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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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가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는 신이 이제 막 내게 선사한 새로운 아버지였다. 잃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믿었던 바로 그 순간에 다시 되찾은 셈이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내가 잃어버렸던 그의 모든 시간도 함께 되찾았다. 그 시간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나는 그 순간에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게는 두 배로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 이상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너무 짧아서 결코 내가 헤아릴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시간이었다. 순간 나는 더 이상 인생이 나를 끌고 다니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와의 시간도 더 이상 낭비할 수 없었다. 2년이란 어마어마한 세월을 그냥 흘려보냈다. 2년이란 세월 동안 그 시간을 꽉 채울 수도 있었을 수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나는 모두 잃어버린 셈이었다.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었다. 아버지와, 그녀와 함께했어야 할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낭비했다. 그것이 이제 내가 원하는 시간이다. -p, 366, 367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 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겠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신경숙 작가님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너무나 늦어버린 후회에 가슴이 찡해지는 부분이에요.

누구나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하지만 저는 그 많은 후회들 중 사람을 잃고나서 그 사람에게 잘해주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있을때 잘하자."라는 말을 가슴 속에 새겨두며 가족, 친구들에게 잘하려고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지요.

파비오 볼로의 <내가 원하는 시간>이라는 이 책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 늦어버린 후회에 대해 다룬 소설입니다.

어찌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던지 소설이라기보다 '있을때 잘하자.'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마치 이 소설의 주인공이 파비오 볼로 작가 자신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나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더라구요.

역자 후기를 보니

'사실 작가로서의 볼로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영웅인 이유는 그가 모두를 위해 말하고, 모두가 바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이면서도 여전히 수줍어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말들을 참지 못하는 재주가 있다.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도 모두가 듣기 원햇던 말을 마치 꾹꾹 참았다가 말한다는 듯이 꺼내곤 한다. 그의 글들 역시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의 모습과 의미, 그리고 그것에 대한 우리들의 감추어져 있던 갈망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사랑받는 작가다.' 라고 나와있네요.

위 사진에 있는 글은 볼로가 라디오 방송에서 낭독했던 <행복이란?>이라는 산문이라고 해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게 가장 큰 행복일거라 생각하고 저런 작고 소중한 행복을 모른척하며 지낸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를 하게 만든 부분이에요.

지금껏 모른 척 했던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면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 차겠지요.

또한 이 책에선 독서를 예찬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해요. 주위에서 책을 왜 읽니? 라고 물었을 때 턱턱 막혔던 제 생각을 여기서 대변해주는 듯 해서 속이 시원했답니다.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아버지라는 거인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깨닫는다. -p, 20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은, 당신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당신의 머릿속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지나간 추억과 영상들의 느닷없는 공격이 시작된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당신이 느끼는 것은 삶이 당신을 외면한 채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결국 과거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 현재의 삶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재니스 조플린은 노래한다. I'd trade all o' my tomorrows for one single yesterday. 나의 모든 내일을 단 하루의 어제와 바꾸겠어요.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그를 만지기 위해 한밤중에 어둠 속을 향해 손을 뻗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새벽에 일어나 침대 한쪽을 바라보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비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가스레인지가 항상 커피로 얼룩져 있다는 걸 뜻한다. 왜냐하면 커피를 불에 올려놓았는지 아닌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파스타를 삶는 물에 소금을 두 번씩이나 집어넣거나 아니면 전혀 집어넣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일과 무수히 많은 생각을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청소를 하고 묵은 때를 닦아내고 정리 정돈을 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가져다 버린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벽에 못을 박는다는 걸 의미한다. 벽에도, 나무에도, 허공에도……. 그건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책을 읽으면서 빈번히 앞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말들을 그냥 지나쳐 왔기 때문이다. 그걸 의식하는 순간, 열심히 읽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함께할 수 없다는 건 돌려감기 버튼을 누르고 거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거꾸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을 내다보기보다는 뒤를 훨씬 더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건 배를 타고 뱃머리가 아닌 후미에 몸을 기대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늦는다고 집에 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을 기다리지 않고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건 집에 도착해서 하루 일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할 사람이 없다는 걸 뜻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모든 변화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극히 사소한 것들까지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p, 24-26

