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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새로운 달을 맞으며
5월 내내 몸의 건강과 앞으로의 진로가 다시 꺾이는 좌절을 겪었다. 스토브를 켜고 그 앞에서 잠들어버려 내게 찾아온 몸살과 목과 코의 건조증과 목소리 변성은 2주를 넘어 가게 했다. 그 기간안에 면접을 치른곳에서의 낙방때문인지 묘한 감기약기운과 더불어 한 없이 의욕없음의 나락으로 인도하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그 속에 집어든 이 책은 그 와중에도 큰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거란 다소 못된 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뒤뚱거리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원하는 삶을 그리며 살고자 하는 나의 늦은 걸음에, 마흔에라도 생의 걸음마를 배울 수(깨칠 수) 있다는 말은 젊어도 너무 젊은 나인데도 당시 나에겐 엄청난 유혹의 말이었다. 아마도 실상의 늦음은 정말이지 현실이긴 해도 인생 전체의 큰 줄기에서 본다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현실’은, 현실이란 말은 빠른 걸음을 재촉하기 마련이고, 당장의 입에 풀칠을 독촉한다.
정말 당장의 끼니걱정도 경험하기도 해봤으니 혼자서는 나름 절망의 나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열고 딱 이틀간 읽은 신달자 시인의 삶을 들어보곤 난 아직, 악받쳐서 튀어나올 말까진 없구나. 삼킬 수 있을 정도까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소 거칠게 들리는 표현도 없잖아 많았는데 그 만큼의 신달자 시인의 질곡 또한 같이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세상에 떼고자 하는 발걸음의 모양과 딛고 싶은 세계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만약 그 속에서 커다란 바람을 맞게 된다면(이를테면 신달자 시인처럼 24년을 병수발과 가족으로서 가진 그 굴레와 짐, 혹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의지마저도) 나는, 당신은 어떻게 어떤 길을 걷게 될 것 같은가?
친구와 같이 면접을 봤는데 의도치 않게 친구는 자신이 선택한 부서가 아니지만 어쨌든 그 회사에서 일하고자 하는 제의가 들어왔다. 내가 지원한 부서(팀)에서는 처음부터 나를 탈락시켰다. 다만 그 회사에 과후배가 있었다는 점은 면접보러가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건 오히려 나중에 나 스스로를 더욱 절망에 빠지게 하는, 아니 나의 현주소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를 듣게 했다. 면접시 여러 명과 함께 면접을 보다보니 지원자 중 서울의 지사와 가까운 봉천동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알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스스로도 만약 당장 나와 같이 봤던 사람중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동시에 세 명씩 치뤘다.) 그 사라미 될거란 생각이 들어서 후배에게 살짝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맞단다. 그래서 그 사람은 급하게 춘천으로 집을 구해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고 내 친구는 급하게 봉천동이나 그 근처의 방을 알아봐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때문에 내가 중간에서 그 둘을 연결해주면 서로가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전달해주려는 이틀 사이, 어느 지역에서든 다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 지원자는 거절의사를 추후에 밝혀왔다는 것이다.
아니, 된다고 면접에서 말했던 그가 왜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것일까? 이게 현실이긴 하지만 나로썬 우선 한 곳만 바라보고 지원한 나도 우습지만, 그 이후의 신입사원교육기간도 있어 현재 일하고 있던 아르바이트 일정도 전부 빼놓았었고 그만두기로 해놓았던 것이다. 서울이 되면 그 나름대로의 대책도, 다른 지사인 안성이 된다해도 당장의 거처는 어찌할지도 대책을 세워뒀던 나로써는 뭐든 준비가 되어 있어도 나는 안되는 사람이었구나 하며 씁쓸했던 것이다. 또한 그 사람이 안된다면 난 2인자도 안되는 걸까? 생각을 잠시 해봤는데 또 다시 다른 사람을 면접봐서 현재 교육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결국 그 사이에 들은 다른 달콤한 말은 그저 위로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한 좌절, 절망.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일이 됐으면 이제 계속 가면 그만인 것을, 된 사람은 또 된대로의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새삼 세상이 야속하게만 비쳤다. 우스웠다. 뭐든 자신이 감내해야만 생의 상처와 깊이도 생생하게 전해지듯, 이러한 시점에서 읽은 이 책에서의 신달자 시인의 행보는 나와도 깊이면이나 범위의 면에서나 퍽이나 깊음을 절감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신달자 시인은 정말 뜻밖의 큰 선택을 많이 내린다. ‘포기’와 ‘계속하라’는 선택이 있다면 신달자 시인은 그저 퉤!하고 침뱉으며 그저 ‘계속하라’를 선택하고 그 속에서 쓴침, 마른침을 울음으로, 고통으로 삼켜냈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큰 길을 내어 걸어가는 길을 선택한다. 마치 글은 당장의 길을 선택한 듯이 하루 하루의 선택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읽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세간의 비난의 눈을 감내하며 공부를 택하고 궁극에는 신달자 시인 홀로의 모습으로 독립(?-적절한 어휘가 안떠올라;;)해내는 모습까지 이르는 것이다.
현 시대에는 물론 이런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요시엔 자신의 무거운 짐은 당연한 듯 ‘포기’라는 이름으로 어깨에서 내려놓는 차가운 현명함을 지녔으니까. 물론 신달자 시인이 성인군자스럽게 살아왔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억척스럽게 무섭고, 외롭고 힘들게 살아왔다. 하지만 꼭꼭 담아왔던 사연을 이제야 울음으로써 토해내는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음에 박수를 보낸다. 나 또한 나만의 발걸음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축소가 아닌 큰 그림으로 나를 그려낼 것임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