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BOOn 2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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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문화콘텐츠 전문잡지의 창간에 부쳐 예상되는 난관은 적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아픈 역사의 문제, 일본 정부의 우경화 등 최근의 한일관계가 경색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오랜 시간 경제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문화교류 또한 활발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우리의 이웃인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고 이웃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바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바야흐로 현재는 문화콘텐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여 전 세계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발신하고 있으며 특히 한류는 더 이상 아시아에 국한된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국경을 초월한 문화교류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혼종적인 문화의 장을 제시합니다. 이번에 출범하는 잡지 『BOON』은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일류’와 ‘한류’를 넘어서는 한일간 ‘환류’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양국 상호신뢰 구축의 발신자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BOON』은 공감하는 문화, 소통하는 문화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이해하여 신뢰를 구축하고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의 문화 창출에 기여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바입니다. - 창간사 中







관심 있게 보는 잡지라고는 패션 잡지 밖에 없었는데, 지금부터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하나의 잡지가 생겼어요. 바로 일본문화콘텐츠 전문 잡지인 『BOON』입니다.


다들 낯설게 느껴지시죠? 저도 알럽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잡지에 대해 알지 못했을 거예요. 『BOON』에 대해 소개를 해드리자면, 위에 제가 짤막하게 보여드린 창간사에서 이 잡지의 창간 취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한·일 간의 관계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요. 이런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이 잡지를 통해 서로의 문화에 공감하고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의 문화 창출에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창간이 되었네요.







‘BOON’ 이란

‘유쾌한’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文化’의 일본어 음독인 ‘분카’에서 ‘분(bun)’이라는 발음만 차용하여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BOON』은 ‘유쾌한 일본문화 읽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들이라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일본의 에쿠니 가오리 라는 걸 알고 계실텐데요. 제 블로그 이름도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에서 따왔답니다. 이렇게 저도 일본 작가 뿐만 아니라 일본 드라마,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영화까지 일본의 문화를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문화에 대해 따로 찾아보기란 쉽지 않고 이런 콘텐츠들을 통해서만 일본에 대해 알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이 잡지를 통해서 일본 문화 콘텐츠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네요.









1월에 창간된 잡지라 아직 2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3호, 4호 더 나아가 100호까지, 오래오래 쭉 이어져 누구나 들으면 딱 알 수 있는 그런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구독해보세요 :) 격월 1회 15일에 방행되고 한 권에 9,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만나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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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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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레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 줄리언 오빠가 어떤 상태였다고 생각해?”

“모르겠어.” 내가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로레타가 말했다. “단지 줄리언 오빠가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

“근데 무슨 죄로?”

“그게 문제다, 그렇지?”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줄리언 웰즈의 죄.” 그녀가 덧붙였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갑자기 그녀는 오랜 비행의 피로를, 더 나아가 아들이 죽은 뒤로 오래도록 무미건조했던 삶의 일부를 떨쳐내버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p, 216








아 - 이렇게 푹 빠져 정신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추리소설 정말 좋아요.


따뜻해진 날씨와 일찍 피어버린 벚꽃 덕에 안그래도 마음이 두둥실 떠있었는데, 얼마 전 읽은 달달한 에세이 <당신이 좋아진 날>로 그 마음이 가라앉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어요. 해야 할 일들은 손에 안잡히고 ‘이런 걸 보고 봄을 탄다고 하는거구나’ 하고 있는 와중에 표지부터 어두침침하니, 무거워보이는 분위기의 책 <줄리언 웰즈의 죄>를 골라 잡았네요.









스토리에 반하고, 흡입력에 반하고, 구성까지 반한 소설이었답니다. 이 작품에 대한 평을 보니 토머스 H. 쿡은 어마어마한 작가임에 분명한데, 부끄럽게도 전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장난 삼아 개구리를 죽이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 라는 이 한 문장이 소설을 야무지게 요약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소설은 작가인 줄리언 웰즈가 자살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잔인한 고문을 행하고, 아무 이유 없이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등 악한 짓을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소설을 쓰는, (소설이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평범하지 않은 작가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자살을 택한 것에 의심을 품은 그의 친구 필립과 줄리언의 여동생인 로레타가 그의 행적을 좇게 됩니다.