헤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들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정말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의 감정을 상실하기도 한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잇다. 하지만 헤어지는 것도 결국에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만에 하나라도 일시적인 문제는 아닐까 의심하면서 정말 헤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먼저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정말 끝났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이어서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아픔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말을 찾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말을 꺼내지 못해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허송세월하기도 한다. 때로는 평생을 허비하고 결국에는 헤어지자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헤어지는 데 실패한다. 때로는 더 이상 오갈 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아픔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와 은밀한 관계를 가졌던 누군가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강렬한 고통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고통이 매일같이 계속되는 조그마한 고통들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가져다줄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얼마 안 있어 차일 사람이 그걸 이미 알아차렸다고 해도 두 삶의 관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속된다. 왜냐하면 모르는 척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용기를 내지 못하면 작별의 메커니즘은 붕괴되고 만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의 무능력과 상대방의 무능력 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은 상태로 돌입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시간을 벌기로 한다. 그런 식으로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에는 고갈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얼마 안 있어 차이게 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훨씬 더 친절하고 다정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변신한다. 그런 식으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복종적인 사람은 누구든 매력을 잃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순간이 미루어지면 미루어질수록 희생자는 계속해서 더 약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무슨 실수라도 범하기만을 기대하면서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상대가 오류를 범하고 약점을 드러내면 그것을 핑계 삼아 얘기를 꺼낼 수 있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서로 사랑하지도 않고 서로의 삶에 해만 끼치면서도 질투심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헤어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제삼자가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같이 지내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5년 동안이나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서로를 정말로 사랑한 적이 두 번 혹은 세 번, 아니면 네 번밖에는 되지 않는 커플도 있을 수 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를 기준으로 커플들의 사랑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했느냐가 중요하다. -p, 27-29

어느 시점에선가 그가 말했다.

“그것 참 안타까운 노릇이네. 책 읽는 걸 안 좋아한다니 말이야. 네가 좋아할 만한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하지만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지. 너도 책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책을 읽는다는 게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 거예요? 보니까 나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그것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데, 그게 나한테 꼭 필요한 거예요? 가뜩이나 골치 아픈 문제도 많은데, 책까지 꼭 읽어야 하나?”

“책 읽는 게 너한테 힘든 일이면 안 읽어도 좋아.”

“책을 읽으면 행복해지나요? 아닌 것 같은데. 인생고를 해결하려면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일을 해야죠.”

“네 얘기도 맞다. 하지만 행복이든 불행이든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뒤바뀔 수 있는 거야.”

“그렇죠. 하지만 내 문제들은 실질적인 것들이에요. 머리로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

“그래. 하지만 문제 해결은 머리로 하는 거야. 가끔은…… 우기고 싶지는 않은데, 어쨌든 알아둬야 할 건, 독서가 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는 거야. 시동을 거는 거지. 네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 정서, 감정 모두 말이야. 책을 읽는다는 건 세계를 향해 우리 감각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과 같아. 독서란 우리가 가슴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을 읽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것들을 찾고 확인하는 일이야. 우리가 삶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읽는다는 건 맞는 말을 찾는 것과 같아. 네가 설명하기 힘들었던 것들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말을 찾는 거지. 그건 네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말의 이유를 밝혀내는 것과 같아.

책 속에 쓰여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우리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때가 있어. 왜냐하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 있었던 말이기 때문이야. 플라톤이 얘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종류의 앎이었어. 원래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는 앎이지. 독자가 젊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중요하지 않아.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마찬가지로 책이 다루는 주제가 과거이든 현재이든, 혹은 상상 속의 미래이든 상관없는 문제야. 시간이란 상대적인 개념이야. 모든 시대마다 현대였던 때가 있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다는 건 멋진 일이야.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가끔은 배가 부를 때도 있어. 충족감을 느끼는 거지. 몸도 거뜬해지고.” -p, 116-118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독서는 일종의 마약이 되어버렸다.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어떤 책들은 하룻밤 사이에 끝을 보기도 했다. 가끔은 책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읽는 속도를 늦추기까지 했다. 더 이상 넘어가고 싶지 않은 페이지들이 있었다. 이야기가 금방 끝난다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p, 120

