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 된 <왕과 나>를 읽었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엄청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이런 역사서처럼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은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쉽게 읽을 수 있지요. 일단, 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초, 중,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교과목을 통해 배운 국사, 한국사, 근현대사, 세계사 정도와 현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또, 중학생 때 이기담 작가의 <광해군>이라는 역사소설을 계기로 한참 역사에 빠져 지내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정도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제가 읽기에, 이 책은 그렇게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왕 중심으로 공부를 하던 저에게 왕이 아닌, 왕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기에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참모사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서술해보려는 생각은 꽤 오래되었다. 한국사를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 킹메이커와 왕을 보좌한 참모들로 나눌 수 있다. 킹메이커는 자신이 선택한 인물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지만 실현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정도전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본질에 능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p, 7

 

08년도 였나, '왕과 나'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지요. 당시 환관 즉, 내시였던 김처선에 관한 드라마였는데 비록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저는 굉장히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왕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내시를 다룬 작품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영화 '왕의 남자'나 '후궁' 등에서도 왕보단 그 주변인물들에게 감동을 받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때부터였는지, 한국사에서 왕보다는 왕이 아닌 자들에게 관심을 더 많이 쏟게 되었고 그런 저에게 이 책은 잘 어울렸지요.

 

 

 

사진이 좀.. 아니 많이 흔들렸지만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알려드리고 싶었기에 참고만 해주셔요!

 

제가 재미나게 읽었던 부분은 소서노와 정도전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왕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읽으면 더 재밌기 때문에 관심있는 부분만 골라 읽으셔도 무관해요. 책 전체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보시는 바와 같이 챕터마다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요즘 우리나라가 위안부 할머님들, 독도 문제 등 여러가지 부정적인 일들을 당하다보니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나 중요성이 크게 고조되고 있지요. 이제 취업을 하는데도 한국사가 필수인 경우가 많아 저처럼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많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얼마전 교수님께서 방학인데 뭐하고 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자격증 따려고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안타까워하신 적이 있어요. 이렇게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가슴이 아프시다는 거였어요. 아무 생각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저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이렇게 역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이런 책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읽고 한국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 상식'처럼 인식되는 날이 오길 기다려봅니다.

 

 

이렇게 사진자료나 사료도 실려있어서 딱딱하지 않아요.

 

역사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다고 너무 겁내지 마셔요. 저도 뛰어나게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게 아니였지만 쉽게 읽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드리고 싶어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그런 미야코 씨가 존스 씨 눈에는 굉장히 신선해 보였습니다.

누구의 여자도 아닌, 한없이 자유로운 한 여성으로. 미야코 씨도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와버리자 섹스는 어디까지나 건전하고 자유롭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물론 미야코 씨도 깨닫고는 있었습니다.

세상 안쪽에 있는 사람들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불륜녀일 테지. -p, 220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 제일 먼저 파격적인 제목과 표지를 보고 깜짝 놀라는 한편, 빨리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진만 보면 로맨틱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제목까지 생각하면서 보니 이 사진, 불온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요?

지금까지 출판된 에쿠니의 책 중에서 이렇게 실제 인물 사진이 표지로 등장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에쿠니는 자신의 에세이에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리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에선 불륜이 주로 다뤄지곤 하지요. 그럼에도 신기한 점은 이 불륜이 순수하게. 마치 소녀스러운 감성으로 다가온다는 거에요.

위험한 발언이지만 에쿠니의 소설을 읽다보면 '불륜.. 해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하지만 지금, 강사 대기실 구석에 앉은 존슨 씨는 허전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멋진 관계와 허전함은 한참 동떨어진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고 싶으면 보러 가면 된다는 것이 존스 씨의 평소 생각이고, 상대가 미야코 씨여도이상한 외국인으로 비쳐질 위험을 알면서도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여성을 보러 가는 일에 공포를 느낀 적은 여태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공포?

존스 씨는 자문합니다. 대체 무엇에 대한 공포일까, 하고.

