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그맨 전유성씨의 말이었나 보다. 자신은 항상 1위에 랭크된 책을 읽지 않고, 9위나 10위의 것을 읽는다던 말. 1위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9위나 10위는 자주 바뀌기 때문에 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다지 한가지 장르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소설이든 수필, 시, 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쪽이 나에게는 더 맞다. 물론 화려하고 예쁜 겉표지와 '이 작가가 나를 배신할리 없지'라고 생각한 누군가의 책이 발등을 가끔 내리찍는(아주 심하고 고통스럽게)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 그런것을 어쩌겠는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왠지 알싸한 느낌의 계피향이 난다. 읽는 동안은 술술 잘 읽히고 '뭐야. 왜 이리 간단해'라는 느낌이 들어 허무한 마음까지 생기지만, 책장을 덮고 가만히 책 겉표지에 적힌 '밀란 쿤데라'의 이름을 응시하고 있으면 왠지 내가 아주 힘든 글을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움과 진중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책을 누른다는 기분 말이다.

<커튼>의 경우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책을 처음 펴고 열 번은 넘게 책을 덮었다가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수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수필보다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 세계를 밀란 쿤데라 자신이 평가하고 설명하고, 보충한 일종의 '밀란 쿤데라 학습서'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작품을 단지 읽기만 해서 마음에 남지 않은 사람은 읽어가기가 힘든 것 같다.

나의 경우, 워낙 예전에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그때는 글읽기의 깊이따윈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커튼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 물음표만 가득했다. 읽는 내내 '아... 불편하다'라는 느낌과 함께 시험을 치르는 듯한 중압감에 답답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냐 싶어서 읽기는 했지만 그 느낌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려 마음 먹었다면 정말 제대로 마음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안 그러면 밀란 쿤데라의 무게에 눌려 이 더운 날 스트레스만 받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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