줄리언 웰즈가 썼던 작품들의 제목들이 각 챕터를 이루고 있는데, 이 작품 속에서 줄리언 웰즈는 이미 죽은 사람임에도 그가 계속 살아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했고, 마치 그의 소설을 제가 직접 다 읽은 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리스트의 서평에 따르면 ‘토머스 H. 쿡은 유혹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이 백 번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잔인하게 고문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서 그런지 얼마 전 읽었던 <양심을 보았다>라는 책이 자꾸 생각나기도 했어요. 언뜻 보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흡입력이 강력한 소설이니, 이런 추리소설에 푹 빠져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해드릴게요.





지금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루지 못한 야망, 특히 예술가의 이루지 못한 꿈이 남긴 재만큼 차가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달성한 야망이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알렉산더 대왕은 스물세 살 때 더 이상 정복할 세계가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어떤 면으로든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좌절한 알렉산더 대왕 같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며, 경제 형편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내 경우에는 자식이 없다는 것과 홀아비가 된 것이 최대의 불만이었는데, 이젠 하나뿐인 진정한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추가되었다. -p, 15, 16


세상에는 되돌아 건너갈 수 없는 다리들이 있다. 그런 다리를 만나면 자신이 선택한 강기슭에 최대한 적응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p, 26


나는 아버지의 의자 옆에 있는 작은 나무 탁자 위에 보기 흉한 주황색 혹처럼 옹기종기 모인 약통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인간은 그냥 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왜소해지고 불편해지면서 늙는 거구나 싶었고, 앞으로 개선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늙는 것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맞이할 그 어떤 날도 지난날보다 더 밝은 태양이 떠오르진 않을 것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이런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p, 36


그는 《조용한 미국인》에 나오는 에이든 파일처럼, 특권을 누리는 미국인의 질서정연한 삶을 넘어서는 다른 것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청년이었다. 줄리언 웰즈, 세상의 정복자, 수많은 재능에 의해 보호를 받고 위대한 인간이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 천하무적 그의 조국처럼. -p, 46


나는 내 방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눕기 전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7층 밑에 있는 그 카페에 줄리언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내가 떠날 때와 똑같은 자세로 여전히 산마르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보더라도 뭔가 괴로운 게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줄리언에게로 내려갔어야 했다. 인생에 해피엔딩만 있다면, 친구라면 마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창문에서 내려다보다가 어스름한 불빛 속에 앉아있는 자신의 친구를 발견했다면, 그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침대를 바라보며 당장 그 안으로 들어가 눕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베개와 시트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피로감에 단잠과 꿈을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가 괴로워하는 친구를 마주 보고 앉아 “얘기 좀 해봐.”라고 말했을 것이다. 젊고 경험도 별로 없지만 때로는 그런 몸짓만으로도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삶이란 게 인간에게 우호적인 얼굴을 보여주도록 설계된 거라면, 이 친구는 이런 것들을 알고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p, 129, 130


“줄리언은 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의 죄수들이 감방 벽에 다른 어떤 단어보다 더 많이 써놓은 단어가 있다고 했네.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단어, 어머니나 아버지, 하느님 같은 단어가 아니라고 했지.” 에두아르도는 또 내 오랜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심각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쳄’이라는 단어였네.”

“자쳄이 무슨 뜻이죠?” 내가 물었다.

“‘왜’라는 뜻이지.” 에두아르도가 대답했다. 당혹스럽고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 말이 줄리언의 마음에도 쓰여져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배신이 적어놓은 단어라는 생각도 들고.” -p, 151


내가 무솔리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백마를 타고 뽐내며 돌아다니다니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놀라울 정도로 유치하다고 말했을 때였다. 줄리언은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우울해진 것 같았고,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우스운 존재가 아니었어.” 그러고는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젓더니 덧붙여 말했다. “힘을 가진 자들이 어린애같이 행동해서는 안 되지.” -p, 191, 192


“한 민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겪어보지 않으면 그 민족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가 없는 걸세.” 그가 말했다. -p, 196


로레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 줄리언 오빠가 어떤 상태였다고 생각해?”

“모르겠어.” 내가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로레타가 말했다. “단지 줄리언 오빠가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

“근데 무슨 죄로?”