생각나는 것이라면 헤어질 때의 상황입니다. 정말 즐거웠어요. 미야코 씨는 그렇게 말하고, 존스 씨 눈앞에서 대문을 탁 닫았습니다.

계단을 사뿐사뿐 뛰어 올라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더니, 순식간에 현관문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그곳은 미야코 씨 집이므로 이도 저도 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존스 씨는 그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야코 씨가 갑자기 사라진 것과 자신이 어쩔 도리 없이 그녀를 보내버린 것 중 어느 쪽이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지,

그 점은 존스 씨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였습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존스 씨는 그때, 부당하게도 갑자기 미야코 씨를 빼앗겼다고 느꼈으며,

두 번 다시 같은 꼴을 당하고는 못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p, 58-59

 

 

그건 그렇고, 존스 씨 눈에는 오늘 미야코 씨가 유난히 생기 있어 보였습니다. 마치 동남아시아의 식물 같은 생기였다고 존스 씨는 생각합니다.

구애됨 없이 자유롭고 선명하고. 존스 씨에게는 자신 옆에서 행복해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설령 그 여자가 자기 사람이 아니라해도. -p, 99-100

 

 

9월 둘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초인종이 울렸을 때, 미야코 씨는 존스 씨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습니다(전날에도 그 전전날에도 완벽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적어도 미야코 씨 본인은 그렇게 여겼습니다. 존스 씨를 만나면 이 얘기도 하고 저 얘기도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구로히메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연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런 준비는 아무 쓸모도 없는혹은 준비 따위 처음부터 되어 있지 않았던것이었음을.

계단 아래,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생생히 살아 숨쉬는 존스 씨가 서 있습니다. 미야코 씨는 움직이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미야코 씨 자신이 나중에 생각한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눈앞에 있는 존재가 바로 믿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p, 132

 

 

보고 싶었던 사람이 지금 이렇게 눈앞에 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확인했냐 하면, 우선 존스 씨 이외의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자신의 손이라든지,

카운터 위의 사이펀이라든지, 벽에 걸린 그림이라든지, 스툴 위의 검은 고양이 따위입니다, 존스 씨에게 시선을 되돌리는 겁니다.

볕에 조금 그을린, 건강해 보이는, 모스그린색 폴로셔츠를 입은, 머리숱 많은, 좋은 냄새가 나는 존스 씨에게로.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미야코 씨는 기쁜 마음으로 몇 번이고 그리 생각합니다특별한 시간이 되돌아온 겁니다. -p, 138

 

 

물론 미야코 씨는 히로시 씨가 좋았습니다. 적어도 그것이 맨 처음 떠오른 대답입니다. 하지만 어디가? 그렇게 자문해버리는 바람에 확신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남편이니까라는 것이 미야코 씨의 솔직한 심정이고, ‘하지만 서로 좋아서 아내와 남편이 됐으면서, 남편이라서 좋다는 건 이상해라는 것이

미야코 씨의 이른바 자기비판이었습니다. -p, 162

 

 

미야코 씨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식어버린 오코노미야키를 바라봅니다.

상관없습니다. 그건 냉동시켜두면 되니까.”

존스 씨는 말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서 그 일을 실행했습니다.

방 안의 불을 켜버리면, 갑자기 맛이 없어지거든요.”

부엌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둠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불을 밝히면 그 녀석들이 달아나버리기 때문이지 싶어요.”

미야코 씨는 미간을 좁혔습니다. -p, 184

 

 

 

 

한편으로는,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그저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 미야코 씨가 존스 씨에게 끌린 이유도 남편이 보여주지 않은 관심을 존스 씨가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여주고 맞장구 쳐주고 하는 걸 미야코 씨는 바랐던 거지요.

