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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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이것은 '책 읽기'에 관한 책이자 '책 읽는 사람'에 관한 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한 '책 바보'가 책을 읽는 데 바친 수많은 나날을 적은 기록입니다.

또한 이 책은 우연히 같은 시대에 태어나 지금도 어디선가 홀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입니다. -p, 4

 

 

중학생 때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알게되어 도서관 가는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가서 다 읽지도 못할 책을 그저 표지가 예쁘단 이유만으로, 제목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잔뜩 빌려와선 공부도 뒷전으로 미루고 책을 읽었다. 그러던게 어느덧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나는 왜 책을 읽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

작가
김무곤
출판
더숲
발매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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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여느날처럼 도서관에 가서 쭉 돌아보던 차에 눈에 띄어 집어온 책이다.

무엇보다도 표지에 조그마한 책을 꼭 쥐고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이 소녀가 정말 예뻐보였다. 구스타프 아돌프 헤나히의 작품 <독서하는 소녀>

 

이 책을 읽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그곳은 도쿄 중심부 지요다구 북부에 있는 세계 최대의 고서점 타운 '진보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당시 하버드대학의 일본학 교수이면서 미군의 고문을 겸하고 있던 엘리세프가 맥아더 장군에게 진보초 일대를 폭격하지 말 것을 청원했다는 일화는 이제 진보초의 전설이 되었다.

 

진보초는 한국사 사료의 숨겨진 서고이기도 하다. 많은 역사학자 연구가들이 도서관이 아니라 이곳에서 귀중한 사료를 발견하곤 한다. 국제한국연구원장 최서면씨가 명성황후 시해 현장을 목격한 일본 순사의 수기를 발견한 곳, 안중근 의사의 옥중서기 『안응칠 자서전』을 찾아낸 곳도 바로 진보초의 고서점이다.  -p, 43

 

 

우리나라에선 부산의 헌책방 골목과 같은 곳일까?

헌책을 모으는 취미는 없지만 책이 가득한 거리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인간의 생 자체가 시간의 제약을 받고, 어느 순간 끝나게 되어 있는 게 아니던가.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 가볼 수 있는 장소, 해볼 수 있는 역할은 누구에게나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 속에서 가볼 수 없는 곳을 가고, 머물 수 없는 시간 속에 머물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속에서 우리는 시인이 되고, 탐정이 되고, 악당이 되고, 선장이 되고, 그리고 때로 동물과 식물이 된다. 책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 연애와 실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을 천 권 읽은 사람은  적어도 천 번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p, 52

 

 

 

세계의 훌륭한 독서광들. 빌 게이츠, HP의 전 CEO인 칼리 피오리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오프라 윈프리,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 등의 일화를 읽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독서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네 자신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요즘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가 빌 게이츠보다, 삼성그룹 회장보다, 오프라 윈프리보다 시간이 없을까? 책을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좋겠다.

 

 

종이책은 '무한 에너지'를 가진 매체다. 충전시키지 않아도 되고, 콘센트에 꽂지 않아도 볼 수 있다. 휴대폰의 배터리는 아직 하루 24시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처음 내가 샀던 초기 휴대폰의 배터리 수명은 겨우 반나절이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반나절에서 하루로 길어지는 동안 책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책은 무한 에너지, 충전이 필요없는 영원한 배터리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p, 85

 

 

 

학교에서도 틈날때마다 책을 읽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참 뿌듯한 일이고, 나한테 책에 대해 물어올때면 뭐든 알려주고싶은 마음에 두근거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독서광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고, 가끔 책을 읽으면서 '스펙 쌓느라 바쁜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지나 않을까' 이런 걱정을 했던 내 자신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난 여전히 시간 날때마다 도서관을 갈 것이며, 다 읽지 못할 책을 낑낑거리며 빌려와선 뿌듯해할것이다. 이 책은 책을 읽는 이유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책이다.  

 

 

 

책 읽는 일은 얼핏 외로운 일처럼 보인다. 책 읽는 시간은 오직 혼자서 오롯이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별처럼 수많은 시간을 뛰어넘어 인류가 축적한 자산을 이어받고 있기에 책 읽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과 인류의 정신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지금 그대가 책을 읽는 이 시간에도 지구 어딘가의 구석방에서 누군가 책을 읽기 위해 천천히 일어서서 램프를 켜고 있다. 책 읽는 그대는 지금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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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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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에게, "영국의 어느 유명한 인사는 자기 부인을 옆에 앉혀놓고서야 명강의를 했다는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서 독서를 할 때 마음이 편안해져. 이젠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 하며 그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p, 196

 

 

 

 

내 사랑 백석

작가
김영한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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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봤던 백석 시인의 시, 시를 잘 모르시는 분이더라도 '여승'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백석 시인의 시를 기억하실거에요.