“그게 문제다, 그렇지?”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줄리언 웰즈의 죄.” 그녀가 덧붙였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갑자기 그녀는 오랜 비행의 피로를, 더 나아가 아들이 죽은 뒤로 오래도록 무미건조했던 삶의 일부를 떨쳐내버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p, 216


모든 문학작품은 인류의 언어가 매우 다양하다는, 다른 식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살짝 피해간다. 허구 속 등장인물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맞닥뜨리는 모든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기적을 행한다. 런던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도중 어느 도시의 기차역에 내려도 현지인들이 영어로 말한다. 허구의 세상에서는 바벨탑은 폐허가 되었고, 우리의 주인공이 아프리카 오지 주민이나 배두인 상인을 처음 만날 때에도 모든 해독불가능성은 홀연히 사라지고 만나자마자 삶과 죽음과 영원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현실에서는 가장 가까운 술집 하나 찾는데도 고생깨나 할 텐데 말이다. -p, 217


“언젠가 줄리언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요.” 내가 대답했다. “실은 소로의 말이죠. 아이들은 장난 삼아 개구리를 죽이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는.” -p,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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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진 날
송정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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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만다가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나를 더 사랑해.”


이 대사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타인도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밥을 먹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모진 게 아니라 목숨이 모진 것이다.


사랑의 또 다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인기의 원석을 가지고 있기에 사랑은 다시 온다. 사랑은 눈이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내릴 땐 아름답지만 녹을 땐 질척거리고 추하다. 사랑으로 인한 슬픔은 다음 사랑으로 치유된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싱싱하다.


빈티지 와인처럼 시간과 함께 연륜이 생기면 상처 가득한 사랑도 추억으로 회상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눈을 치우면 또 눈이 내리듯이, 치워도 치워도 눈은 또 내리듯이 그렇게 사랑은 온다. 우리는 눈을 치울 때 힘들어하다가도 다음 눈이 내릴 땐 환호성을 지른다. “함박눈은 무죄”라고 고은 시인이 말했다. 사랑도 무죄다. -p, 128, 129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러브스토리가 존재할까요. 영화, 소설, 드라마를 통해 제가 알고 있는 러브스토리만 하더라도 오백여개는 넘는 것 같은데 이 중엔 부러울 정도로 달달한 이야기도 있고, 눈물이 쏟아질 만큼 슬픈 이야기도 있고,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날만큼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어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어낸 이야기라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러브스토리들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숙영의 러브FM]이라는 라디오의 인기 코너 ‘내 안의 그대’를 통해 소개된 사연들이라고 합니다.









친구들이랑 모이면 서로의 연애담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저는 다른 사람들의 연애담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물론 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무지 좋아하지요. 송정연 작가님도 저와 비슷하신가봐요. 이 책엔 많은 사람들의 러브스토리 뿐만 아니라 그 러브스토리마다 작가님이 ‘리플 에세이’를 달아놓으셨거든요. 전 러브스토리보다 이 ‘리플 에세이’를 읽는 재미가 더 쏠쏠했답니다.


(여담이지만, 지금 드라마 황금무지개에서도 절절한 러브스토리가 진행 중이네요. 마음 아파라. 오늘 마지막 회라는데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요)


저는 앞으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행복한 러브스토리만 써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슴 속에 영원한 ‘슈퍼맨’으로 남아 있는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도 영화보다 실제 사랑으로 더욱 감동을 주었다. 리브는 할리우드 배우이자 가수였던 데이나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인 로빈 윌리엄스에게 데이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 사랑에 빠졌어. 참 착한 여자야.”

그러나 1995년 리브는 승마 대회에 참가했다가 말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고 전신이 마비돼 장애인이 되었다. 리브는 절망에 빠져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데이나는 그를 안고 이렇게 말했다.

“리브, 당신이 할 수 없는 건 두 가지뿐이에요. 당신 자신의 눈물을 닦을 수 없는 것, 그리고 내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것. 하지만 당신 눈물은 내가 닦아주면 되고 난 이제 울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 말을 듣고 리브는 힘을 냈다. 사회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온몸과 머리를 휠체어에 묶은 채 모니터와 마이크로 연기를 지시하며 다시 영화를 연출했다. 리브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기적이란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은 날마다 기쁨이고 기적입니다.” -p, 49, 50


사랑은 기다림이다. 서로 온도와 속도가 다르다고 조바심 낼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자. 그 사랑이 걸어오고 있을지라도 어서 달려오라고, 어서 뛰라고 재촉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해 미소를 보내며 기다려주는 것, 인내를 가져야 꽃피우는 것,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p, 65