 

하지만 서로 좋아서 아내와 남편이 됐으면서, 남편이라서 좋다는 건 이상해’ 라는 미야코 씨 말에서

단지 부부 사이 뿐만 아니라 연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모습을 미야코 씨 부부에게서 볼 수 있었는데요,

우린 처음엔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그만큼 관심을 줍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렇게 서로가 좋아지지만 '이제 당신한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줄거야.'하는 생각에 서서히 관심을 끄게 됩니다.

미야코 씨의 남편도 처음엔 미야코 씨와 만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부부가 되고 나선 설렁설렁 대하지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느끼셨듯이 이 책의 결말은 '어? 안돼!'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씁쓸합니다.

 

 

 

게다가, 묘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미야코 씨는 존스 씨 눈에 더 이상 작은 새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한 오후입니다.

어둑어둑한 방에는 그윽한 먹물 냄새가 흐르고 있습니다. -p, 243

 

 

정말 유감스럽게도, 존스 씨도 미야코 씨에게 서서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뒤에 미야코 씨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굉장히 궁금해지는 소설이에요. (부디, 굳세게 다시 일어나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길!)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이것은 '책 읽기'에 관한 책이자 '책 읽는 사람'에 관한 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한 '책 바보'가 책을 읽는 데 바친 수많은 나날을 적은 기록입니다.

또한 이 책은 우연히 같은 시대에 태어나 지금도 어디선가 홀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입니다. -p, 4

 

 

중학생 때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알게되어 도서관 가는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가서 다 읽지도 못할 책을 그저 표지가 예쁘단 이유만으로, 제목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잔뜩 빌려와선 공부도 뒷전으로 미루고 책을 읽었다. 그러던게 어느덧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나는 왜 책을 읽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

작가
김무곤
출판
더숲
발매
2011.10.28

리뷰보기

 

 

이 책도 여느날처럼 도서관에 가서 쭉 돌아보던 차에 눈에 띄어 집어온 책이다.

무엇보다도 표지에 조그마한 책을 꼭 쥐고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이 소녀가 정말 예뻐보였다. 구스타프 아돌프 헤나히의 작품 <독서하는 소녀>

 

이 책을 읽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그곳은 도쿄 중심부 지요다구 북부에 있는 세계 최대의 고서점 타운 '진보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당시 하버드대학의 일본학 교수이면서 미군의 고문을 겸하고 있던 엘리세프가 맥아더 장군에게 진보초 일대를 폭격하지 말 것을 청원했다는 일화는 이제 진보초의 전설이 되었다.

 

진보초는 한국사 사료의 숨겨진 서고이기도 하다. 많은 역사학자 연구가들이 도서관이 아니라 이곳에서 귀중한 사료를 발견하곤 한다. 국제한국연구원장 최서면씨가 명성황후 시해 현장을 목격한 일본 순사의 수기를 발견한 곳, 안중근 의사의 옥중서기 『안응칠 자서전』을 찾아낸 곳도 바로 진보초의 고서점이다.  -p, 43

 

 

우리나라에선 부산의 헌책방 골목과 같은 곳일까?

헌책을 모으는 취미는 없지만 책이 가득한 거리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인간의 생 자체가 시간의 제약을 받고, 어느 순간 끝나게 되어 있는 게 아니던가.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 가볼 수 있는 장소, 해볼 수 있는 역할은 누구에게나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 속에서 가볼 수 없는 곳을 가고, 머물 수 없는 시간 속에 머물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속에서 우리는 시인이 되고, 탐정이 되고, 악당이 되고, 선장이 되고, 그리고 때로 동물과 식물이 된다. 책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 연애와 실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을 천 권 읽은 사람은  적어도 천 번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p, 52

 

 

 

세계의 훌륭한 독서광들. 빌 게이츠, HP의 전 CEO인 칼리 피오리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오프라 윈프리,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 등의 일화를 읽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독서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네 자신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요즘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가 빌 게이츠보다, 삼성그룹 회장보다, 오프라 윈프리보다 시간이 없을까? 책을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좋겠다.

