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더 눈이 먼 걸까? 그는 보지 못하고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왜 아직도 마음이 아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처음 바라보았던 그 눈길로 그가 나를 다시 바라보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p, 44







보통 책을 한 권 다 읽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물론 책이 제 마음에 쏙 들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말이지만) 그 책이 필요할 것 같은, 어울릴 것 같은 지인에게 책을 추천해주는 일입니다.


제가 접하게 된 파비오 볼로의 두 번째 책이네요. 첫 번째 책이었던 <내가 원하는 시간>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 늦어버린 후회에 대해 다룬 소설’이라고 제가 소개를 했었지요.


http://blog.naver.com/se_eun92/90190053422 파비오 볼로, <내가 원하는 시간>


<아침의 첫 햇살>이라는 이 소설은 ‘남, 여 사이에 한번쯤은 겪게 될 권태기라는 감정, 그런 상황 속에서 다시 찾아오는 사랑에 대해 다룬 소설’이라고 소개를 해야할까요. 당시 남자친구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친구한테 ‘이 책 너한테 딱이다. 니 이야기인 줄 알았어.’라며 추천해줬던 걸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지만 ‘연애는 참 어려운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화를 낼 때도 있고,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지요. 그러다가도 또 마냥 좋고.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가진 내가 잘못인건가 하고 자책하다보면,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과정을 겪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르면 이런 책이 있을까 싶다가도 막상 제가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보자면, 남자와 여자는 정말 다르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남자인 작가가 어찌나 여자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 만약 작가를 모른 상태로 봤다면 분명 작가가 여자일거라 생각했을 거예요.







결혼생활에 지쳐있을 때. 남편은 성가신 존재로 보일 뿐이고, 자기 자신도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그 때에 썼던 일기를 보며, 그 일기에 대해 현재의 그녀가 또 다시 써내려가는 글을 보고 있자면 아팠던 만큼 성숙해진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어질 거예요.





가장 소중한 것과 당장 급한 것의 순서가 뒤바뀌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p, 12


사라진 꿈들보다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꿈꾸고 싶어 하지 않는 내 마음이다. 의식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천천히 식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의 꿈과 미래부터 텅 비워버렸고 그러고는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비우기 시작했다. 왜 미래부터냐고? 누구든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는 눈앞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p, 13


일기장에 파올로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때면 나는 언제나 죄책감을 느낀다. 모든 걸 지워버리고 싶은, 일기장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일기를 지우거나 찢을 수는 없다. 그건 내가 정해놓은 규칙 중의 하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글의 내용들이 나중에는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p, 42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더 눈이 먼 걸까? 그는 보지 못하고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왜 아직도 마음이 아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처음 바라보았던 그 눈길로 그가 나를 다시 바라보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p, 44


엊그제는 그가 내게 키스를 해준답시고 내 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그와의 키스는 더 이상 내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가 나를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사라져버렸다. 원인은 나도 모른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무엇에 자리를 양보하고 자취를 감춘 것인지 나도 모른다.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그가 바라보는 것도, 그러고는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는 것도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예쁘게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만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이 내게는 영토 침입일 뿐이다.


알고 있다. 내가 나쁜 거다.


최근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원하던 키스를 거절당했을 때보다 더 맘을 상하게 만드는 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버렸을 때 받는 키스다.


처음에는 항상 그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건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입을 꼭 다물고 싶을 뿐이다. 나는 긴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떤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걸까? 마치 내가 둘로 나뉜 듯한 느낌이다. 내 존재의 일부가 나를 바라보면서 내 인생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하나뿐이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일이 계속해서 더 빈번해지고, 더 강렬해지고 있다는 것.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이 모든 것에서, 내 인생에서, 나 스스로에게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지금의 나를 만든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버리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은 그냥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p, 73, 74


살다 보면 우리들이 품고 있던 부정적인 견해들이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긍정적인 확신으로 돌변하는 때가 있다. 오랫동안 나는 내 인생이 바뀌기만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기다렸던 사람은 내가 아니다. 오히려 내 인생이 내가 바뀌기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p, 83


“한 번만이라도 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거야. 네가 누구인지는 잠시 잊어버리고,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보라고…….” -p, 97


“다른 사람을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을 존중해서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호텔 방 실내장식이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그걸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똑같은 이유 때문 아니겠어요? 거기서 사는 게 아니거든. 며칠 있으면 집으로 돌아올 테니까.” -p, 140


여자라면 누구든지 자신만의 은밀하고 소중한 세계를 향해 손을 잡고 인도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단 한 번의 포옹만으로도 생애 전체를 되돌려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 -p, 154


관계를 쌓아간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많이 듣는 말인가. 하지만 인간관계란 쌓아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살아서 숨을 쉬어야하는 것이 인간관계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돈독히 변하는 것이 인간관계다. 나도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시들어버리고 만다. 피해야 하는 건 약속이다. 스스로의 미래를 두고 내기를 걸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p, 182


“특별할 건 하나도 없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다는 게 나한테는 그저 신기할 뿐이야.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순식간이거든. 사랑하는 사람 생각에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 같은 거 상상이 가? 모든 게 가볍게 느껴지는 느낌 말이야. 예를 들어, 지금이 오후 4시고 내가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어도 그게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지금 내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옷도 불편하고 많이 피곤하다고 해보자고. 문제가 될 게 없어. 사랑하는 사람 생각 하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웃을 수 있거든. 고민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백미러로 얼굴 한번 보면서 내가 그녀에게 어울릴 만큼 잘생겼는지, 아닌지 생각해보는 거, 그게 다라고. 문자 같은 것도 그래. 바로 대답 안 해도 그건 그 사람이 회의 중이거나 아니면 듣지 못해서지, 대답이 하기 싫어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 거야. 금요일이라고 해볼까? 조금 있으면 그녀를 만나는 거야. 이제 이틀 동안은 그녀가 전부 내 거라는 생각에 꼭 행운아가 된 기분이겠지. 아침 식사 할 때도, 점심 식사 후에도, 침대 위에서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전부 내 거니까. 화요일 저녁에 날 위해서 요리를 하겠다? 좋아! 집에서 9시에 보자고 했으니까 8시 45분이면 나는 벌써 내 여자의 집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뛰어 오르고 있을 거야. 기쁜 거야. 사랑에 빠진 거라고. 보자마자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겠다는 일념하에 정신없이 달려가겠지. 집 안은 벌써 근사한 향기로 가득 차있고,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를 생각하며 뿌듯해할 거야.” -p, 235, 236


하지만 그건 우리의 상황이 영원하리라고 믿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그에게 가는 이유는, 지금 내가 잠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내가 오늘의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도대체 몇 명의 남자를 거쳐야만 했던 것일까 자문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질문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정작 내가 던졌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의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과연 몇 개의 가면을 쓰고 버려야만 했던 갈까?’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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