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구성 - 현대 일본이 부끄러워하는 진짜 일본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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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한국'은 분명 다르다.

국가로서의 '한국'과 그 구성원인 '한국인'은 개인과 집단이라는 사회적 개념을 제쳐두고서라도 그 성질이 아주 다르다. 외국의 눈으로 본 '한국'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것이 모든 한국인 개개인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일본'과 '일본인'도 다르지 않을까?

나도 한국인인지라(이것이 정확한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본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구나 축구경기에서 일본에게는 꼭 이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독도와 같은 미묘한 문제로 계속 마찰을 일으키는 정치적인 문제도 슬슬 짜증이 난다. 하지만 내게는 일본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나는 일본인 - 한국인 이전에 '친구'의 관계이다. 자주 만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친구.

우리가 가진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일제 식민지로 부터 기인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과연 서양인들이 본 일본과 일본인은 어떨까.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 문제로 전혀 얽히지 않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서 보이는 일본인의 모습은 뭐랄까. 약간은 신랄하게 비판된 모습이다. 작가는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 자신이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라고. 또한 너그럽게 봐 줄 이유도 없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내 조금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이 바라본 일본보다는 그래도 객관성을 유지했다는 반증일테니.

내가 느끼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말 그대로 감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인 것인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여전히 국사책을 읽는 듯한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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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명랑'의 코드로 읽은 한국 사회 스케치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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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가 싫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뭔가 계산적인 행동과 그것을 포장하는 뛰어난 언변도 싫다. 그래서 정치에 조금이라도 발 담고 있는 사람들이 펴낸 책은 일단 거부감이 생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간단히 표지가 '명랑쾌활'해서이다. 마구 휘갈겨 쓴 듯한 제목의 필체도 마음에 들었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책표지가 무채색의 무거운 느낌인 것에 반해 이 책은 날아갈 듯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우스운 선택기준이다.

그럼 읽는 내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솔직히 말한다면 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사설을 읽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것도 한 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를 하는 사설-

분명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좀 더 정치에 대해 잘 알고,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다면 책을 읽는 것이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고, 더 비판적으로 글을 읽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내 수준에서의 이 책은 그냥 '논설문'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열린 사고로 모든 것을 본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다. 명랑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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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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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세상을 살다보면 이 순간 고통받고, 우울하고, 짜증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초라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성격이 못돼먹은 나는 가끔은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기를 원하고, 또 어떤때는 날 그냥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주위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이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주는 느낌은 정말 최악이다. 그럴 때는 왠지 '나보다 더 한 사람'을 찾아서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있다. 내가 겪고 있는 지금 이 아픔과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공지영을 좋아한다. 공지영의 글을 좋아하고, 그녀가 가끔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던 당당한 모습을 좋아한다. 작가 공지영도, 인간 공지영도 내게는 닮고 싶은 워너비이다.

책으로 출간되기는 했지만 왠지 읽고 있노라면 공지영과 깊고 깊은 대화를 나눈 듯 하다.

'저... 힘들어요. 죽고 싶어요. 이렇게 세상 사는 건 제 꿈이 아니었어요.'

누군가가 공지영 앞에서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면, 아마 공지영은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둔 채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말 해 줬을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나는 어쩌면 절대 겪지 못할 많은 일들을) 조금씩 강해진 그녀의 글과, 그녀의 삶과, 그녀의 생각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대한민국 베스트 작가 공지영이 한 위로가 아니라 그냥 같은 여자와 인간으로서 내게 건네준 따뜻한 말이기에 '괜찮다'는 위로가 효과를 보이는 게 아닐까. 작가 공지영은 대단하지만, 인간 공지영은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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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술
딘 R. 쿤츠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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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다. 지난 주말동안 내가 읽은 책은 총 열 다섯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3일간 읽은 책이 열 네권하고 이제 막 20페이지를 넘긴 소설책 한 권이다.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한 책 열 권과 친구에게 빌린 책, 그리고 예전에 사두고도 읽지 않았던 책들을 모두 책상에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장르도 다양했다. 연애소설에 자기계발서, 추리소설, 여행관련 도서까지- 전혀 연관성 없고, 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들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혹은 선풍기), 그리고 새벽에 마시는 커피 한 잔까지-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딱 좋은 세트가 아닐까 싶다.

열 다섯권의 책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내렸던 것이 있고, 책 읽는 내내 '잘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든 것도 있다. 필요에 의해서 읽은 책은 확실히 읽는 속도가 더디고 읽고 있는 순간에 '지겹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글을 읽는 순간은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다.

<살인의 기술>은 제목에서 보듯 추리소설이다. 그냥 그런 시시껄렁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영화 <추격자>를 보는 듯한 긴장감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진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원서를 읽을 만한 능력이 있다면 원서로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추리소설이 원서든 번역본이든 뭐 그리 큰 차이가 있겠냐 할지도 모르지만 소설의 중간즈음에 '원서도 이런식으로 적혔을까'하는 부분이 등장하기는 한다(새벽에 읽어서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는지도).

아무튼 소설이 끝을 향해 달려갈 때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최근에 본 어느 추리소설보다도 스릴넘치는 내용이었다. 묵직한 양장본도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고, 가볍지 않은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추리소설이니 소설의 내용을 말하는 것은 죄악일터이니, 읽지 않은 누군가에게 말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상상 이상의 추리소설'을 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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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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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일본작가 중 한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를 쓴 작가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 작가의 글은 약간의 이해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무심코 지나친 한 문장과 누군가의 대사 한 줄이 완전 다른 결말을 가지고 오게 할 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떄는 왠지 정자세로 책상에 앉아 읽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을 준다.

최근에 읽은 <밤의 거미원숭이> 같은 경우는 '절대로 읽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책 중 하나였다. 무심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만 믿고 책을 덥석 집었다가 그의 이름 옆에 적힌 '초단편 소설 모음집'이라는 글귀를 보고서는 슬며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왠지 '단편'과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단편에는 여지껏 그의 글이 보여줬던 무게감이 가벼움으로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름만 보고도 책을 고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든 것이다.

총 페이지 수는 200쪽이 안 되는데, 작품 수는 거의 40 편이 된다. 잠깐만 생각해도 한 편 당 5페이지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인데... 그 짧은 분량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다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단편의 경우, 나는 목차를 먼저 읽어보는 습관이 있다. 그 중 제일 재미없을 것 같은 글 부터 읽기 시작한다).

분명 작가가 이미 밝힌대로 '초'단편소설이니 테이크아웃 커피점에 주문을 하고 커피가 채 포장되어 나오기 전까지 한 편을 읽을 시간은 충분하다. 분명 그 속도로 읽는다면 2시간도 안되어서 한 권의 마지막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말한대로 '초' 단편소설이니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가? 쉽게 읽어도 될 이야기를 나는 너무 깊이 있게 읽으려고 애를 썼다. 뭔가 작가가 숨겨놓은 의도가 있을거야. 이 결말이 무슨 의미일까 등등. 어느순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분석하는 분석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글을 사랑하는 애독자가 아니라-

만약 나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영양가 제로다. 지금까지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게감 있고, 철학적인 소설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색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임은 분명하다.

아무 편견없이 그의 글을 읽어내려 갈 수 있다면 이 책은 어느 곳, 어느 시각에도 어울리는 소설이 될 것이다(나는 분명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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