 

 

종이책은 '무한 에너지'를 가진 매체다. 충전시키지 않아도 되고, 콘센트에 꽂지 않아도 볼 수 있다. 휴대폰의 배터리는 아직 하루 24시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처음 내가 샀던 초기 휴대폰의 배터리 수명은 겨우 반나절이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반나절에서 하루로 길어지는 동안 책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책은 무한 에너지, 충전이 필요없는 영원한 배터리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p, 85

 

 

 

학교에서도 틈날때마다 책을 읽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참 뿌듯한 일이고, 나한테 책에 대해 물어올때면 뭐든 알려주고싶은 마음에 두근거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독서광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고, 가끔 책을 읽으면서 '스펙 쌓느라 바쁜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지나 않을까' 이런 걱정을 했던 내 자신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난 여전히 시간 날때마다 도서관을 갈 것이며, 다 읽지 못할 책을 낑낑거리며 빌려와선 뿌듯해할것이다. 이 책은 책을 읽는 이유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책이다.  

 

 

 

책 읽는 일은 얼핏 외로운 일처럼 보인다. 책 읽는 시간은 오직 혼자서 오롯이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별처럼 수많은 시간을 뛰어넘어 인류가 축적한 자산을 이어받고 있기에 책 읽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과 인류의 정신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지금 그대가 책을 읽는 이 시간에도 지구 어딘가의 구석방에서 누군가 책을 읽기 위해 천천히 일어서서 램프를 켜고 있다. 책 읽는 그대는 지금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p, 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나에게, "영국의 어느 유명한 인사는 자기 부인을 옆에 앉혀놓고서야 명강의를 했다는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서 독서를 할 때 마음이 편안해져. 이젠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 하며 그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p, 196

 

 

 

 

내 사랑 백석

작가
김영한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1.09.01

리뷰보기

 

 

 

중고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봤던 백석 시인의 시, 시를 잘 모르시는 분이더라도 '여승'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백석 시인의 시를 기억하실거에요.

 

 

저는 과제를 하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백석 시인을 사랑했던 '자야 여사'가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기생 신분이었던 자야 여사와 교사였던 백석 시인은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없었습니다. 자야 여사도 문학 공부를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이 책에 쓰인 문체가 청초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선생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  p, 40-41

 

 

 

자야 여사는 이 책을 '내 나이 열여섯에'라는 목차로 시작해 '당신 곁으로'라는 목차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녀의 60여년의 삶이 그려져 있는 이 책엔 사실, 그녀가 백석 시인과 함께 했던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대부분이고 그 이후의 삶도 백석 시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가 함께 한 건 겨우 3년 남짓한 시간이었고, 그 이후 60년 정도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그리워만 하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인 백석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소중한 러브스토리를 책으로 펴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거에요.

 

 

이 둘의 사랑엔 안타깝게도 장애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이 둘은 1930년대의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적인 피해를 크게 입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야 여사가 기생이 되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기생이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혼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봉건적인 부모님 때문에 세 번이나 장가를 들어야 했던 백석 시인을 보며 자야 여사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생각하니 제 마음도 좋지 않았어요.

 

 

 

이 책을 통해 본 백석 시인은 아주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실제로 굉장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시인이어서 그런지 여자의 마음이 설렐만한 말과 행동을 많이 보였어요.

 

사진관에 진열되어 있는 여자 사진을 외면하며 "나는 당신 말고 다른 여자는 아예 눈도 주기 싫어!" 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자야오가』라는 책을 보고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라고 합시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설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였답니다.^^

 

 

 

어느덧 팔순이 가까운 내가 만상이 고요히 잠든 깊은 야심경에 혼자 등불을 밝혀놓고

당신과의 애틋했던 기억의 사금파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동안 줄곧 이 글을 써내려왔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올 양이면 나의 두 볼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적시어지고, 급기야 눈물은 원고지 위로 뚝뚝 떨어진다. -p, 2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살았는데 당신을 떼어놓고 어떻게 김현경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지금도 빛나는 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작을 끝내면 산고를 치렀다고 하면서 무조건 제게 쓴 시를 정서하게 하셨지요.