남녀가 만날 때 서로 뭔가 특별한 느낌을 나누는 순간이 있다. 연인이 되기 전의 느낌. 그 느낌이 확 다가올 때 급하게 들이대면 상대방은 뒤로 물러서게 된다. 우선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화제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 약간의 기분 좋은 농담이나 장난을 쳐도 좋다. 물론 아직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모르는데 내 느낌에만 충실한 나머지 그 사람 놓치고 싶지 않다고 너무 들이대지는 말기를, 지나치게 들이대지 말라는 것이지 영원히 뒤로 미루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다 사람을,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을 미루다’라는 말은 ‘사랑을 놓치다’라는 말과 동의어다. -p, 80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만다가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나를 더 사랑해.”


이 대사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타인도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밥을 먹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모진 게 아니라 목숨이 모진 것이다.


사랑의 또 다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인기의 원석을 가지고 있기에 사랑은 다시 온다. 사랑은 눈이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내릴 땐 아름답지만 녹을 땐 질척거리고 추하다. 사랑으로 인한 슬픔은 다음 사랑으로 치유된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싱싱하다.


빈티지 와인처럼 시간과 함께 연륜이 생기면 상처 가득한 사랑도 추억으로 회상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눈을 치우면 또 눈이 내리듯이, 치워도 치워도 눈은 또 내리듯이 그렇게 사랑은 온다. 우리는 눈을 치울 때 힘들어하다가도 다음 눈이 내릴 땐 환호성을 지른다. “함박눈은 무죄”라고 고은 시인이 말했다. 사랑도 무죄다. -p, 128, 129


배고픔이 해결되어도 영혼의 목마름이 느껴진다면 애가 탈 것이고, 장미가 있어도 빵이 없다면 허망할 것이다. 그래서 결혼할 상대의 조건에 집착하는 것도 한편 이해는 간다. 행복한 결혼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나는 우리 스스로 꼭 점검해 봐야 할 마음의 태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 사람이 20년 후에도 도란도란 나와 함께 대화하며 살고 있을지,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줄지 한번 상상해 보자. 현재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래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의 토대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지구, 여자는 달이다. 서로 한쪽 면만 보여주고 있기에 그저 보이는 면만 믿고 다른 면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면이 있기에 그 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현재만 볼 게 아니라 미래도 봐야 하고, 상대방의 저금통만 보지 말고 ‘정신통’도 봐야 한다. 어부는 바다를 알아야 하기에 파도의 마음이 되어봐야 하고, 농부는 땅을 알아야 하기에 흙의 마음이 되어봐야 하고, 부자가 되려면 돈의 마음이 되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주인공이 되려면 남자는 여자의 마음이, 여자는 남자의 마음이 되어봐야 한다. -p, 134, 135


독일 시인 하이네가 쓴 「그대가 보내 주신 편지」에는 “나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그 한 줄에 수많은 사연이 들어 있다. 뜨겁게 사랑하다가 어느 순간 돌아서게 되는 연인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결국은 헤어 나오게 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처음 만날 때는 세상에서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 서로 나누는 달콤한 말들. 주변 사람들에게 서로를 공개하며 사랑을 과시한다. 몇 년 후에는 서로의 짝이 되어 같은 우편함 속에서 너의 이름, 나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을 꺼내들고 한 공간에 들어서는 상상! 옷장 속에는 너의 옷, 나의 옷이 함께 있는 상상! 너와 내가 있기에 일상이 따뜻하고 주말에도 외롭지 않고, 나의 짝과 두 배로 행복한 일상을 나누는 달콤한 상상의 설렘 또한 평생 갈 것이라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나 서로 등을 돌리는 순간이 오면 완벽해 보이던 그 사람의 외모는 가증스럽게 변하고, 충만해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은 무개념으로 느껴진다. 심하면 뇌에 보톡스를 맞았나 싶게 무뇌아로 보이기도 하고, 내 심장을 떨리게 하던 미소가 혐오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별 후에 성숙해지는 보상이 찾아온다. 성숙이라는 두 글자. 나는 성숙이라는 말이 참 좋다.


