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살았는데 당신을 떼어놓고 어떻게 김현경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지금도 빛나는 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작을 끝내면 산고를 치렀다고 하면서 무조건 제게 쓴 시를 정서하게 하셨지요.

지금은 어떤 날에 어떤 심정으로 그 시들이 쓰였는지 정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간혹 정서하면서 "무엇이죠? 왜요?" 하며 당신께 질문하곤 했습니다.

당신 곁에서 당신 작품의 첫 독자였던 사람으로, 아내로, 한 여인으로, 이 책은 그때처럼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정서한 거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세월이 가기 전, 기억이 흰 눈으로 덮이기 전에 말입니다. -p, 8

 

 

 

김수영의 연인

작가
김현경
출판
책읽는오두막
발매
20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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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소개해드렸던 책 김자야 여사님의 '내 사랑 백석'과 비슷한 책입니다.

이 책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인 김현경님이 김수영 시인을 그리워하며 쓴 에세이거든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책보다 '내 사랑 백석'이 더 좋았는데 이는 백석 시인과 김수영 시인의 너무나 다른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놋그릇을 썼다. 유리나 사기로 된 그릇은 쓰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수영은 화가 나면 그것이 재떨이든 물컵이든 보이는 대로 집어 던지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 수영이 늘 괴팍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아침에는 동네 여인들이 가득나와 있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빨래가 든 양동이를 받아 들고 한 걸음 앞서 걸어갔다. 내 마음이 다 빨래가 된 듯한 그날의 청신한 느낌을 나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p, 225

 

 

 

백석 시인은 김자야 여사에게 마냥 점잖은 모습만 보였다면 김수영 시인은 술주정도 심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저에겐, 백석 시인의 시보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까닭도 있겠지요.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신 김수영 시인,

이 책을 통해 본 그는 저에게 마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빼빼 마른, 과묵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4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전차를 탔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수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수영은 당시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수영은 나를 보더니 수업을 반만 하고 곧 돌아올 테니 벤치에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40분정도 흘렀을까? 아마도 그 시간은 내 생에 가장 길었던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야 그보다 더한 기다림의 시간도 많았지만 행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인가, 하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그때를 과연 어떤 기다림의 시간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감각은 오로지 그가 나타날 방향을 향해 쏠려 있었다.

마침내 수업을 일찍 끝내고 온 수영이 내 옆에 앉았다.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어색했다기보단 개화 직전의 꽃망울 속 같은 두근거림이 가득한 침묵이었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수영은 “My soul is dark."하고 신음 같은 말을 토해냈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수영의 프로포즈였던 것이다. -p, 31-32

 

 

시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수영의 시정신의 끝은 존재에 대한 사랑에 꽂혀 있었다.

개인으로서 시인의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안일과 무위를 극도로 거부한 그였다. 오직 존재의 참되고 아름다운 정신의 지표를 바랐다.

자학까지 하면서 그는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가에서 자라나던 무성한 풀잎들, 내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의 싱싱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p, 135

 

 

 

김수영 시인이 위대한 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옆에서 항상 든든하게 그를 도와주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편이 좋지않아 작은 집에서 살 때도 그녀는 김수영 시인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에게 독방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또, 그가 작품 하나를 끝낼 때마다 그녀가 원고지에 글도 깔끔하게 옮겨주고, 숫자도 하나하나 메겨주는 등 그의 작품은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쓰여진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예술가에겐 뮤즈가 있지요.

최근, 김수영 시인과 백석 시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그들이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사랑했던, 또 그들을 사랑했던 그녀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시험을 위해서 그들의 시를 공부할때면 '왜 이렇게 시를 어렵게 쓴거야.', '무슨 시를 이렇게 많이 썼어!!' 하며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지루한 시인이 아닌, 한 여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한 남자였고, 이 여자에게 가끔은 어리광도 부리는 평범한 남자였다는 생각을 하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충일하게 사는 것이 그의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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