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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분들이 《미 비포 유》를 읽고 찬사를 보내는 와중엔 관심이 가지않아 여러번 지나쳐왔었는데 이번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와 읽은 후로 참 멋진 책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에 소개해드리러 한걸음에 달려왔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하고, 성공적인 젊은 사업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윌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사고로 인해 윌은 사지마비환자가 되어 휠체어에서 떠나지 못하고, 배변활동마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죠. 여주인공인 루이자는 오랫동안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구인구직센터에 등록해 윌의 간병을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둘은 만나게 돼죠. 이런 걸 보면 인연이라는 건 참 신기해요.
루이자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멀리 나가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상태였답니다. 현실에 안주한 채, 도전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저와 굉장히 닮은 루이자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결국엔 윌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공부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동안 모른척 했던 꿈을 선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얼마 전, '힐링캠프'에서 양현석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 대신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는 걸 택하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윌처럼 건강을 잃은 사람이든, 나이가 많이 들어 예전처럼 움직이기 힘든 사람이든 하나같이 '건강'과 '젊음'을 부러워하곤 하죠.
'젊음'과 '건강'. 둘 다 가지고 있는 전, 무엇이 그리 두려워 지금 이 순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걸 꺼려했던건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고등학생 때 한창 공부하며 수능이 끝나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멋진 여대생이 되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어떤 어른으로 지내야할지 생각했던 것들을 적어두었던 일기장을 들춰보았답니다.
누군가는 《미 비포 유》를 읽으며 윌과 루이자의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글로만 보았을 뿐인데도 핸섬하고 멋진 윌의 모습에 반해 두근거렸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저처럼 루이자의 멋진 면모를 알아봐주고, 그로 인해 도전하는 여자로 변해가는 루이자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겠죠? (한편으론 윌처럼 부드럽게 채찍질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단 생각에 루이자가 부럽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소설의 매력일테지요.
정말 많은 이야기를 적고 싶었는데, 공개적인 공간인만큼 전부 다 쏟아내지 못하는 게 블로그의 단점이에요. 쏟아내지 못한 많은 이야기는 제 일기장에 개인적으로 적고, 《미 비포 유》를 읽으며 표시해두었던 구절들을 적어두고 마무리할게요. 특히 윌이 루이자에게 해주는 말들은 저에게 해주는 말 같아 한 마디 한 마디 마음 속에 깊이 새겨두었답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윌이 루이자에게 보낸 편지는 타이핑해서 간직하려 해요.)
많은 사람들이 사지마비환자인 윌이 해주는 말들에서 저처럼 꿈을 얻어갈 수 있었다면 좋겠어요.
"당신만큼 지독한 속물은 처음 봤어요, 클라크."
"뭐예요? 내가?"
"혼자서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정해놓고 온갖 경험들을 아예 막아놓고 있잖아요."
"하지만 진짜 아닌 걸요."
"어떻게 알아요? 아무것도 안 해보고, 아무 데도 안 가봤는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길이 없었는데?"
이 남자가 어떻게 나 같은 사람 기분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아예 이해도 해주지 않으려는 그가 서운하고 원망스러워서 삐치고 싶었다.
"해봐요. 마음을 열어요."
"싫어요."
"왜?"
"불편할 테니까. 왠지…… 왠지…… 사람들이 다 알 것 같단 말이에요."
"누가? 뭘 알아요?"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챌 거예요.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내 기분은 어떨 것 같소?"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클라크, 요즘 나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다 못 올 데를 온 것처럼 쳐다봐요."
음악이 시작되자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윌의 아버지는 복도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고 한 풀 꺾인 웃음소리가 아득히 먼 데서 들리는 것처럼 별채로 스며들어왔다. "장애인 출입문은 저쪽입니다." 경마장의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꼭 그가 별종의 인류인 것처럼. -p, 225~226
"저는 딱 한 번 호주로 가는 비행기 예약을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결국 가지 않았죠."
그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어요. 괜찮아요. 아마 언젠가 갈 날이 있겠죠."
"'아마'가 아니에요. 당신은 여기를 벗어나 멀리 떠나야 해요, 클라크. 남은 평생을 이 빌어먹을 식탁 매트나 파는 동네에 처박혀서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약속이요? 왜요?"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려고 애섰다. "어디 가세요?"
"그저…… 당신이 이 동네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는 말을 삼켰다. "당신은 지나치게 똑똑해. 지나치게 흥미진진하고." 그는 나를 보던 눈길을 돌렸다.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사는 거요.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 -p, 277
"늘 문신이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요." 내가 말했다.
