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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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드라마나 일본영화,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신선해서' '재미있어서'등 개인차가 있겠지만 조금 크게 본다면 딱 하나이다.

'독특함'

그것이 번역투의 문장이어서 일지도 모르고,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한국 독자에게 주는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소설과 한국소설은 '다른 점'이 너무나도 많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경우는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가 주는 유쾌함과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아멜리에>가 '인간의 고독'이라는 주제를 오드리 토투의 상큼발랄한 표정으로 포장했다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경우는 우리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연애이야기' 라는 것이다. 조금 더 다가가기 편하고, 쉽고, 즐거운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약간의 플러스 점수를 받는다고 할까?

줄거리만 말하자면 간단하다. "후배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선배의 이야기. 그 선배는 남자답지 못하고 소심하지만 언제나 여주인공 가까이에 항상 있다. 하지만 여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때문에 남자는 더 애가 타고" 정도?  잘못보면 '어? 우울한 얘기아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100% 장담한다)!

이 여주인공의 독특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러 장면들은 '어라? 내가 판타지를 읽고 있나?'할 정도이다(한 가지만 살짝 말 한다면 비단잉어가 하늘을 이리저리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장면도 등장). 현실세계라고는 믿기 힘들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소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는 내내 즐겁고 유쾌한 소설이다. 더운 밤, 잠이 오지 않을 때 읽으면 최고다. 달달한 커피 한 잔과 시원한 선풍기 바람(왠지 에어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만 있다면 당신 주변은 어느새 교토 거리의 축제현장처럼 즐거워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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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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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이 많아졌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인터넷에 책 제목만 간단히 클릭하면 가격비교에서부터 내용, 작가소개, 추천인까지 수많은 정보가 떠돌고 있다. 거기다 가격도 일반시중가보다 저렵하다. 배송도 무료고, 적립금까지 준단다. 그 메리트에 빠져서 사실 나도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가끔 정말 급하게 책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서점을 좋아한다. 도서관도 좋아한다. 책이 가득있는 곳에서 나는 책냄새가 주는 묘한 기분을 인터넷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다. 그것이 헌 책에서 품어내는 곰팡이 냄새든 새 책이 주는 그 정갈한 냄새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습관처럼 서점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 서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형서점이 작은 '책방'들을 잡아먹는 것이다. 이제 주인만이 서점을 지키고, 조용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작은 서점 귀퉁이에서 책을 집어들고 훑어보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닥다닥 붙은 책들과 그보다 많은 수백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책을 고르던가 편하게 손가락 몇 개의 움직임으로만 책을 구입하는 일이 훨씬 편하고, 그것일 일상화 되어버린 요즘이다.

그런 우리와는 다르게 서양에서는 작은 서점들이 많다(물론 그들도 자금난에 시달리거나, 손님을 하루동안 한 명도 받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책 거리가 있고, 책 마을이 있다. 그 마을과 거리에는 책 읽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입구에 앉아 자신의 손바닥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이는 책을 힘겹게 넘기는 파란 눈의 아이들이 있고, 서점 앞 벤치에서 한 권의 책을 가운데 두고 함께 읽어가는 연인이 있고, 손을 맞잡고 책을 함께 고르는 노부부도 있다.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그 곳은 없어지지 않는다. 서점 주인의 소신만 가지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정부의 지원이 존재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곳을 꾸준히 찾아주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이 책에는 사진이 많다. 앞서 말한 책 읽는 사람들의 사진과, 그 곳을 지키는 서점 주인의 사진, 그리고 편안하게 그 곳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서점- 어느 것하나 평화롭지 않는 것이 없고 부럽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아마 오늘 저녁 산책 코스를 서점가로 잡을 지도 모른다. 그 매력적인 사진들에 이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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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하우스 - 평범한 하루 24시간에 숨겨진 특별한 과학 이야기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27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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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을 지독시리도 싫어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생물과 물리가 너무도 싫었다. 지구과학과 화학은 그나마 견딜 수 있었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심히 그 '외계어'스러운 말이 난잡하게 얽혀있는 생물과 물리쪽은 영 젬병이었다. 덕분에 아무 부담감없이 문과쪽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고맙지는 않다, 전혀)-

<시크릿 하우스>의 경우 쉽게 말해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냥 '없다'라고 말하면 전혀 설득력이 없을테니 그것을 과학적으로 조분조분 풀어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떠서, 뒷날 아침 다시 같은 장소에서 눈을 뜨는 그 24시간 안에 숨어있는 일상 속 과학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우리가 편하게 잠든 그 침대에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항상 옆에 두고 자는 자명종 시계의 파장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등의 '알고보면 과학적인 나의 하루'에 관한 시시콜콜한 얘기들 말이다.