성숙해진 뒤에는 여름 바다보다 가을 바다와 겨울 바다의 진가를 알게 된다. 바다는 버려진 뒤에 더욱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다의 본색은 그럴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헤어진 다음 울고 회상하고 반성하고 미워하다가 겸허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헤어진 다음에 영혼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너무 작가적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들이여,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이 진정한 인생의 진주라고 하지 않는가. 당신은 눈물이 아니라 진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 진주는 목걸이가 될 때까지 아픔들을 겪을 때마다 성숙해지기에 아름답다. -p, 140, 141


사랑은 느닷없이 온다. 인연도 느닷없이 온다. 지금 내 옆 자리가 비어 있을지라도 언제 좋은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줄지 모른다. 세상의 남자는 내 남자와 내 남자가 아닌 남자로 이뤄졌지만 내 남자가 아닌 남자에서 내 남자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시작되면서도 두렵고, 진행되면서도 두렵다.


사랑은 열광과 절망, 흥분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하지만 사랑할 때 도파민,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세로토닌이 만들어내는 짜릿한 중독이 있기 때문에 사랑해 본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숨쉬기 힘들어한다. -p,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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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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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더 눈이 먼 걸까? 그는 보지 못하고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왜 아직도 마음이 아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처음 바라보았던 그 눈길로 그가 나를 다시 바라보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p, 44







보통 책을 한 권 다 읽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물론 책이 제 마음에 쏙 들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지만) 그 책이 필요할 것 같은, 어울릴 것 같은 지인에게 책을 추천해주는 일입니다.


제가 접하게 된 파비오 볼로의 두 번째 책이네요. 첫 번째 책이었던 <내가 원하는 시간>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 늦어버린 후회에 대해 다룬 소설’이라고 제가 소개를 했었지요.


http://blog.naver.com/se_eun92/90190053422 파비오 볼로, <내가 원하는 시간>


<아침의 첫 햇살>이라는 이 소설은 ‘남, 여 사이에 한번쯤은 겪게 될 권태기라는 감정, 그런 상황 속에서 다시 찾아오는 사랑에 대해 다룬 소설’이라고 소개를 해야할까요. 당시 남자친구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친구한테 ‘이 책 너한테 딱이다. 니 이야기인 줄 알았어.’라며 추천해줬던 걸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지만 ‘연애는 참 어려운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화를 낼 때도 있고,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지요. 그러다가도 또 마냥 좋고.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가진 내가 잘못인건가 하고 자책하다보면,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과정을 겪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르면 이런 책이 있을까 싶다가도 막상 제가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보자면, 남자와 여자는 정말 다르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남자인 작가가 어찌나 여자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만약 작가를 모른 상태로 봤다면 분명 작가가 여자일거라 생각했을 거예요.







결혼생활에 지쳐있을 때. 남편은 성가신 존재로 보일 뿐이고, 자기 자신도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그 때에 썼던 일기를 보며, 그 일기에 대해 현재의 그녀가 또 다시 써내려가는 글을 보고 있자면 아팠던 만큼 성숙해진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어질 거예요.





가장 소중한 것과 당장 급한 것의 순서가 뒤바뀌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p, 12


사라진 꿈들보다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꿈꾸고 싶어 하지 않는 내 마음이다. 의식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천천히 식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의 꿈과 미래부터 텅 비워버렸고 그러고는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비우기 시작했다. 왜 미래부터냐고? 누구든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는 눈앞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p, 13


일기장에 파올로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때면 나는 언제나 죄책감을 느낀다. 모든 걸 지워버리고 싶은, 일기장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일기를 지우거나 찢을 수는 없다. 그건 내가 정해놓은 규칙 중의 하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글의 내용들이 나중에는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p, 42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더 눈이 먼 걸까? 그는 보지 못하고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왜 아직도 마음이 아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처음 바라보았던 그 눈길로 그가 나를 다시 바라보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p, 44


엊그제는 그가 내게 키스를 해준답시고 내 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그와의 키스는 더 이상 내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가 나를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사라져버렸다. 원인은 나도 모른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무엇에 자리를 양보하고 자취를 감춘 것인지 나도 모른다.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그가 바라보는 것도, 그러고는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는 것도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예쁘게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만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이 내게는 영토 침입일 뿐이다.


알고 있다. 내가 나쁜 거다.


최근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원하던 키스를 거절당했을 때보다 더 맘을 상하게 만드는 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버렸을 때 받는 키스다.