나는 책과 가까워지면서 나한테 맞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점수를 따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단지 새로운 걸 발견한다는 즐거움을 느낄 뿐이었다. 내게 계속해서 책을 읽도록 부추겼던 것은 의무가 아닌 나의 궁금증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 속의 인물들과 만나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경쟁까지 시도해보았다. 나의 내면은 그들의 내면과 은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어렵고 힘들고 나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굴욕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 대해 내가 모르던 많은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 해도 감정만큼은 사실이었고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내 삶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모두 나의 감정 상태에 변화를 주고 때로는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느낌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힘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p, 121-122

내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영화와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작품이었다. 텅 빈 가슴을 부둥켜안고 책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소화해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로부터 멀리 도망치기 위해 나는 책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에게 상처를 준 세상으로부터 나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p, 151

당시에는 과거에 읽었던 책 내용들이 자주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예를 들어, 골드문트의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결정되어 있었지만 그 역시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거부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율리시스도 세상과 인간을 알고 싶어 하는 열정 때문에 모든 사소한 감정들을 포기할 줄 알았다.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은 내게 모든 일에 끝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내게 가르쳐준 인물이 에이해브였다. 그건 무엇을 목표로 하든 그 목표에는 고귀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위험을 받아들이되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무 위의 남작』은 어쩌면 극단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되는 삶 속에서 자신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소설이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 중 몇몇을 다시 뒤져가며 읽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멋지고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똑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는, 그 책은 거의 불가항력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읽은 책에 다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세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세계, 상황들이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비추어질지 궁금했고 무엇보다도 그 세계가 나를 다시 받아줄 수 있는지 혹은 내 안에 들어와 숨 쉴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읽으면 몇몇 페이지들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이번에는 내가 그 페이지들 속의 내용을 변화시킨다. -p, 168-169

내가 원하는 시간

작가
파비오 볼로
출판
소담출판사
발매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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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홈닥터 : 강아지 편 - 증상으로 찾아 더 알기 쉬운 내가 바로 홈닥터
가와구치 아키코, 가나이 마사토.리에 지음, 박상진.김은희 옮김, 나카가와 시로 감수 / 뜰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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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민트색이라 참 예쁘죠?


6년 이상 강아지와 함께 지냈는데 이렇게 강아지에 대한 책을 읽어본 건 처음이에요.

어마무시한 악마견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비글이지만 사랑스러운 얼굴로 지금까지 별탈없이 잘 지내준 터라 (말썽부리는 것만 빼곤)

따로 공부를 해야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초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짜증을 내고

"말로 해봐!!!!" 라면서 초로한테 성질을 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하는 바람에, 진심으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기 위한 공부라도 해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던 찰나!

이렇게 좋은 책을 접하게 되었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강아지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반려견과 함께 하다보면 한번 쯤은 궁금해했을 정보나 위기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있는 책이었어요.









이렇게 강아지에 대한 기초 지식 뿐만 아니라









식욕이 없거나, 호흡이 이상하거나 딸국질을 하는 등의 다양한 증상에 대해서도

원인과 증상을 알아보는 방법, 치료 방법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사고, 응급처치, 나이와 성별에 따른 질병, 외부 문제에 대한 대응책까지!

어쩔 수 없는 외부문제가 뭐가있을까 궁금했는데...








다른 집 강아지와 교미를 해 버리는...

진짜 이런 상황이 오면 어버버버 할 것 같더라구요.





앞으로도 별탈없이 건강하게 자라주어 이 책을 볼 일이 없게 해주었으면 제일 좋겠지만,

반려견과 함께하는 분들이라면 집에 한 권쯤 두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어요.

심심할때마다 가볍게 하나씩 읽어두어 기초 지식을 쌓아둘만한 쉬운 책이기도 하구요.








