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나에게, "영국의 어느 유명한 인사는 자기 부인을 옆에 앉혀놓고서야 명강의를 했다는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서 독서를 할 때 마음이 편안해져. 이젠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 하며 그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p, 196

 

 

 

 

내 사랑 백석

작가
김영한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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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봤던 백석 시인의 시, 시를 잘 모르시는 분이더라도 '여승'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백석 시인의 시를 기억하실거에요.

 

 

저는 과제를 하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백석 시인을 사랑했던 '자야 여사'가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기생 신분이었던 자야 여사와 교사였던 백석 시인은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없었습니다. 자야 여사도 문학 공부를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이 책에 쓰인 문체가 청초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선생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  p, 40-41

 

 

 

자야 여사는 이 책을 '내 나이 열여섯에'라는 목차로 시작해 '당신 곁으로'라는 목차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녀의 60여년의 삶이 그려져 있는 이 책엔 사실, 그녀가 백석 시인과 함께 했던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대부분이고 그 이후의 삶도 백석 시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가 함께 한 건 겨우 3년 남짓한 시간이었고, 그 이후 60년 정도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그리워만 하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인 백석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소중한 러브스토리를 책으로 펴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거에요.

 

 

이 둘의 사랑엔 안타깝게도 장애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이 둘은 1930년대의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적인 피해를 크게 입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야 여사가 기생이 되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기생이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혼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봉건적인 부모님 때문에 세 번이나 장가를 들어야 했던 백석 시인을 보며 자야 여사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생각하니 제 마음도 좋지 않았어요.

 

 

 

이 책을 통해 본 백석 시인은 아주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실제로 굉장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시인이어서 그런지 여자의 마음이 설렐만한 말과 행동을 많이 보였어요.

 

사진관에 진열되어 있는 여자 사진을 외면하며 "나는 당신 말고 다른 여자는 아예 눈도 주기 싫어!" 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자야오가』라는 책을 보고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라고 합시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설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였답니다.^^

 

 

 

어느덧 팔순이 가까운 내가 만상이 고요히 잠든 깊은 야심경에 혼자 등불을 밝혀놓고

당신과의 애틋했던 기억의 사금파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동안 줄곧 이 글을 써내려왔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올 양이면 나의 두 볼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적시어지고, 급기야 눈물은 원고지 위로 뚝뚝 떨어진다.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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