처음에는 항상 그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건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입을 꼭 다물고 싶을 뿐이다. 나는 긴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떤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걸까? 마치 내가 둘로 나뉜 듯한 느낌이다. 내 존재의 일부가 나를 바라보면서 내 인생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하나뿐이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일이 계속해서 더 빈번해지고, 더 강렬해지고 있다는 것.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이 모든 것에서, 내 인생에서, 나 스스로에게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지금의 나를 만든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버리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은 그냥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p, 73, 74


살다 보면 우리들이 품고 있던 부정적인 견해들이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긍정적인 확신으로 돌변하는 때가 있다. 오랫동안 나는 내 인생이 바뀌기만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기다렸던 사람은 내가 아니다. 오히려 내 인생이 내가 바뀌기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p, 83


“한 번만이라도 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거야. 네가 누구인지는 잠시 잊어버리고,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보라고…….” -p, 97


“다른 사람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을 존중해서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호텔 방 실내장식이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그걸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똑같은 이유 때문 아니겠어요? 거기서 사는 게 아니거든. 며칠 있으면 집으로 돌아올 테니까.” -p, 140


여자라면 누구든지 자신만의 은밀하고 소중한 세계를 향해 손을 잡고 인도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단 한 번의 포옹만으로도 생애 전체를 되돌려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p, 154


관계를 쌓아간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많이 듣는 말인가. 하지만 인간관계란 쌓아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살아서 숨을 쉬어야하는 것이 인간관계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돈독히 변하는 것이 인간관계다. 나도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시들어버리고 만다. 피해야 하는 건 약속이다. 스스로의 미래를 두고 내기를 걸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p, 182


“특별할 건 하나도 없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는 게 나한테는 그저 신기할 뿐이야.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순식간이거든. 사랑하는 사람 생각에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 같은 거 상상이 가? 모든 게 가볍게 느껴지는 느낌 말이야. 예를 들어, 지금이 오후 4시고 내가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어도 그게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지금 내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옷도 불편하고 많이 피곤하다고 해보자고. 문제가 될 게 없어. 사랑하는 사람 생각 하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웃을 수 있거든. 고민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백미러로 얼굴 한번 보면서 내가 그녀에게 어울릴 만큼 잘생겼는지, 아닌지 생각해보는 거, 그게 다라고. 문자 같은 것도 그래. 바로 대답 안 해도 그건 그 사람이 회의 중이거나 아니면 듣지 못해서지, 대답이 하기 싫어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 거야. 금요일이라고 해볼까? 조금 있으면 그녀를 만나는 거야. 이제 이틀 동안은 그녀가 전부 내 거라는 생각에 꼭 행운아가 된 기분이겠지. 아침 식사 할 때도, 점심 식사 후에도, 침대 위에서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전부 내 거니까. 화요일 저녁에 날 위해서 요리를 하겠다? 좋아! 집에서 9시에 보자고 했으니까 8시 45분이면 나는 벌써 내 여자의 집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뛰어 오르고 있을 거야. 기쁜 거야. 사랑에 빠진 거라고. 보자마자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겠다는 일념하에 정신없이 달려가겠지. 집 안은 벌써 근사한 향기로 가득 차있고,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를 생각하며 뿌듯해할 거야.” -p, 235, 236


하지만 그건 우리의 상황이 영원하리라고 믿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그에게 가는 이유는, 지금 내가 잠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내가 오늘의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도대체 몇 명의 남자를 거쳐야만 했던 것일까 자문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질문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정작 내가 던졌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의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과연 몇 개의 가면을 쓰고 버려야만 했던 갈까?’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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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보았다 - 분노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이얼 프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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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날마다 일상에서, 비록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양심에 걸리는 일들을 제도나 환경 혹은 직장 상사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기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는 선택을 회피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 몸에 배어버린 수동성과 순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에 대한 성찰을 할까? -p, 348, 349








저녁에 페이스북을 쭉 둘러보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데 그 비를 맞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며, 그냥 보고 지나쳐 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서 그 때 어떤 행동을 해야했을까, 라는 글을 후배가 남긴 걸 보았어요.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누군가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는 걸 보았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만약 저라면 ‘우산을 씌워줘야 할텐데..’ 라는 생각은 하겠지만, 생각만 할 뿐 정말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우산을 씌워줄 용기를 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사랑과 동정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본성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우린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을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행동을 하곤 하지요. 이 책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거나 특별하진 않지만, 이런 사랑과 동정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간직한 채 자신의 신념대로 양심을 지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차대전 직전, 스위스 정부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으로 입국하는 유대인들을 되돌려 보내라는 법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경찰서장인 파울 그뤼닝거는 이 법을 어기고 많은 유대인들을 도와주게 돼지요.

