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이아의 복수 -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
제임스 러브록 지음, 이한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불편한 진실
이 책의 주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임계점에 다다른, 막말로 시한폭탄과도 같은 위기에 접한 ‘지구’를 그저 하나의 행성이 아닌 하나의 살아있는 지구시스템(가이아)으로 인식하고 느긋한 대처가 아닌 빠른 인식변화와 더불어 진정한 대처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중 하나의 방법이 그간의 녹색환경론자들의 의견과 조금은 상충될 수 있는(모든 환경운동가들이 전부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핵에너지의 활용이다. 엄청나게 위험하고 파괴적인 에너지로만 인식해 온 핵. 그것의 다른 인식요구를 꼼꼼하게 분석한 자료와 정보로 제임스 러브록은 다급하게 주장한다. 천천히 주장할 틈이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하루 하루 우리네의 삶에만 급급하다보니 우리가 버티고 서 있는 이 땅이, 이 지구가 얼마나 아픈지 돌볼 겨를이 없다. 아니, 이 표현도 틀렸다. 돌보는 주체가 우리가 아닌 우리를 돌보는 지구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그녀(가이아는 여신이기에)가 이제 우리를 내칠려고 하는 순간이다. 지구 기온 변화를 예측한 20년전의 그래프가 있다.(p.89) 1860년부터 2100년까지의 저온 시나리오(10년마다 섭씨 0.06도), 중간 시나리오(10년마다 섭씨 0.3도), 고온 시나리오(10년마다 섭씨 0.8도)로 나눠 그간 지나쳐온 지구기온변화와 앞으로의 가상 시나리오 그래프를 그려놓은 것인데 이미 지나간 20년전의 그래프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가장 최악이랄 수 있는 중간 시나리오를 넘어선 고온 시나리오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읽다가 순간 한 템포 쉬었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진정 이것이 고작 20년전 예측 그래프가 맞는지 말이다. 제임스 러브록 박사가 엄살을 피우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진정 내가 딛고 있는 땅은 엄청나게 뜨거운 한계에 다달아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고등학교 과학수업 시간에 배운 태풍과 허리케인 등은 우리에겐 크나큰 해를 입히지만 이것은 결코 지구의 열을 식힘과 동시에 지구에서 일어나야 하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을 때와 비교해서 이번의 충격이 더 컸다. 그 당시에 나는 그것을 예방하거나 아니면 막을 수 있는 방도는 없나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봤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 하나 하나가 우리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가이아’라는 개념, 아니 인식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나는 영영 비슷 비슷한 녹색환경론자들 편에서 맘 편하게 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못하고 불편한 진실 앞에선 ‘자기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쪽에 서서 살기를 원한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 온게 아닌가 싶다.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 대안적인 삶 등을 옹호하며 찾아다니며 말로만, 구호로만 듣기에 편하고 내 맘 편한 공간들을 찾아왔다. 그런데 실상, 진정 그건 지구를 위한 환경을 위한 청정한 행동들이었을까? 맘으로만 그저 편안했던 것을 원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자꾸 내게 물음을 던졌다.
기차를 기다리다 본 다큐의 한 부은 이렇게 말했다. 9.11테러 하나로만 보면 엄청난 사건이며 각 국간에도 세계에도 커다란 일대 사건이다. 하지만 일단 지구 밖에서 잠시 들여다 보면 그로 인해 비행기 운항횟수를 통제했기에 그 당시의 기상일기는 엄청나게 맑은 날들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한 번 뜨고 하늘을 가르고 날을때마다 얼마나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와 매연들이 하늘을 오염시켰을지 갑자기 막막해지는 순간이었다.
또, 그러면서 그 다큐에서 탄소발자국(우리들의 교통수단이 움직일때마다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야기를 했다. 요즘 기름값이 많이 올라 자가운전이 줄고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 걷기 등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이유에 기름값 상승의 효과를 이런식으로 이야기했다. 잠시 잠깐뿐이었겠지만 그런 하나 하나의 이유들이 기상에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한 번은,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길을 잘 몰라 만나기로 한 장소를 몰라 고작 몇 정거장 가면 그만인 것을 버스를 타고가 내려 그 앞에서 무한정 기다리는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를 데리러 와서 결국 다른 곳으로(내가 타고왔던 정거장을 지나쳐서) 갔다. 자세히 모르고 무심하게 행한 일들이 결국 많은 양의 탄소발자국을 발생시켰다.
기다리는 그 사이엔 교복을 입은 많은 아이들이(적어도 3개반은 되는, 인솔하는 선생님이 세 분은 되었다) 내 앞의 길거리 쓰레기를 주우며 지나가는 것이다. 한 반은 위생비닐 장갑을 낀 아이들이 많은 반, 나무젓가락을 너나 없이 거의 다 든 반. 한 명 한 명 구경을 하자니 각자 주운 쓰레기를 담기 위하여 검은 비닐 봉지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가득 주워담기엔 길이 너무도 깨끗했고 비닐봉지는 너무나 헐렁하게 컸다.(내가 먹고 나온 빵봉지라도 건네주고 싶을 만큼^^;) 선생님은 왜 가득 안 채웠냐며 윽박도 지르고 하늘하늘 걷는 아이에겐 산책나왔냐며 꾸지람도 던졌다. 그런 아이들 중 2개 반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으며 게다가 그 중 한 개반은 그 전원이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것이다. 허걱! 환경미화를 하러 나왔다가 얼마나 오염을 시키고 돌아가는 걸까 생각이 절로 드는 장면이었다. 그 위생장갑과 검은 비닐, 나무젓가락이 길거리에 있는 담배꽁초, 작은 쓰레기 몇 개를 줍기 위해 대동한 하루의 일과 치고 너무나 큰 오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돌아가는 길엔 한 반 전원이 탑승한 탄소발자국의 양이란....
우리의 깊게 생각지 못한 환경을 위한다는 일은 곧잘 이렇게 엄청난 쓰레기로 지구에게 돌아가기 쉽다. 그러니 정말 한 번만 더 신중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맘편하자고 실행한 환경보호 운동이 자칫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조금더 깊이 생각해 보고 행동할 일이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편한대로 접한 자료나 정보를 편집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가이아의복수]가 전하는 불편한 진실은 상당 다급한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리는 결론이나 대안은 실상, 평범한 독자들이 살아가는데에는 큰 대안이 아닐 수 있다. 일개 개인이 핵에너지를 어쩌란 말인가? 오히려 그가 노리는(?) 독자의 대상은 정부나 환경부처나 각계의 바로 실행가능한 부서들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내려가다 보니, 한 개개인의 인식부터가 변화해야 다급한 이 시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안일하게 대처하는 우리네의 잘못된 녹색운동은 정말이지 하루 하루 지구의 종말을 빠르게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인간중심 세계관을 어서 빨리 지구중심 세계관으로 변화인식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늦추는 해결점 역시 우리의 손, 기술과 인식변화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