 

 

저는 과제를 하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백석 시인을 사랑했던 '자야 여사'가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기생 신분이었던 자야 여사와 교사였던 백석 시인은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없었습니다. 자야 여사도 문학 공부를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이 책에 쓰인 문체가 청초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선생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  p, 40-41

 

 

 

자야 여사는 이 책을 '내 나이 열여섯에'라는 목차로 시작해 '당신 곁으로'라는 목차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녀의 60여년의 삶이 그려져 있는 이 책엔 사실, 그녀가 백석 시인과 함께 했던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대부분이고 그 이후의 삶도 백석 시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가 함께 한 건 겨우 3년 남짓한 시간이었고, 그 이후 60년 정도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그리워만 하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인 백석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소중한 러브스토리를 책으로 펴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거에요.

 

 

이 둘의 사랑엔 안타깝게도 장애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이 둘은 1930년대의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적인 피해를 크게 입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야 여사가 기생이 되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기생이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혼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봉건적인 부모님 때문에 세 번이나 장가를 들어야 했던 백석 시인을 보며 자야 여사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생각하니 제 마음도 좋지 않았어요.

 

 

 

이 책을 통해 본 백석 시인은 아주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실제로 굉장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시인이어서 그런지 여자의 마음이 설렐만한 말과 행동을 많이 보였어요.

 

사진관에 진열되어 있는 여자 사진을 외면하며 "나는 당신 말고 다른 여자는 아예 눈도 주기 싫어!" 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자야오가』라는 책을 보고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라고 합시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설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였답니다.^^

 

 

 

어느덧 팔순이 가까운 내가 만상이 고요히 잠든 깊은 야심경에 혼자 등불을 밝혀놓고

당신과의 애틋했던 기억의 사금파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동안 줄곧 이 글을 써내려왔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올 양이면 나의 두 볼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적시어지고, 급기야 눈물은 원고지 위로 뚝뚝 떨어진다.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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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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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살았는데 당신을 떼어놓고 어떻게 김현경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지금도 빛나는 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작을 끝내면 산고를 치렀다고 하면서 무조건 제게 쓴 시를 정서하게 하셨지요.

지금은 어떤 날에 어떤 심정으로 그 시들이 쓰였는지 정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간혹 정서하면서 "무엇이죠? 왜요?" 하며 당신께 질문하곤 했습니다.

당신 곁에서 당신 작품의 첫 독자였던 사람으로, 아내로, 한 여인으로, 이 책은 그때처럼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정서한 거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세월이 가기 전, 기억이 흰 눈으로 덮이기 전에 말입니다. -p, 8

 

 

 

김수영의 연인

작가
김현경
출판
책읽는오두막
발매
20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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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소개해드렸던 책 김자야 여사님의 '내 사랑 백석'과 비슷한 책입니다.

이 책은 시인 김수영의 아내인 김현경님이 김수영 시인을 그리워하며 쓴 에세이거든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책보다 '내 사랑 백석'이 더 좋았는데 이는 백석 시인과 김수영 시인의 너무나 다른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놋그릇을 썼다. 유리나 사기로 된 그릇은 쓰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수영은 화가 나면 그것이 재떨이든 물컵이든 보이는 대로 집어 던지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 수영이 늘 괴팍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아침에는 동네 여인들이 가득나와 있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빨래가 든 양동이를 받아 들고 한 걸음 앞서 걸어갔다. 내 마음이 다 빨래가 된 듯한 그날의 청신한 느낌을 나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p, 225

 

 

 

백석 시인은 김자야 여사에게 마냥 점잖은 모습만 보였다면 김수영 시인은 술주정도 심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저에겐, 백석 시인의 시보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까닭도 있겠지요.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신 김수영 시인,

이 책을 통해 본 그는 저에게 마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빼빼 마른, 과묵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로4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전차를 탔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수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수영은 당시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수영은 나를 보더니 수업을 반만 하고 곧 돌아올 테니 벤치에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40분정도 흘렀을까? 아마도 그 시간은 내 생에 가장 길었던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야 그보다 더한 기다림의 시간도 많았지만 행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인가, 하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그때를 과연 어떤 기다림의 시간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감각은 오로지 그가 나타날 방향을 향해 쏠려 있었다.

마침내 수업을 일찍 끝내고 온 수영이 내 옆에 앉았다.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어색했다기보단 개화 직전의 꽃망울 속 같은 두근거림이 가득한 침묵이었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수영은 “My soul is dark."하고 신음 같은 말을 토해냈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수영의 프로포즈였던 것이다. -p, 31-32

 

 

시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수영의 시정신의 끝은 존재에 대한 사랑에 꽂혀 있었다.

