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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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일본작가 중 한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를 쓴 작가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 작가의 글은 약간의 이해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무심코 지나친 한 문장과 누군가의 대사 한 줄이 완전 다른 결말을 가지고 오게 할 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떄는 왠지 정자세로 책상에 앉아 읽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을 준다.

최근에 읽은 <밤의 거미원숭이> 같은 경우는 '절대로 읽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책 중 하나였다. 무심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만 믿고 책을 덥석 집었다가 그의 이름 옆에 적힌 '초단편 소설 모음집'이라는 글귀를 보고서는 슬며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왠지 '단편'과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단편에는 여지껏 그의 글이 보여줬던 무게감이 가벼움으로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름만 보고도 책을 고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든 것이다.

총 페이지 수는 200쪽이 안 되는데, 작품 수는 거의 40 편이 된다. 잠깐만 생각해도 한 편 당 5페이지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인데... 그 짧은 분량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다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단편의 경우, 나는 목차를 먼저 읽어보는 습관이 있다. 그 중 제일 재미없을 것 같은 글 부터 읽기 시작한다).

분명 작가가 이미 밝힌대로 '초'단편소설이니 테이크아웃 커피점에 주문을 하고 커피가 채 포장되어 나오기 전까지 한 편을 읽을 시간은 충분하다. 분명 그 속도로 읽는다면 2시간도 안되어서 한 권의 마지막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말한대로 '초' 단편소설이니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가? 쉽게 읽어도 될 이야기를 나는 너무 깊이 있게 읽으려고 애를 썼다. 뭔가 작가가 숨겨놓은 의도가 있을거야. 이 결말이 무슨 의미일까 등등. 어느순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분석하는 분석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글을 사랑하는 애독자가 아니라-

만약 나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영양가 제로다. 지금까지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게감 있고, 철학적인 소설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색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임은 분명하다.

아무 편견없이 그의 글을 읽어내려 갈 수 있다면 이 책은 어느 곳, 어느 시각에도 어울리는 소설이 될 것이다(나는 분명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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