마지막은 우리 예쁜 초로 사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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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역사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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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이라 함은, 겪고 싶지 않다고 해서 마음대로 미루거나 피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지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아리지만 생각처럼 나쁜 속성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 듯 싶어요. 사람들은 실연을 경험한 후 더 나은 사람이 되곤 하거든요. (물론 더 망가지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네 덕분에 살도 빠졌다며, 고맙다며.

오죽하면 이런 노래가 있을까요,

 

 

 

 

 

사랑이 흔한 맹세처럼 영원할 수 없다면 실연은 필연적이다.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축복을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것처럼 동시에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이 어쩌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목숨을 걸듯 사랑할 수 있고, 누구든 원하지 않는데도 헤어질 수 있으며, 누구든 살면서 한두번 쯤 진짜 죽고 싶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은 그냥 포기해버리거나 미련 없이 돌아서고, 곧 잊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는 일이 있고, 그렇게 되질 않는 사람이 있다. 완전히 잊는다고 할 때 그 완전함이란 영원한 불가능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히 불가능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p, 211 작가의 말 中

가끔 작품보다 그 작품의 주인인 작가님의 말에 더 큰 공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이번 경우.

사랑은 영원할 수 없고 실연은 필연적이라니, 이 말에 짜증이 솟구쳐 반박하려던 차에 ‘누구든 목숨을 걸듯 사랑할 수 있고, 누구든 원하지 않는데도 헤어질 수 있으며, 누구든 살면서 한두번 쯤 진짜 죽고 싶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라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작가님을 보며 ‘그래, 그렇지. 어쩜 이렇게 내 맘을 잘 알지.’ 하며 공감하고 있는 이 변화무쌍한 감정을 어찌할까요.

 미안해요 작가님, 난 사실 작가님이 40대 아저씨인 줄 알았어요. 어쩌다 인터뷰한 글을 보게 되었는데 어여쁘신 여자분이신 걸 보고 얼마나 뜨끔 하던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이별, 실연에 대해 굳이 덤덤해지려고 애써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서 사랑을 발견하게 되거나 특정 시기와 실연하는 것 뿐이니 그 자체를 치열하게 겪길 바란다는 작가님의 말씀,

치열하게 해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실연까지 치열하게 겪어야 하나 또 짜증을 낼 뻔 했어요. 아직 제가 어린 탓이겠지요.

 방금 막 실연을 경험 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게된다면 그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왈칵 눈물을 쏟아버릴까 겁이나요. 그만큼 피하려고 해도 ‘실연’을 온전히 느껴버리게 되는, 그런 책이에요.

 

 

<나는 아이팟이다 中>

누군가의 속마음을 알려면 자기가 먼저 고백해야 하는 법이다. 언니는 자신의 아이팟은 이미 용량이 꽉 찼다고 했다. 무언가를 넣으려면 무언가를 지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하는 게 요즘은 어렵다고 했다. 그때 나의 아이팟은 아직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육십 기가와 백육십 기가의 차이일 수도 있고, 삼 년 된 아이팟과 일 년 된 아이팟의 차이일 수도 있고, 언니와 나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 -p, 11

셔플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우연이다. 하지만 그 우연은 내가 선택한 선택지 안에서의 우연이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다르다. 내 아이팟에 없는 음악을 아이팟은 나에게 들려줄 수 없다. 우리는 선택하기도 하고 선택하지 않기도 한다. -p, 20

언니는 메러디스의 내레이션을 나에게 외우게 하곤 했다. 나는 언니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은 말한 적 있나요? 사랑한다고, 너 없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네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한 적 있나요?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세요. 하지만 가끔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인생이란 것을.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p, 29

<칼처럼 꽃처럼 中>

결과적으로 그가 했던 모든 말은 거짓이 되고 말았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도, 함께 있기 위해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말도,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깝지 않다는 말도, 모두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심한 거짓말을, 그것도 제일 많이 한 사람이었다. -p, 73

나를 떠난 그처럼 케이도 어느 날 문득 내게서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과 생각하지 못한 것은 다르니까. 상상한 일이 일어나는 건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p, 73