지루하다 싶을 즈음에는 작가의 우스꽝스러운 사고와 판단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읽고나면 일상의 많은 상황에서 '이건 이런 과학적 원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약간의 부작용도 함께(가령 자기 전에 침대를 보면서 찝찝함을 느낀다던가, 치약을 짜기 전에 몇 십초 가량을 가만히 보고 있는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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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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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기 힘든 때이다. 한 해가 지날수록 삶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져야 하는데도 늘어나는 건 걱정과 고민, 그리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말버릇이다.

이럴때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해, 하고 마음 먹지만 일상을 툴툴 모두 털어버리고 훌쩍 떠날만한 용기는 나에게 없다. 그럴 때는 내 앞에 있는 문제를 완전히 제대로 보는 방법과 아니면 슬쩍 보지 못한 체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방법은 후자- 누군가가 '당신은 겁쟁이'라고 손가락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내 나름대로 내가 이 세상을 버텨가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을 어쩌겠는가.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괜찮아질것이다'라고 마음 먹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이나 영화이다. 분명 아무 고민 없이 시간을 보내고, 그 순간 고민을 잊게 만드는 것은 영화 쪽이 더 효과적임이 분명하지만 내가 거의 택하는 것은 '책'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이름을 보면서도 읽기 어려운 학자들이 '너나 잘하세요'라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책을 읽으면 역효과가 심할테니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런 때에는 간단하고 짧고, 얇고, 그림 많은 책이 최고다.

그런 면에서 <하악하악>은 100점. 얇은 편은 아니지만, 짧고, 글자 크기가 크니 한 권이라고 해봤자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10분에라도 당장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거기다 한 페이지에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80~90%니 얼마나 읽기가 수월하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성 싶다. 읽기 수월하고 읽는 내내 재치넘치는 이외수의 글귀에 반하고 또 반한다. 속 시원하고, 가슴 뭉클하고, 어쩌면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그러면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책 한 권으로, 글 서너줄로, 그림 하나로 이 큰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깟 책값이 아까울까.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하다. 누구든 다 그렇다. 그것을 인정했다면 위로받을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고, 그 '누군가'를 찾지 못했다면 이외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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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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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전유성씨의 말이었나 보다. 자신은 항상 1위에 랭크된 책을 읽지 않고, 9위나 10위의 것을 읽는다던 말. 1위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9위나 10위는 자주 바뀌기 때문에 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다지 한가지 장르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소설이든 수필, 시, 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쪽이 나에게는 더 맞다. 물론 화려하고 예쁜 겉표지와 '이 작가가 나를 배신할리 없지'라고 생각한 누군가의 책이 발등을 가끔 내리찍는(아주 심하고 고통스럽게)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 그런것을 어쩌겠는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왠지 알싸한 느낌의 계피향이 난다. 읽는 동안은 술술 잘 읽히고 '뭐야. 왜 이리 간단해'라는 느낌이 들어 허무한 마음까지 생기지만, 책장을 덮고 가만히 책 겉표지에 적힌 '밀란 쿤데라'의 이름을 응시하고 있으면 왠지 내가 아주 힘든 글을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움과 진중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책을 누른다는 기분 말이다.

<커튼>의 경우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책을 처음 펴고 열 번은 넘게 책을 덮었다가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수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수필보다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 세계를 밀란 쿤데라 자신이 평가하고 설명하고, 보충한 일종의 '밀란 쿤데라 학습서'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작품을 단지 읽기만 해서 마음에 남지 않은 사람은 읽어가기가 힘든 것 같다.

나의 경우, 워낙 예전에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그때는 글읽기의 깊이따윈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커튼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 물음표만 가득했다. 읽는 내내 '아... 불편하다'라는 느낌과 함께 시험을 치르는 듯한 중압감에 답답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냐 싶어서 읽기는 했지만 그 느낌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려 마음 먹었다면 정말 제대로 마음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안 그러면 밀란 쿤데라의 무게에 눌려 이 더운 날 스트레스만 받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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