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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힘 -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우아하게
사라 카우프먼 지음, 박혜원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9월
평점 :
"명사는 우리의 현실이요,
동사는 우리의 꿈이다."
책 <동사의 힘>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으로 "제대로 된 동사 활용"을
들고 있다. 내용이 상당히 알차고 흥미롭다. 멋진 글로 이끄는 정교한 문장
만들기를 말하고 있는 책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을 떠올렸다.
목사인 아버지에게서 글쓰기를 배우는 첫째 아들과 그의 작문이 담긴 종이 한 장.
처음에 그가 쓴 글은 장황함을 걷어내는 아버지의 빨간펜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그만큼 고쳐야할 부분이 많았다는 것. 그러나 계속해서 글을 쓰고 고치면서
빨간색은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깨끗한 글만 남는 종이가 보이는 장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결국 간결한 글쓰기였다. 이 책 <동사의 힘> 역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보다
명확하고 생생한 문장을 쓸 수 있는지를 동사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을 몇 가지 짚자면, 우선 능동태와 수동태에 대한
설명이었다. 영문법을 아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개념들이지만, '작문'의
관점에서 바라보니까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저자는 행위의 주체가 사라진 수동태가
얼마나 문장을 흐릿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면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언급한다.
몇 번이나 읽었던 작품인데도 나는 그동안 이 소설이 '언어를 통한 통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는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언어가 흐릿해지면
생각 또한 흐릿해질 수 있다. 명확하게 쓴다는 것은 결국 문장을 예쁘게 다듬는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2장 <매혹의 기술>에서는 동사의 힘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동사를
무려 '언어계의 케이트 블란쳇'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동사 역시 문장에서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해낸다는 말씀.
특히 내 뇌리에 꽂혔던 대목은 바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동사를 이용해서 알아차리게 하라"는 것이었다. 쉼없이 여러 동작을 한꺼번에 해내는
군인의 행동 묘사를 통해서 그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는 점이 아주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문장이 있는 6장 <최소한의 동사로 최대한의 유혹을>에는 스티븐 킹 작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만큼 절제를 통해서 가장 생생하게 묘사라는 작가란 뜻이 아닐까?
그의 작문책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제목도 떠오르고.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군더더기 없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문장에 감탄했는데, 역시 적재적소에 정확한 동사
사용 능력 중요.
8장 <잠든 세계는 은유로 깨어난다>에서는 언어의 창의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은유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작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문장 "우리는 물살을 거스르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끊임없이 과거 쪽으로 떠밀려가는
배와 같다"가 소개된다.
눈 앞에는 거센 물살을 이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조각배가 있고 동시에 거친 운명과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겹쳐진다. 인간이란
가끔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인간 삶의 복잡함을 한 장면으로
잘 나타낸 듯.
<동사의 힘>을 읽는 동안 책을 읽은 게 무려 11개의 코스로 이루어진 대학 강의를
들은 느낌이다. 부사를 줄이고 동사로 생생하게 나타내기, 장황함을 덜어내고 간결하게
쓰기, 묘사하기 말고 보여주기 등 강의를 듣고 나면 어김없이 실습란이 있다.
교수님 ( 작가님 ) 의 지시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뛰어난 작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은 독자에게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정확한 언어를 골라 장면을 움직이고, 독자가 그 움직임 속에서 스스로 보고 느끼게 한다.
스티븐 킹 작가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소재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간결하고 생생한 문장
( 혹은 동사들 ) 들 덕분에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났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동사의 힘’이 아닐까.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