵해야겠다. 그러나 소재의 특이성에 비춰 크리스챤으로서 가져야 할 세계관이 확립되어있지 않으면 소설의 유익은커녕 가치관의 혼란만 가져올지 모른다. 젖 먹을 때 젖 먹고, 밥 먹을 수 있으면 먹어도 좋다는 얘기이다.
타나토노트.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선택과 내용구성을 담아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것이 베르베르의 힘이 아닐까?
북클럽 아무개 회원의 짧은 글이 떠오른다.
“베르베르는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