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보았다 - 분노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이얼 프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날마다 일상에서, 비록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양심에 걸리는 일들을 제도나 환경 혹은 직장 상사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기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는 선택을 회피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 몸에 배어버린 수동성과 순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에 대한 성찰을 할까? -p, 348, 349








저녁에 페이스북을 쭉 둘러보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데 그 비를 맞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며, 그냥 보고 지나쳐 왔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서 그 때 어떤 행동을 해야했을까, 라는 글을 후배가 남긴 걸 보았어요.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누군가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는 걸 보았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만약 저라면 ‘우산을 씌워줘야 할텐데..’ 라는 생각은 하겠지만, 생각만 할 뿐 정말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우산을 씌워줄 용기를 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사랑과 동정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본성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우린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을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행동을 하곤 하지요. 이 책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거나 특별하진 않지만, 이런 사랑과 동정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간직한 채 자신의 신념대로 양심을 지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차대전 직전, 스위스 정부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으로 입국하는 유대인들을 되돌려 보내라는 법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경찰서장인 파울 그뤼닝거는 이 법을 어기고 많은 유대인들을 도와주게 돼지요.

 

1991년,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세르비아인이었던 알렉산데르 제브티치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많은 크로아티아인들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 중 부당한 명령에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 출신인 아브네르 위시니체르와 그의 대원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금융회사의 비리를 파헤쳐 세상에 고발했던 레일라 위들러까지.

 

 이렇게 멋진 네 명에 대한 일화를 통해 저는 양심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사나 최근 뉴스를 통해서 너무나도 잔인한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양심을 지키고 사랑, 동정하는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사소한 일에도 양심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이 생생한 사건들에 대해 그저 연구한 결과를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저자가 이와 관련된 사람들과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낀 내용을 적어 내려간 책이어서인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습니다.

 




“만일 내가 명령을 거역해야 하는 어떤 상황에 처한다면, 신을 거역하면서 인간과 함께 있기보다는 인간을 거역하면서 신과 함께 있겠다.” -p, 42


“전기 충격기 버튼을 누르는 주체와 그 행위의 결과 사이에 놓여 있는 어떤 힘 혹은 사건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받는 긴장을 줄여주며, 감독관에 대한 저항 의지를 줄여준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와 우리가 기여할 수도 있는 최종적인 파괴적 행동 사이에 종종 어떤 다른 것들이 끼어든다.”


바로 여기에 현대 관료제도의 본질이 놓여 있다고 바우만은 경고했다. 범죄적인 정책을 만든 다음 이것에 대한 집행 책임을 하위 관료에게 넘겼고, 따라서 이 정책의 결과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한편 하위 관료는 자기는 그저 상관이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되뇌며 자기에게 주어진 특화된 임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되면 책임의 소재는 불분명해진다. 결국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양심에 걸리는 불미스러운 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는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잔다. -p, 52, 53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다른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확실히 있다. 설령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이,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 이런 종류의 감정이,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을 우리가 두 눈으로 바라보거나 어떤 생생한 방식으로 느낄 수 밖에 없을 때 느끼는 동정과 연민이다.” -p, 131


“유고슬라비아 군대는 유고슬라비아를 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처럼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곧 유고슬라비아니까요. 그러나 정치는, 정치가들은 개새낍니다. 투쥬만과 밀로셰비치는 만나서 함께 먹고 마셔대지요.”

잠시 입을 다물었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쟁은…….”

말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맥주를 몇 차례 더 마신 뒤에 남자의 말은 이어졌다.

“전쟁은 결코 좋은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아초는 다르코 이바노프와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한 곳에서 살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쫓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아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깨끗한 양심이었다. 그가 행복해할 권리, 그의 양심이 그에게 허락한 그 권리를 얻지 못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 154


“정부가 어떤 사람을 부당하게 감금한다면, 정당한 사람이 가 있을 자리는 감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예제도를 용인하고, 멕시코와 정당하지 못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도덕적인 의무라고 소로는 주장했다. -p, 169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큰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뿌리 뽑는 데 자신을 던져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 그것 말고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대상이나 문젯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손을 떼는 일은 적어도 그 사람의 의무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으로 그것을 더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p, 170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기계 장치들이 성공적으로 잘 돌아가는 일에 대해 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유일한 의무는 언제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p, 171


소로와 같은 양심적인 명령 거부자를 향한 ‘가장 오래된 비난’은 ‘무책임하다는 비난’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썼다. 그녀가 보기에 이런 비난은 종종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양심은 기본적으로 악행이 자행되는 세상이나 그 악행이 초래할 결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은 제퍼슨의 말처럼 ‘나는 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 양심은 오로지 개인의 자아 및 정체성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p, 189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지 않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말한다. 그들은 행동을 취하는 데 있어서 어떤 특정한 원칙을 이야기하지 않고,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준으로 경계선을 긋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싫다면, 당신이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p, 240


그러나 날마다 일상에서, 비록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양심에 걸리는 일들을 제도나 환경 혹은 직장 상사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기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는 선택을 회피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 몸에 배어버린 수동성과 순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에 대한 성찰을 할까? -p, 348, 3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