개인으로서 시인의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안일과 무위를 극도로 거부한 그였다. 오직 존재의 참되고 아름다운 정신의 지표를 바랐다.

자학까지 하면서 그는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가에서 자라나던 무성한 풀잎들, 내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의 싱싱한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p, 135

 

 

 

김수영 시인이 위대한 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옆에서 항상 든든하게 그를 도와주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편이 좋지않아 작은 집에서 살 때도 그녀는 김수영 시인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에게 독방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또, 그가 작품 하나를 끝낼 때마다 그녀가 원고지에 글도 깔끔하게 옮겨주고, 숫자도 하나하나 메겨주는 등 그의 작품은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쓰여진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예술가에겐 뮤즈가 있지요.

최근, 김수영 시인과 백석 시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그들이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사랑했던, 또 그들을 사랑했던 그녀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시험을 위해서 그들의 시를 공부할때면 '왜 이렇게 시를 어렵게 쓴거야.', '무슨 시를 이렇게 많이 썼어!!' 하며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지루한 시인이 아닌, 한 여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한 남자였고, 이 여자에게 가끔은 어리광도 부리는 평범한 남자였다는 생각을 하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충일하게 사는 것이 그의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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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 사랑하다
쓰지 히토나리 외 지음, 양억관 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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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귀찮네요. 가끔, 아아 싫다고 생각해요. 굳이 '진정한 만남' 따위 필요 없으니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만난다니까요, 그 때마다 진짜를. '오직 사랑하라, 자연이 우리를 낳았으니.' 체호프가 「세 자매」에서 한 말입니다. 나는 확신하고 싶어요. 인간은 연애와 혁명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다자이는 「사양」의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하도록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연애에 빠지는 걸요. 이렇게 태어났으니, 애써 홀로 고독하게 태어났으니, 알고 싶지 않습니까? 둘이 어떤 것인지.'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나는 ... 그래요,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건설적이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죠. 연애는 개념의 파괴니까, 인생을 건설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죠. 그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연애에 빠지면 옷깃을 여미고 끝까지 빠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지나 죽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 254, 255


에쿠니 가오리 책을 소장하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제일 먼저 소장하려고 했는데 절판되는 바람에 소장하지 못했었네요. 그 후, 한옥마을에서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이 책을 보고 맛보는 식으로 조금 읽고 나왔는데 그 후로 1년이 지난 지금.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바로 데려왔습니다.

 

 

자기 전에 누워서 조금씩 읽었는데 한 번 읽을때마다 푹 빠져서 읽게 되어,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일찍 일어나니까 자야겠다'하며 억지로 책을 내려놓는 걸 반복했네요. 그정도로 호소력이 짙은 책입니다. 보통 이렇게 호소력이 짙은 장르는 소설인데, 자기계발 서적에 이렇게 푹 빠질 수 있다니 신기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자기계발 서적으로 분류해야할지에 대한 의문이 드네요.

'연애와 사랑 사이', '섹스와 마음 사이', '순애와 불륜 사이'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 쯤 의문을 가졌을만한 남녀 관계에 대한 문제를 총 6개로 나누어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편지 형식으로 주고받으며 쓴 글인데 이를 자기 계발 서적으로 해야할지..(인간 관계 쪽으로 분류되어있더라구요)

 

 

더 흥미로운 사실은, 츠지 히토나리의 글은 번역가 양억관님,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번역가 김난주님이 옮겨주셨다는 건데 이 두 번역가는 부부사이 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의 다른 작품들도 각각 김난주, 양억관 번역가님이 번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끔은 이 두 작가와 번역가를 따로 떼어내어 생각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깊이 빠져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리고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열정이 식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때는 이미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질투하지 않는 관계란, 에쿠니 씨가 말하는 것처럼 참으로 외롭고 허전한 일입니다. -p, 63

 

 

'속박한다'는 거 실제로는 수동형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동사 같아요. 속방 당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하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책임은 당하는 쪽에 있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동사란 참 재미있어요.

'상처입다'는 실질적으로 자동사일 때만 가능하죠. 물리적인 폭력은 예외지만, 연애의 정신적인 면에서 상처를 입을 수는 있어도 상처를 줄 수는 없다.

그러니까 상처를 입는 것은 상처를 입는 쪽의 능력이지요.