우리가 만나지 못한 그 몇 해 동안 케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을 해서 일하다가 소설가가 되었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어떤 여자와 가슴 아프게 헤어졌다. 이후 케이는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했고,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케이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쉽게 마음을 주고 마음을 거두어야 하는 순간에도 마음을 멈출 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케이는 그 고통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을 타입이다. 그런 케이가 사는 내내 상처를 입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나는 케이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건 케이가 가진 사랑의 방식이고 그의 인생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도 그럴 수 없는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p, 74

만나본 적도 없는 케이의 여자를 저주하는 날이 있다. 그 여자 때문에 케이는 지독한 불면증에 걸렸고 잠만 자면 악몽을 꾸었으며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녀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 케이가 글을 쓰는 한 그녀와 케이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하고는 그때 헤어지고 끝이야?”

“그때라니?”

나조차도 내가 묻는 그때를 알 수 없었다. 케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 있어? 그 여자.”

“여기 있어.”

“……”

“아직도.”

케이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p, 76

누군가를 전부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제의 진실도 오늘은 거짓이 될 수 있고, 오늘의 거짓이 내일은 진실이 될 수 있다. -p, 82

우리는 병에 걸렸다. 번번이 실패하면서 거듭해서 사랑에 빠지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면서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으며, 불가능하다고 이해하면서 여전히 기다린다. 우리는 실망할 뿐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갇혀서 눈물 흘리고 그리워하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p, 88

한 사람을 잃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그보다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고, 또 잃어가고 있었다. 이 여행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아침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p, 92

<소설 小說 小雪 中>

여자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책을 읽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창가 자리 쪽에 앉아 있었다. 당황해서 짜증을 내거나 체념해서 늘어진 사람들과는 다르게 남자는 차분해 보였다. 남자는 책을 읽었고, 여자는 남자를 읽었다. -p,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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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크 트웨인의 말이 적힌 카드가 눈에 띄었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떠나간 애인이 “내가 잘못했어”하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드디어 한반도가 통일되었다는 저녁 뉴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심히 길을 가다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눈앞엥서 110층짜리 고층 건물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암’은 남의 이야기라는 듯,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p, 59

 

 

 

문득,

'오늘'이라는 귀중한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라는 총평이 담긴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은지 딱 일주일이 된 오늘까지.

전 매일매일 느지막히 일어났고 느지막히 잠들었으며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으며

책 읽는 일에조차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네요.

이 책의 저자이신 故 장영희 교수님은 목발이 없으면 걷기 힘드실 정도로 몸이 불편하신 분이셨고,

그렇게 끔찍하다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하루하루를 귀중하게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계시던 분이셨습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 말에 콧방귀를 뀌곤 하던 저였는데 최근에 이 책과 더불어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자료를 보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낭만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가, 우리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p, 20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말했단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It 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than not to have loved at all)” 라고.

이렇게 사랑은 버리고 버림받고 만나고 헤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인가 보다. 때로는 사랑에 상처받고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어림도 없는 일, 어느덧 다시 그 흐름에 휩쓸린다. -p, 46

‘내일’과 같이 짧은 시간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면 헤어지는 마음이 덜 아쉽겠지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겁 속에서 하루는, 1년은, 아니 한 사람의 생애는 너무나 짧은데, 그럼에도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내일 봐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인지요. -p, 51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p, 52

마크 트웨인의 말이 적힌 카드가 눈에 띄었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떠나간 애인이 “내가 잘못했어”하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드디어 한반도가 통일되었다는 저녁 뉴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심히 길을 가다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눈앞엥서 110층짜리 고층 건물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암’은 남의 이야기라는 듯,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p, 59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p, 61

미국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입은 남자에게는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여자에게는 마음이 나오는 문이다’라고 했다. -p, 93

나는 가만히 누워 하염없이 천장 벽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보다 졸거나 창밖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시간을 낭비해도 별로 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죄의식은커녕 제발 그런 시간이 오기를 고대한다. -p, 107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p, 115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에도 시시한 잡동사니가 가득 들었을 수 있고 비닐봉지에도 금덩어리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해봤자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궤변 말라고 욕이나 먹겠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p, 119

내가 살아 보니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을 잘게 조각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p, 120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p, 121

괜찮아―난 지금도 이 말을 들으면 괜히 가슴이 찡해진다. 2002년 월드컵 4강에서 독일에게 졌을 때 관중들은 선수들을 향해 외쳤다.