지금은 어떤 날에 어떤 심정으로 그 시들이 쓰였는지 정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간혹 정서하면서 "무엇이죠? 왜요?" 하며 당신께 질문하곤 했습니다.

당신 곁에서 당신 작품의 첫 독자였던 사람으로, 아내로, 한 여인으로, 이 책은 그때처럼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정서한 거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세월이 가기 전, 기억이 흰 눈으로 덮이기 전에 말입니다. -p, 8

 

 

 

김수영의 연인

작가
김현경
출판
책읽는오두막
발매
2013.03.06

리뷰보기

 

 

 

 

얼마전 소개해드렸던 책 김자야 여사님의 '내 사랑 백석'과 비슷한 책입니다.

이 책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인 김현경님이 김수영 시인을 그리워하며 쓴 에세이거든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책보다 '내 사랑 백석'이 더 좋았는데 이는 백석 시인과 김수영 시인의 너무나 다른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놋그릇을 썼다. 유리나 사기로 된 그릇은 쓰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수영은 화가 나면 그것이 재떨이든 물컵이든 보이는 대로 집어 던지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 수영이 늘 괴팍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아침에는 동네 여인들이 가득나와 있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빨래가 든 양동이를 받아 들고 한 걸음 앞서 걸어갔다. 내 마음이 다 빨래가 된 듯한 그날의 청신한 느낌을 나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p, 225

 

 

 

백석 시인은 김자야 여사에게 마냥 점잖은 모습만 보였다면 김수영 시인은 술주정도 심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저에겐, 백석 시인의 시보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까닭도 있겠지요.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신 김수영 시인,

이 책을 통해 본 그는 저에게 마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빼빼 마른, 과묵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4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전차를 탔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수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수영은 당시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수영은 나를 보더니 수업을 반만 하고 곧 돌아올 테니 벤치에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40분정도 흘렀을까? 아마도 그 시간은 내 생에 가장 길었던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야 그보다 더한 기다림의 시간도 많았지만 행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인가, 하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그때를 과연 어떤 기다림의 시간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감각은 오로지 그가 나타날 방향을 향해 쏠려 있었다.

마침내 수업을 일찍 끝내고 온 수영이 내 옆에 앉았다.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어색했다기보단 개화 직전의 꽃망울 속 같은 두근거림이 가득한 침묵이었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수영은 “My soul is dark."하고 신음 같은 말을 토해냈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수영의 프로포즈였던 것이다. -p, 31-32

 

 

시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수영의 시정신의 끝은 존재에 대한 사랑에 꽂혀 있었다.

개인으로서 시인의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안일과 무위를 극도로 거부한 그였다. 오직 존재의 참되고 아름다운 정신의 지표를 바랐다.

자학까지 하면서 그는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가에서 자라나던 무성한 풀잎들, 내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의 싱싱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p, 135

 

 

 

김수영 시인이 위대한 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옆에서 항상 든든하게 그를 도와주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편이 좋지않아 작은 집에서 살 때도 그녀는 김수영 시인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에게 독방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또, 그가 작품 하나를 끝낼 때마다 그녀가 원고지에 글도 깔끔하게 옮겨주고, 숫자도 하나하나 메겨주는 등 그의 작품은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쓰여진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예술가에겐 뮤즈가 있지요.

최근, 김수영 시인과 백석 시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그들이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사랑했던, 또 그들을 사랑했던 그녀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시험을 위해서 그들의 시를 공부할때면 '왜 이렇게 시를 어렵게 쓴거야.', '무슨 시를 이렇게 많이 썼어!!' 하며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지루한 시인이 아닌, 한 여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한 남자였고, 이 여자에게 가끔은 어리광도 부리는 평범한 남자였다는 생각을 하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충일하게 사는 것이 그의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 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