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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안텀 블루
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새하얀 표지 위에 아디안텀 블루...
기름종이같은 반투명 표지에 그려진 푸른색의 아디안텀이 따뜻해 보였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보니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왠지 시리게 다가온다.
아디안텀 블루는 "오사키 요시오"의 전작인 <파일럿 피쉬>와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파일럿 피쉬에서는 문인출판사 사람들이나 친구들에 대해 상세설명을 했다면 <아디안텀 블루>에서는 잠깐 등장한다. 파일럿 피쉬 후편이라고하는데 내용면에서는 전편 아니 파일럿 피쉬의 중간편이라고 해야할 듯하다.
전편의 야마자키(마흔살)와 아디안텀 블루의 야마자키(서른세살)는 약간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비슷한 점이 있다면, 역시나 지독한 방향치라는 것과 문인출판사에 근무한다는 것... 그리고 약간 우유부단한 유약한 성격이라는 것...
그렇지만 전편의 야마자키보다 아디안텀 블루의 야마자키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전편에서도 그랬지만 책의 제목을 보면 정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디안텀은 하트 모양의 잎을 가진 공작고사리과의 식물로, "물이 젖지 않는다"라는 뜻과 꽃말은 "애교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디안텀은 한번 시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잎이 말라가는특징이 있는데 이를 "아디안텀 블루"라고 한다. 아디안텀 블루 상태에서는 다시 살아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요코를 잃은 후 아디안텀블루상태의 야마자키가 아디안텀 블루상태를 극복하고 다시 아디안텀으로...
서른세살의 야마자키는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날 한 여자가 말을 건다. 자신도 옥상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야마자키가 있는 걸 봤다면서...
자신을 "나카가와 히로미"라고 소개하면서 이름을 물어보는 여자에게 류지는 R.Y라고 한다.
히로미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아련한 십대시절의 R.Y였던 때의 야마자키를 떠오른다.
기억하고 싶지 않던 추억... 히로미와 가사이 신지, 백화점, 백문조 휴즈와 R.Y라 했던 배경...
그리고 사랑하는 요코의 죽음...
문인출판사 편집자 류지는 유카를 통해 요코를 처음 만난다.
맑고 순수해 보이는 물웅덩이 사진만 찍는 요코를 만나면서 류지는 조금씩 변하게 된다.
방향치에 식물치인 류지와 새치인 요코... 즐거운 나날들..
그러다 요코가 병에 걸리고 그녀가 살고 싶다던 남프랑스 니스로 떠난다. 아름다운 니스의 바다를 배경으로 요코는 사랑하는 류지의 품에서 행복하게 숨을 거둔다.
요코는 물웅덩이를 통해 세상을 본다.
우리가 지나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물웅덩이를 통해 재 창조되기도 하고, 맑고 투명하게 투영되기도 한다.
류지는 그녀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R.Y였던 시절 등 유년의 악몽같은 기억들...
백화점 경비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질타들, 경찰서 형사...
인생의 가장 힘든시기에 등장하는 가와이 신지,
첫사랑이자 고등학교 미술부 선배였던 이씨하라 미쓰코, 자신의 다리에서 죽은 휴즈,
그리고 R.Y에서 다시 류지로 돌아오게 만든 가상의 히로미... 이런 엉켜있던 실타래들이 하나하나 풀리게 된다.
요코가 남기고간 흔적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요코와 함께 먹은 러시아 수프 "보르사치"...
새치인 그녀를 위해 사 온 "조류도감"...
요코가 기르던 까다운 아디안텀...
그녀가 좋아해서 즐겨듣던 "EltonJohn"의 ...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남프랑스의 니스...
그녀가 평생 찍었던 물웅덩이...
그리고 따뜻한 사람으로 있어달라는 말...
그런 흔적들을 하나하나 가슴 속에 새기고 추억을 더듬으면서 그녀를 서서히 놓아주고 아디안텀블루에서 다시 생기있는 아디안텀이 되듯이 요코의 물웅덩이 사진전시회를 기점으로 슬픔 속에서도 빠져나온다.
가끔씩은 슬픈 영화나 드라마, 책속 주인공처럼 그렇게 죽었으면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힘들고 가슴아픈 일이라는 걸...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곁에서 보는 건 정말 힘들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무언가를 정말 해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요코가 좋아했던 "Elton John"의 을 들으면서 리뷰를 쓰고 있는데,
<아디안텀 블루>를 읽으면서 줄곳 "Sweet Sorrow"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과 "Damien Rice"의 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디안텀블루를 영화로 제작 중이라는데... 류지의 섬세함이나 요코의 느낌, 감성같은 것을 책에서처럼 배우들이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면서, 영화 속에 흐를 영화음악들이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아련한 사랑의 추억과 함께...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이 뿌옇게 흐려지고, 괜시리 우울하고 마음시린 이 계절에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더 우울해질지 모르지만...
아디안텀이 아디안텀 블루를 이겨내고 다시 아디안텀의 싱그러운 볼래 모습으로 살아나듯...
나는 지금 싱그러운 아디안텀?! 아니면 아디안텀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