“괜찮아! 괜찮아!”

혼자 남아 문제를 풀다가 결국 골든벨을 울리지 못해도 친구들이 얼싸안고 말해 준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복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p, 132

뼈만 추리면 산다―성품이 온화한 어머니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말씀이다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지만 얼핏 그것이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p, 141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 B. 화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은 설득력이 없고,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의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p, 156

창가의 나무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사는 순명을 가르친다. 봄에는 소생의 기쁨을, 여름에는 성장의 보람과 생명력을, 가을에는 희생과 성숙을 그리고 겨울에는 인내와 기다림을 가르친다. -p, 161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말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어떤 이름으로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을.”

맞다. 향기 없는 이름이 아니라 향기 없는 사람이 문제다. -p, 187

어떤 여자가 중병에 걸려 한동안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선을 방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위로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느님 앞에 서있다고 확신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만 들렸다.

“너는 누구냐?”

“저는 쿠퍼 부인입니다. 시장의 안사람이지요.”

“네 남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목소리가 다시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제니와 피터의 어미입니다.”

“네가 누구의 어미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선생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너의 직업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목소리와 여자는 묻고 대답하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여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목소리의 주인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다시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네 종교가 무언지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매일 교회에 다녔고 남편을 잘 내조했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네가 누구인지 물었다.”

결국 여자는 시험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다시 이 세상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병이 나은 다음 그녀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p, 194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나는 이 모든 질문에 선뜻 대답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삶에 만족하는가? 그것조차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는 이제껏 나만 보고 살았는데, 열심히 나를 지키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나만을 보살피며 살았는데,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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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들을 너무 모른다 (예담Friend) - 두려움과 불안을 자신감과 행복으로 바꿔주는 아들 교육법
창랑.위안샤오메이 지음, 박주은 옮김 / 예담Friend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긍정적인 암시들이 모여 언젠가는 아들의 인생에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무리 산만하고 기대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 아들의 다른 이름은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있다. -p, 234






아직 엄마의 마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딸인데, 어쩌면 좀 이르게도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기회를 먼저 가지게 되었네요. 엄마와 아들이 얼마나 부딪히는지는 아주 가까이에서. 저희 집에 있는 제 남동생과 엄마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고등학생인 동생이 엄마한테 대들때면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되면서도

그걸 못받아주는 엄마도 이해가 안될때가 많았거든요.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다보니 그렇게 느낀거겠지만 나중에 제가 남자아이를 둔 엄마가 되고나면 저 또한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겠지요...?


전 아들보다 이성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더 많이 찾을 나이이지만,

아들도 남자이기에. 저는 이성에 대해 배운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접했어요.


실제로 이 책의 작가는

'여성의 세계에서 성장한 엄마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아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소통하여 마침내 남성의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남자로 키워낼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했다고 해요.








목차는 이렇게 되어있어요. 목차를 보면서 공감가는 부분을 골라 읽어도 좋아요.

전 개인적으로

일단 화부터 내는 게 남자아이의 방식이다

거친 승부욕을 어쩌면 좋을까?

남자아이는 왜 게임에 빠질까?

건성건성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아이

가지고 싶은 욕구를 제어할 수 없는 아이

엄마가 시키고 싶은 것과 아들이 하고 싶은 것

핑계만 찾는 습관 없애기

매너 있는 남자로 크길 바란다면

아들은 왜 돈을 휴지처럼 쓸까?

요 부분들을 찾아서 읽었어요. 







나중에 내 아들이 될 녀석은(?) 큰일났어요 이제, 내가 니 마음을 다 꿰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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