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가정마다 남이 보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그런데도 하루 세 끼 밥 먹고 청소하고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비정상적인 상황에도 익숙해지고, 타인은 알 수 없는 그 가정만의 약속이 있어서, 모두들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래도 함께 살아가곤 하지」
흔해빠진 내용의 얘기라도, 가정을 잃어버린 준코 아줌마가 얘기하면 실감이 난다.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어도 균형만 잘 잡혀 있으면 제대로 돌아간다는 걸까요?」
나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준코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랑」
「사랑?」
너무도 뜻밖인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준코 아줌마는 웃었다.
「나도 이런 얘기는 부끄러워서 하고 싶지 않지만, 가정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단다. 사랑이란 말이지, 형태나 말이 아니고 어떤 하나의 상태야. 어떻게 힘을 발산하느냐지. 바라는 힘이 아니고, 온 가족이 서로에게 사랑을 주는 쪽으로 힘을 발산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집안 분위기가 굶주린 늑대 소굴처럼 되어버리지. 우리 집만 해도, 실제로는 내가 망가뜨린 것이나 다름 없지만, 그건 계기에 불과하고, 또 내가 혼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일이야, 집안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바라기만 했거든. 그런데도 계속 존속시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막바지에서 뭐가 필요하겠어. 그야 물론 타협이라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안 그랬어. 사랑……이랄까, 아름다운 힘을 발하는 추억이랄까, 그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좋았던 빈도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에 대한 욕망이 남아 있을 때는 그나마 함께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단다」-p, 106~107
「한 번 만났더니 또 만나고 싶고, 한 번 섹스를 했더니 또 하고 싶어져서 두 번, 세 번, 네 번으로 늘어가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씩밖에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p, 122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느껴지지 않을 하나하나의 감각이 활성화된다. 그 진폭이 고스란히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다. 인간은 괴롭다. 불완전한 한 사람이 불완전한 한 사람을 생각하며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려 괴로워하는 모양은, 어째서인가 각각의 가슴속에 담긴 태풍과는 다른 곳에서, 때로 유난히도 생생한 어떤 상을 맺는다.
인간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와도 같은 것.
활짝 핀 벚나무 가로수 길처럼 왕성하게 요동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에너지.
살랑살랑 꽃잎이 떨어지고,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불고,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들이 일제히 흔들리면 격렬하게 춤추는 핑크빛 꽃잎과 그 틈바구니로 엿보이는 청명한 하늘의 달콤함에 압도되어 그저 망연히 서 있다. 알고 있다. 한 번밖에 없고, 순간에 끝난다. 하지만 내가 그 일부에 영원히 녹아 들어가 있다. 원더풀, 브라보! 사람은 괴로우면서도 그런 순간을 추구한다. -p, 149
계기는 소설이었어요.
소설이 창조해 내는 공간의 생생함이란 정말 시간을 초월하는군요.
소설가란 훌륭한 직업입니다. 특수한 기능이에요. 저는 나날이 당신을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라도 없는 한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고, 그 이미지와 인물을 마음의 스크린에 비추었다가는 잊고 맙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누군가>에 대한 추억을 소유 하게 되죠. 영원히.
그곳에서는 분명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고, 그래요, 인격을 지니고 명백하게 살아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소식을 오랜만에 듣는 것처럼, 나는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과 재회하여, 옛날과 함께 내 가슴을 설레게도 하고 아프게도 했던 강렬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와 내가 이어지는 순간에, 역시 그 사람들의 인격이 자리를 같이해 주었던 거예요. 이해가 되나요? 싫든 좋든, 우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인격을 알고 있죠.
당신이 좋아하는 캐포티의 소설에 나오는, 저 뭐랄까 어쩐지 징글징글한 조엘이란 녀석, 몹시 싫은데도 무슨 일이든 잘 알 수 있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잖아요.
소설은 살아 있어요.
살아서, 이쪽에 있는 우리들에게 친구처럼 영향을 끼쳐요.
그 사실을 몸으로 알았어요.
두 시간이나 하룻밤쯤, 우리는 그 세계를 사는 것이죠. 흔하디흔하고, 다들 그렇다고 하기는 하지만, 진실이에요. -p, 346~347
슬퍼서 반쯤 울며 깨어났다.
아아, 인간이란 참 바보스럽지. 살아간다는 것과 그리운 사람과 장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토록 괴로운 일인데, 애달프고 살을 에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일까, 도대체 뭐란 말인가. -p, 355
돌아가는 길 차에 치여 인생은 막을 내리고, 방금 전까지 쉬이 얘기도 나누고 만날 수 있었던 사람도 모두 영원으로 사라지고 말 수도 있다.
내년의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도 미리 알 수 없다.
그렇다는 걸 잘 알면서, 모두들 잘도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두들 요령 좋게 연막을 치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하고, 직면하여 대항하기도, 울기도 웃기도 원망하기도 얼버무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를 너무 민감하게 느껴 부서지지 않도록. -p, 470~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