윌 앞에서는 그냥 하는 소리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그는 의미 없는 수다나 흰소리를 몰랐다. 그는 당장 왜 문신을 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다.
"아……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다들 뭐라고 할까 싶어서."
"왜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요?"
"아빠는 문신이라면 질색을 하세요."
"다시 묻는데 대체 몇 살이라고 했어요?"
"패트릭도 질색해요."
"자기는 당신이 싫어하는 짓을 절대 안 하는 모양이지."
"폐소공포증이 도질지도 몰라요. 문신을 다 새기고 나서 마음이 달라지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레이저로 지우면 되죠, 안 그래요?"
나는 거울에 비친 그를 보았다. 눈빛이 아주 신이 나 있었다.
"그럼 한번 말해봐요." 그가 말했다. "어떤 문신 하고 싶은데요?"
내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몰라요. 뱀은 싫어요. 누구 이름도 싫어요."
"하트 모양에 '엄마'라는 깃발이 걸려 있는 걸 생각하진 않았는데."
"웃지 않는다고 약속해줄래요?"
"나 그런 약속 못 하는 거 알잖아요. 아, 이런, 설마 인도 산스크리트 속담이나 그런거 할 건 아니죠? 죽지 않을 만한 시련이라면 나를 강인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거?"
"아니에요. 꿀벌을 새기고 싶어요. 까망과 노랑의 작은 꿀벌. 난 꿀벌을 정말 좋아하니까."
그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디다 새기고 싶어요? 내가 물어봐도 되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어깨? 골반?"
"차 세워요." 그가 말했다.
"왜요, 괜찮아요?"
"그냥 차 세워요. 저기 자리 있다. 봐요, 왼쪽에."
나는 자동차를 도로 연석에 세우고 뒷자리의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어서 가요." 그가 말했다. "우리 오늘 할 일 아무것도 없잖아요."
"어딜 가요?"
"문신 새기는 가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왜 아니겠어요."
"안 될 건 뭔데요?"
"아까 술 뱉지 않고 다 삼켰죠?"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어요."
나는 돌아앉았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냥 막 가서 문신을 어떻게 해요. 이렇게 갑자기."
"안 될 건 뭔데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남자친구가 안 된다고 하니까. 스물일곱이나 됐는데도 착한 딸이니까. 너무 무서워서. 이러지 말아요, 클라크. 좀 삶을 살아봐요. 대체 발목 잡는 게 뭐가 있다고 이래요?" -p, 302~303
하지만 이걸로 당신은 자유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둘 다 고향이라고 부르는 그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좁은 마을과, 지금까지 당신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선택들로부터 해방될 자유 말입니다.
내가 이 돈을 주는 건 당신이 날 애틋하게 그리워하거나 빚진 기분으로 살거나, 아니면 이게 무슨 빌어먹을 기념품이라고 누끼길 바라서가 아니에요.
내가 이 돈을 주는 건 이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별로 남지 않았는데, 당신만은 날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알게 되어 당신이 고통스럽고 또 깊은 슬픔에 빠졌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이 지금보다 나한테 화를 덜 내게 되고 또 마음도 가라앉으면,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이로써 당신은 나를 만나지 않았던 때보다는 훨씬 더 좋은, 아주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요.
새로운 세상에서 당신은 약간 편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몰라요.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갑자기 튕겨져 나오면 늘 기분이 이상해지거든요. 하지만 갑자기 튕겨져 나오면 늘 기분이 이상해지거든요. 하지만 약간은 들뜨고 기뻐하길 바랍니다. 그때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돌아왔을 때 당신의 얼굴이 내게 모든 걸 말해주었어요. 당신 안에는 굶주림이 있어요, 클라크. 두려움을 모르는 갈망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당신도 그저 묻어두고 살았을 뿐이지요.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고래들하고 수영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당신이 그런다면 내심 좋아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대담무쌍하게 살아가라는 말이에요. 스스로를 밀어붙이면서. 안주하지 말아요. 그 줄무늬 타이츠를 당당하게 입고 다녀요. 그리고 어떤 말도 안 되는 남자한테 굳이 정착하고 싶다면, 꼭 이 돈 일부를 어딘가에 다람쥐처럼 챙겨둬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사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 가능성들을 당신에게 준 사람이 나라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일말의 고통을 던 느낌이에요. -p, 533~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