내가 이렇게 상처를 입었는데, 라면서 상대방을 추궁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잃다'란 말도 마찬가지죠. 자동사만 가능해요. 나는 사랑을 잃었다, 고 한탄하는 것은 좋지만 주어는 '나'니까 자기 책임이죠. 옛날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 아연했던 적이 있어요. 정말 슬펐죠. 이 사람, 나를 잃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p, 100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여러 작품을 먼저 접해본 후에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실제 작품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작품이 나왔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즉,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 먼저고, 어느 쪽이 나중인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결과로 그렇게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격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애석한 일이지만 어떤 일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 사랑이 항복을 선언하고 만 것입니다. -p, 170

 

 

 

'결혼과 이혼 사이'라는 부분에선 츠지 히토나리와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츠지 히토나리는 이 글을 쓸 때, 그의 아내와 이혼을 한 상태였는데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러브레터의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와 결혼을 한 사이네요. 이 책에서 나오는 아내와 그녀가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자세히 검색을 해보지 않아 모르지만, 흥미로웠습니다.

 

 

말이란 참 재미있어요. '나는 이 사람을 잃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다'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만 있으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실연을 하고 자살한다든가, 연애가 끝나서 상대가 떠나면 더 이상 나는 살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있었던 뜨거운 감정이 지금은 없어졌다, 물리적으로 여러 사정이 있어서 같이 살 수 없어졌다, 이제는 만날 수 없다. 그렇게 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일' 즉 연애나 사랑은 더없이 특별한 것이고 절대 잃을 수 없는 것. 그리고 상대방도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야만스러운 확신!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고, 만약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 때는 자살할지도. -p, 204, 205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륜'을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자신이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 '륜'을 거부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런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든가, 이런 남자만큼은 되지 않겠다는. 개개인이 긋는 선 이외에 연애의 선은 없다고 생각해요. 애당초가 황무지니까. -p,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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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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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거의 말할 뻔했다. 그가 느끼는 애정이 얼마나 강한지 혹은 꾸준한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어쨌든 지금은 그가 자기한테 확고하고 열렬한 찬미를 바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다른 모든 정황이 합쳐지면서, 그녀는 그러지 않기로 했던 예전의 온갖 결심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그를 사랑하게 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 378

 

<오만과 편견> 이후로 오랜만에 접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었어요.
주인공 에마가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결혼을 주선해주는 역할을 해오다가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다짐과 다르게 사랑에 빠져버리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내용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대사나 캐릭터들의 행동을 지켜보다보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푹 빠져서 읽게 된 작품이에요.


“전 우드하우스 양께서 아직 결혼을 안 하고, 결혼 계획도 없다는 게 정말이지 이상해요! 이렇게 매력적인 분인데요!”

에마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대답했다.

“결혼할 마음을 먹자면, 해리엇, 내가 매력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잖아.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매력적으로 여겨져야지, 적어도 한 사람은 말이야.

그리고 난 지금 결혼 계획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는걸.” -p, 128, 129

 

 

 

지금까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오만과 편견>이 가장 유명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이번에 읽은 <에마> 역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요. 고전은 어떻게 보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 분위기는 좋아라해서 700쪽이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인데도 선뜻 읽게 되었네요.

 

신기하게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그 누구도 소외됨이 없어요. 

한 명, 한 명이 모두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에요.

 

 

 

풋풋한 젊음과 밝은 아침은 서로 잘 어울리며 힘 있게 작동하는 법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울 정도로 사무친 괴로움이 아니라면, 아침에 눈을 뜰 때는 아픔도 좀 누그러들고 희망도 밝아오게 마련이다. -p, 203

 

 

 

"엘튼 씨의 매너가 완벽한 것은 아니에요.” 에마가 대답했다.

“그러나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경우에는 웬만한 건 눈감아 주어야 하고 실제로도 눈감아 주게 되지요. 별로 뛰어난 능력이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남자가

능력이 뛰어난데도 무관심한 남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법이니까요. 엘튼 씨는 성격이 무척이나 좋고 호의에 차 있어서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p, 165

 

 

 

‘남자들이야 지저분한지 아닌지 알 리가 없는 종족이니까.’ 그리고 두 신사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여자들이란 쓸데없는 것에 목을 매는 종족이지.’ -p, 366

 

 

 

제인 오스틴이 이 작품에 대해 '<오만과 편견>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이 재기에서 떨어진다고 볼 것이고, <맨스필드 파크>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이 양식에서 떨어진다고 볼 것이다.'라고 말했고 주인공 에마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은 좋아하지만 독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하지만 오스틴의 말과는 다르게 에마 역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요.

 

요즘 사람들은 힘들 때,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적을 찾곤 하죠.

거기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데, 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어요.

저도 아직 <오만과 편견>과 <에마> 두 작품밖에 접해보지 못했지만, 이 두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인간관계나 사랑하는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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