 

1991년,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세르비아인이었던 알렉산데르 제브티치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많은 크로아티아인들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 중 부당한 명령에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 출신인 아브네르 위시니체르와 그의 대원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금융회사의 비리를 파헤쳐 세상에 고발했던 레일라 위들러까지.

 

 이렇게 멋진 네 명에 대한 일화를 통해 저는 양심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사나 최근 뉴스를 통해서 너무나도 잔인한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양심을 지키고 사랑, 동정하는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사소한 일에도 양심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이 생생한 사건들에 대해 그저 연구한 결과를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저자가 이와 관련된 사람들과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낀 내용을 적어 내려간 책이어서인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습니다.

 




“만일 내가 명령을 거역해야 하는 어떤 상황에 처한다면, 신을 거역하면서 인간과 함께 있기보다는 인간을 거역하면서 신과 함께 있겠다.” -p, 42


“전기 충격기 버튼을 누르는 주체와 그 행위의 결과 사이에 놓여 있는 어떤 힘 혹은 사건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받는 긴장을 줄여주며, 감독관에 대한 저항 의지를 줄여준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와 우리가 기여할 수도 있는 최종적인 파괴적 행동 사이에 종종 어떤 다른 것들이 끼어든다.”


바로 여기에 현대 관료제도의 본질이 놓여 있다고 바우만은 경고했다. 범죄적인 정책을 만든 다음 이것에 대한 집행 책임을 하위 관료에게 넘겼고, 따라서 이 정책의 결과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한편 하위 관료는 자기는 그저 상관이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되뇌며 자기에게 주어진 특화된 임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되면 책임의 소재는 불분명해진다. 결국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양심에 걸리는 불미스러운 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는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잔다. -p, 52, 53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다른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확실히 있다. 설령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이,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 이런 종류의 감정이,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을 우리가 두 눈으로 바라보거나 어떤 생생한 방식으로 느낄 수 밖에 없을 때 느끼는 동정과 연민이다.” -p, 131


“유고슬라비아 군대는 유고슬라비아를 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처럼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곧 유고슬라비아니까요. 그러나 정치는, 정치가들은 개새낍니다. 투쥬만과 밀로셰비치는 만나서 함께 먹고 마셔대지요.”

잠시 입을 다물었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쟁은…….”

말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맥주를 몇 차례 더 마신 뒤에 남자의 말은 이어졌다.

“전쟁은 결코 좋은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아초는 다르코 이바노프와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한 곳에서 살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쫓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아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깨끗한 양심이었다. 그가 행복해할 권리, 그의 양심이 그에게 허락한 그 권리를 얻지 못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 154


“정부가 어떤 사람을 부당하게 감금한다면, 정당한 사람이 가 있을 자리는 감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예제도를 용인하고, 멕시코와 정당하지 못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도덕적인 의무라고 소로는 주장했다. -p, 169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큰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뿌리 뽑는 데 자신을 던져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 그것 말고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대상이나 문젯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손을 떼는 일은 적어도 그 사람의 의무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으로 그것을 더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p, 170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기계 장치들이 성공적으로 잘 돌아가는 일에 대해 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유일한 의무는 언제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p, 171


소로와 같은 양심적인 명령 거부자를 향한 ‘가장 오래된 비난’은 ‘무책임하다는 비난’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썼다. 그녀가 보기에 이런 비난은 종종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양심은 기본적으로 악행이 자행되는 세상이나 그 악행이 초래할 결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은 제퍼슨의 말처럼 ‘나는 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 양심은 오로지 개인의 자아 및 정체성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p, 189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지 않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말한다. 그들은 행동을 취하는 데 있어서 어떤 특정한 원칙을 이야기하지 않고,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준으로 경계선을 긋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싫다면, 당신이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p, 240


그러나 날마다 일상에서, 비록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양심에 걸리는 일들을 제도나 환경 혹은 직장 상사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기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는 선택을 회피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 몸에 배어버린 수동성과 순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에 대한 성찰을 할까? -p, 348,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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